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장 13 계약결혼 ※리큐어 백작 시점(1)
    2023년 10월 03일 21시 45분 3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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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백작님. 마리아입니다!"





     자외선 차단은 철저히 하고 있지만, 밀짚모자에 머리를 넣어서 마치 소년처럼 꾸민 그녀는 처음 보는 나를 보고 그렇게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괜찮으세요? 제가 다가가면 기분 나쁘지 않으세요?"

    "...... 아니, 이상하게도 괜찮을 것 같아. 영민들 모두가 매일 네 이름을 불러서 그런가, 별로 남의 일 같지 않거든."

    "그래요? 그거 다행이네요. 그럼 백작님, 편히 쉬세요!"

    "뭐?"



     그렇게 말하자마자, 마리아는 그 자리를 훌쩍 뛰어나가 버렸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여성이 나에게 이토록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다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옆에 서 있던 멜비스는, 아연실색하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미안, 저 녀석, 기본적으로 적당한 녀석이라서. ...... 관심이 없어서 놀랐어?"

    "......어. 음, 그래."

    "얘기하고 싶으면 불러줄게."

    "아니, 괜찮다. 바쁜데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성실하네, 정말. 여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겠는걸."



     멜비스는 웃으며 마지막 남은 토마토 한 조각을 씹어 입에 집어넣었다.



    "그 녀석, 백작님이 있는 동안은 계속 바지만 입는대."

    "제가? 어째서죠?"

    "백작님은 우리 집에 온 첫날, 억지로 우리 엄마와 인사하려다가 쓰러졌잖아? 그래서 저 녀석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아."



     남작가의 가족 구성은 남작 부부와 장남 멜비스, 차남, 삼남에 장녀인 마리아가 있다. 참고로 차남, 삼남은 영지 밖에 있다고 한다.

     나는 마티니 남작령에 온 첫날, 당연히 남작부인과 장녀 마리아에게도 인사를 하려고 했다.

     마티니 남작이 부드럽게 말렸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입니다"라고 내가 간청한 결과 남작 부인에게 인사하게 되었고, 인사하는 도중에 현기증으로 쓰러졌으며, 그 후 몇 번이나 토하고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다.

     장녀 마리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를 배려해 주었나 보다.



    "그건 ...... 미안하게 되었군요."

    "고맙다고 말해줘. 그쪽이 더 기뻐할 테니까."



     내가 고개를 홱 들자, 멜비스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는 토마토가 담긴 바구니를 등에 짊어지고서 남작 저택으로 돌아갔다.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작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식사를 하고 목욕을 하면서 사색에 잠긴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소극적이 되었던 거구나......)



     아무래도 나는 자신을 스스로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 같다.

     긴 숨을 내쉬며 객실의 침대에 누워서는, 마티니 남작가에 와서 본 광경을 떠올렸다.



     푸른 하늘.

     알록달록한 채소들.

     토마토를 깨물며 웃고 있는 멜비스와 영민들.

     그리고 하루 종일 잘도 돌아다니는, 작은 바지 차림의 모습.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 나는, 그날 최근 반년 중 가장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마티니 남작에게 부탁을 해서 영민의 수확을 도와주기로 했다.



    "괜찮으십니까? 밭일이라고는 하지만 여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요."

    "예. 여기 온 지 벌써 3주째인데, 지금이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마티니 남작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내 옆에서 멜비스가 끼어들었다.



    "백작님, 마리아가 신경 쓰이는 거지? 아버지, 그 녀석에게 맡겨두면 괜찮을 거야."

    "호오."



     마티니 남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쳐다본다.

     내가 부끄러워서 눈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자, 마티니 남작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좋은 경향이군요. 그럼 우리 마리아를 안내자로 삼도록 하죠. 힘들 것 같으면 언제든 멜비스로 대신하게 할 테니 그때는 말씀해 주세요."



     그 기분 좋은 테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마리아예요! 아 이미 인사는 했었죠? 오늘부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작님!"

     

     다음 날부터 나는 마리아의 안내를 받으며 토마토를 수확하게 되었다.

     그녀는 변함없이 밭에서 농사짓는 남자들과 같은 바지 차림에, 머리도 모자 속에 넣은 상태다. 아무래도 땋은 머리를 돌돌 말아 밀짚모자 속에 넣어둔 것 같다.

     귀족영애답게 자외선 차단을 위하여 긴팔과 장갑을 끼고 있어서, 그녀의 피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는 웃는 얼굴의 근사한 농사꾼 소년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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