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이토록 믿음직스럽지 못한 칼날로 어떻게 마수의 목을 베었을까. 약간의 마력의 잔재로 과일칼을 강화한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 해도 강도 면에서 문제가 있다. 얇은 과일칼이다. 고기를 자를 만큼 날카롭지도 않다.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제지할 틈도 없이 선명하게 마수의 생명을 끊어내는 그 손놀림에, 할은 등골이 오싹하게 오싹했다.
할의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압도적인 힘과 재능을 목격하여 솟구친, 동경과 애정과 집착이 압축된 듯한 감정. 눈앞에 있는 이 유일무이한 사람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납치해버리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자, 눈이 반짝거리며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할. 생각하는 내용이 무서워."
차분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제압하는 엘리스의 말에, 할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순식간에 제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깊게 숙인다.
"죄송합니다. 엘리스 님을 귀찮게 했을 뿐만 아니라, 불쾌하게 해드리다니........"
"늘 그랬던 일이이니 신경 쓰지 마."
차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지는 듯한 엘리스의 말에, 할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힐끗힐끗 엘리스를 쳐다보는 모습은, 마치 주인에게 혼날까 봐 두려워하는 강아지 같다.
자신감 넘치고 태연자약한 할의 한심한 모습에, 실버독의 포효의 영향이 가신 쌍둥이는 꼴좋다고 생각했다. 잘난 형에게 학대당하는 것은 동생의 숙명이지만, 그 폭군의 비참한 모습을 보니 기분 좋았다.
"이봐. 바,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블레인, 맥스, 라이트가 어색하게 다가왔다. 실버독이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한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엘리스를 바라보고 있다. 상황은 보고 있었지만, 곧이곧대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드레스 차림의 아가씨가 실버독을 한 방에 죽여 버린 것이다.
그 괴물을 보는 듯한 무례한 눈빛에, 할은 살기를 드러냈으며 더프와 러브는 짜증이 났다.
"라스 양.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어떻게 그 마수를 쓰러뜨렸나?"
블레인의 물음에, 엘리스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다프."
그런 블레인 일행으로부터 엘리스를 숨기듯이 앞서 나온 할은 주머니에서 얇은 카드를 꺼냈다. 거기에는 라스 후작가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프는 카드를 받아 들었다.
할은 미소를 지으며 회중시계를 꺼내 들고는 엘리스에게로 향했다.
"엘리스 님. 이제 연극을 보실 시간입니다. 나으리와 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머나, 이런! 옷 갈아입을 시간이 있으려나? 이 드레스는 연극을 보기에 적합하지 않잖아."
엘리스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하얀색 데이드레스는 다과회에는 어울리지만, 밤의 연극을 보기에는 다소 가볍다.
"물론, 옷을 갈아입을 준비도 되어 있고 시간도 있습니다. 저도 도움을."
"그건 됐어."
할의 자연스러운 변태 발언을 태연한 얼굴로 거절하며, 엘리스가 블레인 일행에게 미소를 지었다.
"죄송해요, 전하.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와 버렸으니, 이제 돌아가야겠어요. 제가 처치한 그 마수는 모험가의 규칙에 따라 제가 가져갈게요?"
할은 주머니에서 꺼낸 매직백에 실버독을 집어넣었다. 매직백은 왕가에 헌상될 정도로 희귀한 마도구인데, 왜 라스 후작가의 집사가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점점 늘어나는 수수께끼에, 블레인은 현기증이 났다.
"잠깐, 라스 양.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들께는 이미 러브가 마법으로 이곳을 알렸답니다. 그럼 남은 실습,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엘리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블레인의 말을 무시하고, 인사를 한 뒤 할과 함께 사라졌다. 전이 마법은 고급 마법이라서 궁정마술사 정도만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왜 저 두 사람은 사용할 수 있는 걸까?
또다시 의문점은 늘어났고, 놀라움이 너무 커서 모두 처리할 수 없어 머리를 싸매는 브레인 일행만이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