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화
    2023년 10월 08일 23시 56분 3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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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에게는 한 가지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다. 그녀의 친동생을 못났다고 학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녀의 여동생은 성마법의 재능이 없는 것 같고, 애초에 마력 자체도 거의 없다고 한다. 평민도 어느 정도 마법을 쓸 수 있는 이 나라의 귀족으로서는 상당히 드문 일이었지만, 그래도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성녀가 태어난 이상 백작가로서 체면은 지킬 수 있는데, 어째선지 릴리는 종종 여동생을 비하하는 말을 자주 했었다고 한다.



     '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나 자신이 그녀가 여동생 이야기를 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귀족들 사이나 궁정에서 가끔씩 그런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여동생은 못나서 사교계에도 내보낼 수 없다거나, 마력이 없어서 전장에서도 쓸모가 없다는 등의 소문 말이다. 성녀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평소에 착한 릴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동생이 상당히 못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불쌍하게도 사실은 성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설마 릴리가 그럴 리가. 그런 식으로 성녀의 여동생에 대한 소문은 가끔씩 나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자기를 대신하여 보낸 첼시를 거절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릴리의 약혼자로서 만났을 때만 해도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많이 겁에 질려 있는 것을 보면 실상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내 곁에서 마음대로 지내게 해 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마력이 생각대로 돌아오지 않았을 경우 백작가와 인연이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계산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친가가 싫으면 여기 있으면 되고,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면 된다. 그 정도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소문에 의하면 내가 성녀의 장래를 생각해서 물러났다고 하는데, 언니를 대신해 나의 간병을 해준다고 하여 첼시의 주가도 오르고 있다고 한다. 한편 그 성녀님은 현재 왕자를 쫓아다니고 있다고 하니, 정말이지 성녀의 속내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전 겁에 질렸던 첼시의 모습을 보면, 여동생을 괴롭혔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똑똑' 하는 은은한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래도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의 기척에도 무감각해졌으니, 정말로 마력이 고갈된 것 같다. 이건 예상이지만, 얼굴에 남아있는 독기가 마력의 회복을 늦추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마력이 완전히 회복되면 내가 직접 치유 마법을 걸고 있는 사이에 릴리에게 정화를 부탁할 생각이었지만, 이대로라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들어오라고라고 내가 말하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기 때문에 저녁 식사 때라고 생각한다. 그 예상은 적중했지만, 식사를 가져온 것은 메이드가 아니라 첼시였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 어째서 네가?"

    "저기......, 할 수 있는 건 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서요."



     메이드한테 부탁하다니, 이봐. 아무리 귀족 아가씨라지만, 그렇게까지 하녀 같은 짓을 할 필요는 없는데.



    "폐를, 끼쳤나요?"

    "아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첼시는 침대 옆 탁자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그 위에는 포토푀[각주:1]가 담긴 접시 하나만 있었다. 마력이 고갈된 피로감 때문에 식욕이 없어서, 지난 일주일 동안 내 식사는 이것뿐이었다. 지겹기는 하지만, 먹을 기운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 하자 첼시가 등을 받쳐주었다.



    "미안하군."

    "아니요."



     망설임 없이 나를 만지길래 조금 놀랐다. 대부분의 하인들은 내 얼굴에 남아있는 흉터와 독기의 흔적, 옅은 안개 같은 것을 보고 저주에 당할까 봐 만지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새 약혼녀는 의외로 간이 큰 것일지도 모른다. 뭐, 옮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어제와 같은 맛의 포토푀를 먹을까 싶을 때였다.



    "......혼자서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있다만."

    "네?"



     첼시가 서둘러 포크를 들고니, 한 입 크기로 자른 감자를 내 입으로 가져왔다. 혼자 서서 걷는 것은 아직 힘들지만 식사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얼굴이 금세 붉어지며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 마음은 고맙지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끄러운 건지 미안한 건지, 고개를 숙이며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첼시를 보고 있자니 은근히 죄책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그녀는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리다. 아이에게 못되게 굴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한 기분이 든다.



    "뭐, 상관없나 ...... 앙."

    "......엥?"



     입을 크게 벌려 보이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감, 자."

    "아, 네"



     재촉하자, 그녀는 서둘러 감자를 입에 가져왔다. 씹고 삼키고 다시 입을 벌린다. 당근, 양파, 소시지. 그리고 다시 감자로 돌아갔다.



    "...... 맛있나요?"

    "나쁘지는 않지만, 솔직히 질리긴 해. 재료도 별반 다르지 않고."

    "소시지를 허브가 들어간 것으로 바꿔도 달라질지도 몰라요."

    "그거 주방장에게 말해줘."



     소꿉놀이에 어울리는 느낌이었지만, 식사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겁에 질려있던 첼시도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 것이 편해서 이에 응했다.



    "잘 먹었다. 미안, 짐도 풀고 있었을 텐데..."

    "아뇨, 이미 끝나서요."



     그녀가 이 집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었다. 귀족 아가씨가 약혼남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기에는 정리정돈이 너무 빠르다. 설마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건 아니겠지?



    "......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나한테 말하기 어려우면 하인에게 부탁해도 되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게 대답한 후, 첼시는 빈 접시를 들고 일어섰다. 실례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방을 나가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첼시."

    "네."

    "고마워."



     이름이 불려진 것에 놀란 듯 몸을 움찔거리던 첼시는, 큰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빙긋이 웃었다. '네'라고 말하는 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순수하게 귀엽다고 생각했다.

     


     

     

    1. 소고기 야채 스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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