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4 용자
    2021년 01월 22일 16시 25분 1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69bh/48/





     자기 방에 은둔한 카론은, 소파의 위에서 칠칠맞게 다리를 내던지며 드러누운 채, 딱히 아무 일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하는 건, 당연히 이번 전쟁의 일이었다


     단결해서 승리하자. 그런 방침을 알버트에게 분명히 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의문의 전멸로 이어졌는지 전혀 모르겠다.

     

     "아~~"


     하지만, 가령 그 용자 두 사람이 살아있었다면 제대로 왕국과 대화가 통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용자라면 더욱 '마물은 죽어라' 라고 말할 것이다.

     대화조차 제대로 못하고, 그 성전이라고 하는 대란을 일으키려고 움직일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되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포기하고, 완벽해졌다며 스스로에게 말해주며 잠드는 편이 좋다.


     "이제 안되겠다. 내일, 내일부터 생각하자."


     일어난 일에서 배우고 다음에 활용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머리 한쪽에는 이제부터의 일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제부터 어떻게 접근해 나갈까. 역시 사자를 먼저 보내고, 그 후에는......"


     ――caution! caution! caution!――



     "! 뭐야!?"


     경보음이 울리며 전면에 떠오른 경고문이, 느슨해진 시각과 청각을 성대히 자극했다.

     긴급 메세지에는 '침입자 발견' 이라고 쓰여져 있다.


     "침입.......뭐지? 공국의 잔당인가? 아니, 그건 이 주변에는 없는 걸 확인했는데."


     어쨌든 적의를 가진 누군가가 나라에 공격을 감하러 온 것은 확실하다.

     쭈뼛거리며 마킹된 지점을 확대하자ㅡㅡ그곳에 비추어진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무심코 소리를 내었다.


     "뭐어!? 미라하고 쿠치나시!?"







     흥청거리는 마을에서 떨어진 성벽의 위에서 서로 노려보는 두 여자.

     

     야수는 거대한 팔에서 돋아난 예리한 손톱을 확인하려는 듯 움직이며, 어떻게 놀아줄까 생각하며 웃었다.


     "도대체 뭘 하러 온 것이냐. 모두 끝났는데 일부러 죽으러 올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역수로 거머쥔 검을 눈앞에 들고, 미라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성급한 사람은 인기없을 텐데?"


     어이없어하는 구치나시히메와는 상관없이, 미라는 몸의 안에서 솟아나오는 충동에 따라 싸우기 위해 자세를 바꾸었다.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검자루의 감촉을 확인하려는 듯 힘을 주입하고, 감았던 눈꺼풀을 여는 것과 동시에,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개체보유스킬・《용자의 피Ⅰ》

     개체보유스킬・《기사의 명예》

     스탠스스킬・《페더 댄스 Ⅲ》

     스탠스스킬・《윈드 스탭 Ⅱ》


     코끝이 지면에 닿기 직전에, 탄력있는 넓적다리가 조여들며 앞에 깔린 돌의 길을 부수며 도약에 가까운 질주를 개시하였다.


     웨폰스킬・《체이서 스피어》


     양손을 좌우로 벌려 세 걸음 만에 다가가서, 평수의 검부터 먼저 구치나시히메의 목을 관통하려 들었다.


     "웃차."


     챙, 하고 벌레를 쫓는 듯한 가벼운 동작으로 검 끝이 튀어오른 것도 신경쓰지 않고. 다시 한걸음 나아가 허리를 노리고 역수의 검이 달렸다.

     사정거리가 긴 구치나시히메는 다가갈 때마다 움직이기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한 영거리의 참격.

     하지만 칼날은 월광의 궤적을 하늘로 그리며 가로막혀 버렸다.


     "그 때보다 빨라졌구나."

     "......칫."


     좌우를 둘러싼 담장 위에 서서 일부러 그러는 듯 박수를 치는 구치나시히메를 보며, 건드릴 수도 없었던 검섬의 여운을 바라보면서, 도망쳤다며 혀를 차고서 다시금 달려나갔다.

     

     웨폰스킬・《더블 브릿지

     웨폰스킬・《크로스 엣지》

     웨폰스킬・《질풍연참》


     오른쪽에서 2연, 좌우2연, 왼쪽 3연격.

     강검이라 불렸던 도그마조차, 상처입지 않도록 봐주면서 이길 수 없다고 언급했었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


       웨폰스킬・《악셀 소드》

     웨폰스킬・《파워 스틸》

     웨폰스킬・《스핀 슬라이서》


     숨도 못 쉬게 할 연격은 스치지도 않았고, 경쾌한 몸의 움직임만 보여주며 헛손질로 끝나버렸다.

     귀신의 형상을 얼굴에 띄운 미라를 보며, 구치나시히메는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이 세계에 온 후로 이 나라의 누구나 느끼고 있는 적수의 없음은, 구치나시히메의 자존심을 채우기에 모자란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뭘 손에 넣어 왔느냐? 이 정도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따위에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씨이이!!"


     양손을 벌리며 일부러 틈을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어도, 미라는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품에 파고들며 어깨에 메고 있던 쌍검을 밀착시킨 상태에서 내려쳤다.


     웨폰스킬・[갑옷절단・개]


     서로 움직일 수 없는 거리에서 자아내는 참철의 2연격을 회피한 자는 여태까지 없었다.

     하지만ㅡㅡ


     "너희들 인간은, 언제나 비참하고 처량해서.....화가 나."


     구치나시히메의 흰 어깨에 닿자, 참철의 묘기는 멈추고 말았다.

     흰 어깨에 닿은 채 나아가지도 못하고 떠는 쌍검을, 연민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구치나시히메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용자라는 존재 때문에 희망과 기대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고작 그런 수준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우리들 마물은 태어나면서부터 격이 있느니라. 그걸 돌연변이인 용자 주제에......아니, 그조차 되지 못한 반푼이가 이기려 하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느냐.

     인간은 강해질 수 있다. 우리들보다도. 그걸 난 알고 있어. 하지만."


     한발 앞으로 내디딘 것 만으로도, 몸집이 작은 미라는 지면에서 발이 떼어져 공중에 떠버렸다.

     다음 순간에는, 총알처럼 뒷편으로 패대기쳐졌다.

     바운드되면서 활공하는 화사한 기사는, 담장에 부딪혀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길 위에 뿌려진 것 만으로도, 찰과상으로 상처 입은 몸은 일어나려고 시험해보았지만 무릎부터 쓰러지고 말았다.


     겨우 일격.

     스킬도 아닌 통상일격.

     마력도 실려있지 않은, 순수한 힘만의 발차기.

     그 때도 느꼈던, 극명한 차이를 다시 느꼈다.

     

     "거기에 도달하는 자는 극히 일부다. 각성한 시점에서도 닿지 못하는 무능에게는 비참하게 오물을 마시고 엎드려 기며 싸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이니라.

     그렇다고 해도, 겨우 그 정도를 영웅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문명 레벨을 알 수 있지만."


     구치나시히메는 지면과 수평으로 뻗었던 다리를 천천히 내리면서,  자신의 지식을 확인하려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큭, 어.......쿨럭! 쿨럭!"


     직후, 호흡소리에 섞여서 휭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와, 격통을 참으며 어떻게든 옆으로 뛰었다.

     검은 털에 뒤덮인 거대한 팔이 미라의 옆구리를 노렸지만, 종이 하나 차이로 피한 주먹은 기세를 그대로 담아서 쳐버렸다.

     굉음과 같이 일어난 흙먼지. 방사선으로 난 균열이 그 위력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하아~ 이러면 예정이 물거품으로 되었구나."


     장난을 실패한 아이처럼 토라진 태도로, 무릎을 꿇으며 호흡을 정돈하는 바라보면서 머리를 쓸어올린 구치나시히메는, 재미없는 듯 왕성의 한 쪽으로 눈을 향했다.


     "카론에게는 미안한 일을 하고 말았구나. 이럴 예정은 아니었는데."

     "하악, 하악......예정.....?"

     "난 말이야, 카론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구치나시히메의 눈이, 처음으로 아이처럼 반짝이며, 볼을 붉히며 심취한 표정을 만들었다.


     "왕은 고독한 자다. 주변에서 기대는 신뢰에 대답하려 하면 할 수록 마음 속을 보일 수 없게 되느니라.

     난 제일 가는 이해자였지만, 역시 어딘가에선 부하로서 취급되고 말아서 말이다.

     그래서 인간인 이해자를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열기를 띈 숨을 토하며 자신에게 심취했었지만, 기세가 수그러지는 말에 따라 점점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우리들의....내 사랑하는 위대한 왕에게 알랑거리다니! 용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그 분에게 더러운 감정을 향해!! 농락하려 하다니!!"


     거칠어지는 칠흑의 오라가 주변의 빛을 지워버렸다.

     그것은 매우 왜곡된 제멋대로의 사상. 그럼에도 왕을 위함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허용할 수 없는 속 좁은 생각.

     카론이 왕이면서 마물이 아니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꾸며 놓았음에도 용서할 수 없다.

     언젠가, 인간과 같이 걸어가는 게 아닐까 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드러지게 모습이 붕괴되고 만 오른쪽 얼굴을 숨긴 채 미라에게 접근하여, 아무렇게나 몸통을 거머쥐고 들어 올렸다.

     휘감긴 손톱이 파고들자, 피라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네가 이런 바보 짓을 하는 이유 따윈 다 안다."

     "아윽........"

     "붙잡힌 공주를 구하러 올 셈이었겠지? 용자답게, 악을 쓰러트리고 카론을 구하려고 생각했겠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겼겠지?"


     미라의 눈이 경악에 휩싸여 부릅뜨였다.


     "아, 아니........!"

     "아닐 리가 있겠느냐. 너희들은 항상 그래. 힘없다고 알게 되면 구해야 한다고 착각하면서, 카론에게 몰려드는 해충에 불과해.

     사랑도 아닌 망상의 끝에서 자기중심적인 의분을 불러일으키지. 토나올 것 같은 정의감으로 돌아보는 것도 못하고 죽으러 오지.

     이런 녀석들이 카론과 같은 생물이라는 것 만으로도 열 받고, 신경을 쓰는 것조차 화가 나."


     말문을 잊은 미라의 부릅뜨인 눈이, 더욱 구치나시히메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였다.

     뇌에 외치는 듯이 도달하는 문자가, 미라의 연명을 지시하고 있다.

     카론이 말한다면 당연히 따르고, 카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지만, 그 속마음은 또 다르다.

     구치나시히메도 미라의 중요성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휘몰아치는 질투심은 멈출 수 없었다.

     주점에서 즐겁게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먼 곳에서 보고,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미라에게 자신과 카론의 관계를 보여주어, 주점의 일로 인상을 남기고 일이 이렇게 되도록 꾸며놓은 것이었다.


     초연해 보이는 구치나시히메였지만, 인간에게 품은 악감정은 바로니아의 기둥 중에서도 가장 강한 부류에 들어간다.

     오두막 시절부터 항상 새겨진 인간에 대한 공포는, 이제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루슈카는 인간에게 흥미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깊게 생각치 않았고, 또 하나의 베이오스는 그 존재 때문에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낮추어 보고 있다.

     카론과 가까운 위치에서 경치를 보고 있던 구치나시히메였기 때문에, 긴 고심의 나날을 가져오게 한 인간을 마음속 깊이 증오하고 있었다.

     카론과 가깝기 때문에, 마물으로선 그 마음에 다가갈 수 없다는 걸 알고서, 부아가 치밀었지만 인간의 친구를 찾아주려고 생각했다.

     그런 미라와 변함없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우우.......아아아아아악!!"


     스탠스스킬・《번개의 가호 Ⅰ》

     

     비명을 지르는 미라의 몸에, 번개가 흘렀다.

     큰 대미지로는 이어지지 않을 나쁜 장난이었지만, 그럼에도 미세한 마비가 싫어서 난폭하게 내쳐버렸다.

     다시 데굴데굴 지면을 굴러가서 눕는 연약함에, 이렇게까지 해서 살려둬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고 만다.


     ㅡㅡ카론이 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치나시히메는 인간에게 호의적인 대응을 하고, 친근한 태도를 만들어 보인다.

     그래서 지금도 스킬을 쓰지 않고 봐주면서 반죽음을 목표로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자, 조금 더 놀아보자. 아직 할 수 있겠지?"


     검을 지팡이삼아 일어서려 하는 미라에게 미소를 지어도, 그 눈동자에는 아무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는, 용자니까."


     용자는 마물에게 맞선다.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어도 향해야 할 것인가.

     구치나시히메에게 지목당하자, 말문이 막힌 자신은 무엇인가.

     단지 자신의 고집으로 시작한 이 싸움에 생명을 걸만한 의미는 있는가.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다.

     몰랐던 자신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 기분 나쁘다.


     희미한 시야 안에서 휘몰아치는 생각은 요령을 얻지 못했다.

     죽이라고 부추기는 피의 의지를, 오늘처럼 성가시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화면 저편에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폭행을, 카론은 그냥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구치나시히메에게는 몇 번이나 메세지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건 "알고 있느니라." 라는 는 말 뿐이었고, 어떻게 다룰지는 불명인 채였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구원으로 보내면, 그 자리는 수습된다 해도 미라에 대한 악감정을 늘리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뒷일을 기대한다면 그것도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다.


     "어쩌지어쩌지어쩌지......미라가 죽으면 역시 왕국과의 관계에 큰 지장이 생기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럼 왜 기절시키지 않는 건가."


     미라의 레벨은 30 정도.

     최고까지 키웠던 레벨 100인 구치나시히메와의 격차는 70이나 된다.

     이만큼이나 격차가 나버리면 어떤 공격을 맞아도 흠집조차 입힐 수 없게 된다.


     "미라......뭐하러 온 거야......"


     그녀는 용자가 아니다.

     그냥 피를 나누어 받은 것 뿐인 반푼이다.

     그건 스테이터스로 판별할 수 있고. 캐릭터의 겉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도그마제르딕트처럼, 바레일오더처럼, 그 눈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그것이 용자의 증표다.

     <용자> 스킬을 갖고, 그 강함에 의해 색이 바뀌는 용자의 증표.

     적색은 최저 랭크이고, 레벨 보정도 스테이터스 보정도 최저한의 상승치에 불과하다.

     약한 인간이 강한 마물에 맞서려 해도, 그 정도의 힘으로는 절대 대항할 수 없다.

     그것이 이 세계의 한계라면 어떻게 해도 무리다.

     하지만, 혹시, 만의 하나, 그 세계에 가까운 존재였다고 한다면.


     "......"


     다시, 미라의 몸이 공중에 떠오른다.

     크게 깎여진 체력 게이지가, 종말이 다가왔음을 고해주고 있었다.





     "이젠 신음 소리도 내지 않는군. 이제야 조용해져서 기쁘구나."


     고정되지 않는 시야는, 어디를 봐야 할지 알 수 없다.

     호흡도 가늘고, 지그이라도 멈출 것같다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애초에, 어째서 이런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지금까지 잡것을 상대하며 강하다고 착각해 온 모양이지만, 결국 우물 안 개구리. 진짜를 몰라."


     드문드문, 기분 좋게 혼자 중얼거리는 여자의 소리가 들렸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맞서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개구리였다면 평화롭게 지냈을 텐데.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꼴도 안 당했을 터인데."


     그 말대로다.

     그럼에도 온 이유는ㅡㅡ


     "카론은 널 필요로 하고 있지만, 쓸데없는 감정은 불필요해. 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고 말이야."


     그.....럴까.

     그건, 이 여자가 결정할 일이 아닐 것이다.

     오호, 생각났다.


     난 카론을 구하려 왔다.


     피의 의지를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여기로 왔다.

     그 온화한 얼굴이. 소심한 눈매가. 서투른 미소가.

     

     마물과 만났기 때문에 체념과 고뇌을 품고 있는 것을 보았으니까.


     왕이라고 한다면, 좀 더 왕 답게 행동하면 된다.

     그렇게 겁먹은 토끼처럼 안색을 엿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애를 받고 있으니, 좀 더 부하에게 마음을 드러내면 된다.


     미라는, 카론이 연기하는 왕의 모습이 단순한 허세라고 간파하고 있었다.

     같은 인간이어서 그런지, 또는 미라의 눈썰미가 좋아서 그런지.

     구치나시히메에게 들은 것처럼, 왕자에 앉은 왜소한 모습을 동정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는ㅡㅡ


     "자, 그럼. 이 이상은 죽여버릴 것 같으니. 슬슬 돌려보낼까."

     

     이제 말할 것이 떨어졌다며, 피웅덩이 위에 누운 미라에게 다가가는 구치나시히메.

     적당히 기억을 지우고 회복시킨 뒤에 인간의 나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귀찮지만, 자신이 일으킨 이상 스스로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붉은 웅덩이에 발을 디뎌서, 상체를 굽히고 머리카락을 쥐고 들어올렸다.

     새빨갛게 물든 용자후보.

     그 입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지.......않...."

     "응?"


     쉰 목소리는 확실히 들리지 않았다.

     무심코 되물은 구치나시히메는, 다음 말을 들으려 하였다.


     "......째서........카론은......자유.......가.......아냐........"


     그것은, 카론이 말했던 대사.

     그 때엔 응석부리는 귀족이 문득 스친 생각을 말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것이 카론의 실정이었다.


     "자유롭지 않느냐. 이만큼의 나라를 갖고, 모든 걸 생각하는 대로 할 수 있지. 그의 어디가 자유가 없다는 말이냐."

     

     진심으로, 구치나시히메는 그리 생각했다.

     그것은 마물의 관점에서 본 대답.


     파킨 하고, 몸을 내달리는 소리가 그침과 동시에, 무언가가 벗겨진 소리가 났다.


     "그럼.............






     

     역시 카론은 네놈들 마물에게 속박당하면 안돼."






     생기를 되찾음과 동시에 미라의 전신에서 황금의 빛이 분출하였다.


     "뭣!?"


     처음으로 경종이 울리는 걸 느낀 구치나시히메가 지면에 팽개치려고 했지만,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번개가 복부에 맞아서, 그 위력에 무심코 손을 떼고 물러났다.

     빛은 순식간에 모을 치유해 나갔고, 번개는 검이 되어 모습을 만들었다.

     더러움이 사라지고, 천천히 땅에 발을 디딘 미라는, 그 고고하고 아름다운 '기사의 명예' 에 합당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 하하......그런가. 있구나. 있었구나."


     천천히 열린 그 눈동자에 지펴진 황금의 불꽃을 보고, 구치나시히메는 오랜만에 잊고 있던 흥분과 공포에 웃고 말았다.


     스탠스스킬・《용자 Ⅶ》

     스탠스스킬・《뇌정의 말예

     스탠스스킬・《질풍순뢰 Ⅴ》

     스탠스스킬・《블레이드 댄서 Ⅴ》

     스탠스스킬・《뇌검의 사용자

     스탠스스킬・《반역의 레갈리아》


     갱신되어가는 스킬.

     상승해가는 스테이터스.

     사람 안에서 태어나는 인외.

     마물을 위협하는 진정한 집행자.

     에스텔드 바로니아 최대의 적.


     감탄과 경외를 담아서, 카론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ㅡㅡ용자, 라고.

    728x90

    '판타지 > 에스텔드 바로니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6 차  (0) 2021.01.23
    25 결  (0) 2021.01.23
    23 전  (0) 2021.01.21
    22 승  (0) 2021.01.21
    21 잡병  (0) 2021.01.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