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4장 9 계약 부인 마리아의 동요
    2023년 10월 02일 21시 49분 3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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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리디아를 재우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저기, 아빠한테 물어봤는데, 아빠가 엄마를 좋아한다고 했어. 엄마, 기뻐?]





    (좋아해 ...... 좋아해!?)



     대체 무슨 뜻일까.

     내가 아는 백작님은 여성공포증에다 젊은 여성을 싫어하며, 한때는 노이로제에 걸렸던 불쌍한 남자였다. 찰랑거리는 은발과 보라색 눈동자가 신비로운, 시원시원한 눈매의 미남이다.

     아무리 잘못해도 나 같은 일반인을 '좋아'할 만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리디아는 거짓말을 할 만한 아이가 아니다.



    (아, 아니, 틀림없이 뭔가 착각한 거야. 그래, 내가 말했던 '좋아한다'는 말도, 분명 다른 의미로 전달됐을 테고 ......)



    [아빠는 엄마가 특별하게 아빠를 좋아해야만 한다고 했어. 구슬리기 전에 그런 준비도 하는 것 같아]



    (...... 이거, 뭘 어떻게 바꾸면 이런 내용이 되는 거람? 애초에 준비라는 게 뭐야!? 그다음이 있는 거야!?)



     점점 올라가는 체온에, 나는 당황해서 볼에 손을 댄다.



    "뜨거워!"

    "마님. 차가운 수건입니다."

    "준비성이 좋네요!? 역시 백작가의 시녀......!"



     나와 함께 있던 시녀 마사(나이 52세)는, 아무 말 없이 냉수건을 건네주었다.

     나는 수건을 받아 들고 필사적으로 볼을 식혔다.



     마사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눈을 돌리더니 떨리는 손을 스스로 꼬집고 있었다.

     오늘 리디아의 폭로를 듣고 난 뒤부터 나는 자신도 모르게 여러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서 마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마사의 필사적인 노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무심한 주인이다.



    "이거 괜찮을까...... 그래도 역시...... 오늘 저녁은 내 방에서 먹어야겠어."

    "괜찮습니다. 자자, 얼른 가보세요."

    "뭐......? 아, 알았어, 마사......."



     돌아서려던 나는, 마사와 다른 시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제지당하여 식당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어째선지 시녀들이 모여서는, 모두가 복도를 가득 메워 내가 방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백작가의 시녀들은 항상 복도 끝을 사뿐사뿐 걷는 고도의 교양인들인데, 어째서.......



     내가 식당에 들어서자 리큐어 백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백작님은 다른 여성에게는 웃지 않으셔. 혹시...... 나한테만......?)



     얼굴이 붉어진 나를 보고, 리큐어 백작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마리아?"

    "어,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어떡하지, 왠지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손과 발을 같은 쪽을 내밀며 어정쩡하게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백작님은 분명 여성스러움이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나를 대하고 있는 거야. 내가 그런 식으로 의식하는 건 절대 안 돼......!)



     두근거리는 심장에 손을 얹고 한 번 눈을 감은 후, 나는 리큐어 백작을 바라보았다.

     리큐어 백작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의 리디아의 표정과 꼭 닮았다.



    "마리아, 왜 그러지?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뇨, 아무것도! 무사! 평온한 나날이었습니다!"

    "...... 그래?"

    "네!"

    "그럼 다행이지만."

    "네!!"



     고개를 힘껏 끄덕이는 나의 모습에, 리큐어 백작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그는 정말 다정다감하다 .......

     여자를 싫어할 텐데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절했고, 계약결혼이 결정된 후에도 계속 나를 챙겨줬으며, 매일 무슨 일이 있으면 보고하라고 한 것도 백작님의 제안이어서.......



    (어떡하지. 왜 이럴까. 왠지 백작님의 좋은 점만 떠오르는데......)



     갑자기 시작된 머릿속에 떠오르는 백작님의 멋진 장면 하이라이트에, 나는 점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볼에 손을 대었다.



    "뜨거워!"

    "무, 무슨 일이냐 마리아. 역시 몸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만?"

    "아, 아니에요! 그, 몸 상태는...... 하지만, 으음............."

    "...... 아니, 무리하는 것은 좋지 않아. 아마 열이 있는 것 같은데, 혼자서 서 있을 수 있겠어?"



     리큐어 백작이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름다운 존안이 눈앞에!



    "아아아아아니요, 저기, 그, 리디아가! [백작님이 엄마를 좋아한대~!]라고 말해서 조금 놀라서요, 아하하......"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로 당황하면, 사람은 진실을 말하게 된다고 한다.

     문득 깨달았을 때, 어째선지 나는 왜 당황했는지 다 털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눈앞의 백작님이 얼어붙은 채로 뺨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붉어지더니, 결국 귀까지 붉어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이해했다.

     리디아는 나에게 틀림없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비록 절찬리에 시뻘게지는 중이기는 했지만!



    "저기......"

    "...... 아, 미, 미안. 그, 것은...... 놀라, 겠지......"

    "...... 네............"

    "......"

    "......"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리큐어 백작은 내 자리 옆에 서서 바닥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심장 박동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왠지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데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 흐른 후, 리큐어 백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오늘은, 각자 방에서 먹을까."

    "네."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해도 되겠지......"

    "...... 네."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새 나는 내 방에 있었고, 마사가 목욕 후의 내 머리를 말려주는 중이었다.



    "저, 저기? 나, 벌써 목욕을 마쳤어?"

    "네. 조금 전에 제대로요."

    "그, 그래."



     시녀들이 손질하고 있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마님?"

    "나, 너무 평범해. 이 저택에 어울리지 않아서, 그래서, 그......"



     부드러운 갈색 머리에 벌꿀색 눈동자. 못생기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얼굴.

     방금 전까지 보았던 리큐어 백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귀여운 리디아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우울해하는 나의 모습에, 마사는 싱긋 웃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거울 속 마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님은 나으리의 마음을 기쁘게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뭐!?"

    "그래서, 어울리는지 아닌지 고민하시는 거죠? 마사는 두 분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요."



     새빨개져서는 눈물지으며 떨고 있는 나에게, 마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내 몸단장을 마치고 나를 침대에 눕히고서는 "안녕히 주무세요, 마님."이라는 말만 남기고 시녀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침대 위에 남겨진 나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였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자는 건강우량아라는 사실만이 자랑이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밤에 잠을 설친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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