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장 11 마티니 남작 ※리큐어 백작 시점
    2023년 10월 03일 19시 51분 5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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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전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리큐어 백작. 이번 일로 인해 정말 미안하다. 왕족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용서해 달라는 말은 아니지만, 먼저 사과를 하고 싶군."



     그렇게 고개를 숙이는 전하를, 나는 어딘가 먼 세상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라고만 말하고 고개를 숙이며 침묵하는 나를 보고, 에드워드 왕세자 전하께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정말 미안하다. 나는 한 달 전쯤 이웃 나라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이제야 사정을 알게 되었거든. 솔직히 형님이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어......"

    "에드워드 전하, 속내가 다 드러났습니다만."

    "전에 없이 엄격하구나, 마커스."

    "그야 그렇죠. 왜냐면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 부드러운 테너의 목소리에, 나는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풍채가 좋고 인자해 보이는 남작이 생글생글 웃으며 앉아 있었다.



    "리큐어 백작. 괜찮으시다면 잠시 우리 집에 와서 요양하고 가시는 건 어떠십니까?"

    "...... 요양?"

    "예. 저희 집은 별 것 없는 남작령입니다. 시골스럽고, 한적하고, 시계가 없는 곳도 많을 정도니까요.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 리디아와 헤어질 수는."

    "지금은 떠나는 것이 좋겠지요."



     가늘게 뜬 눈동자에, 나는 움찔하며 허리를 쭉 뻗었다.



    "...... 어디까지 아는 겁니까?"

    "실례지만, 조금 전 집사 공에게서 당신의 상태를 들었습니다. 지금의 당신이 리디아 님과 함께 있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군요."

    "하지만...... 저는 리디아의 아비입니다. 단 하나뿐인 ......."

    "아비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지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내 아들뻘 밖에 안 됩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고개를 홱 치켜든 나에게, 마티니 남작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영지의 특산물을 아십니까?"

    "토마토와 호박......."

    "예. 여름 채소입니다. 특히 그 두 가지지요. 잘 아시는군요."

    "바로 이웃 영지니까요."

    "음, 잘 공부하셨군요. 정말 근면하십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마티니 남작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의 말이 기분 좋았다. 그 테너의 음성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저는 밭을 정말 좋아하지요. 항상 그 열매는 지금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이런 품종개량은 어떨까, 그런 것들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경이 쓰인다고 해서 너무 많이 만져서는 안 되지요. 식물은 너무 많이 손대면 뿌리가 썩기 때문이죠."

    "뿌리가 썩는다......"

    "예. 당신은 성실합니다. 지금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군요.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 방식이 약간이지만 당신의 마음에 너무 손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티니 남작은 그런 나에게 그저 미소만 지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모처럼의 이웃사촌이니, 두 달 정도만 비밀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머무는 건 어떠십니까?"





    ****



     나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인들에게 내가 집을 비운다고 말하자, 의외로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표정이었다.



    "나으리. 마티니 남작과는 이전에도 친분이 있었지만...... 그분은 상당한 능구렁이 같은 분이라서, 남작에 머물 만한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전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실제로 작위를 올려주려고도 했지만, 본인은 거절한 것 같던데."



     들어보니, 마티니 남작은 남작령에 '야채를 사랑하는 연구대'라는 부대를 발족시켜 단합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취미는 밭일, 본업은 밭 연구, 영주로서의 일은 생계수단이라고 한다.

     그는 '야채를 사랑하는 연구대' 안에서는 해외에서 정보를 얻거나 귀중한 종자를 입수하는 담당이며, 사실 일 년의 3분의 1은 각국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남작보다 작위가 올라가면 야채사랑연구대의 업무가!" 라는 것이, 그가 작위를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전하께서는 결국 그의 작위를 올리는 것을 포기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남작도 뭐, 파벌과 관계없으니 편리하긴 하지."라고 말하면서, 취미 생활 덕에 국제 정보에 정통한 마커스 마티니 남작을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 문득 집사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으리. 저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시찰에 힘내주십시오."



     집사뿐만이 아닌, 하인들 모두가 하나같이 각오를 다진 표정이었다.





    ===.



     사실, 그 후 에드워드 전하로부터 무서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실은 말이지 리큐어 백작. 이 사태는 더 이상 왕실도 막을 수 없게 되었어."

    "예?"

    "확실히 왕실은 리큐어 백작의 혼인을 추진하기 위해 여자를 보냈지. 리큐어 백작의 결혼을 암암리에 권유도 했었고. 하지만 사실 한 달 전쯤 내가 돌아와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형님에게 말했었지. 그래서 지난 한 달 동안은 왕실에서 리큐어 백작가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

    "......"



     창백해진 나에게, 에드워드 왕자 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난 한 달 동안, 미인계 공세는 딱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리큐르 백작은 원래부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지? 왕가의 권유 때문에, 리큐어 백작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던 여성들은 지금이라면 괜찮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 같아."

    "......"

    "물론, 수습을 위한 준비는 하고 있지. 하지만 정치의 힘으로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막을 수는 없어. 당분간은 현 상황이 지속될 것 같으니 미안하지만 참고 견뎌줬으면 좋겠어. 그런 상황을 고려해도, 너는 한동안 이 영지에 있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연실색하는 나에게, 에드워드 왕세자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



     리큐어 백작 저택에 남아 있는 하인들은 모두 이런 사정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리큐어 백작가와 리디아를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정말 고맙다. 미안하지만, 나머지는 뒷일은 맡기마."



     내가 겨우 미소를 짓자, 하인들은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정말 고마운, 둘도 없는 충신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마티니 남작령으로 장기시찰을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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