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장 10 리큐어 백작의 수난 ※리큐어 백작 시점
    2023년 10월 03일 19시 11분 3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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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분한 남자."





     첫 아내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



     나는 리큐어 백작가의 외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조부모님도 살아 계셨고 사촌들도 3명이 있어서, 수는 많지 않지만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가족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나는 리큐어 백작가가 고위 치유 마법사를 배출하는 특수한 가문으로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별다를 것은 없다.

     단지 다른 귀족들보다 조금 더 많은 혼담이 있을 뿐이며, 그 외에는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척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도적의 습격을 받은 부모님과 전쟁에서 죽은 두 사촌 형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으로 사촌 부부가 사고로 죽었을 때에는 치유 마법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며 분개했다. 마법사가 치명상을 입으면 치유 마법을 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치유 마법, 그 사용자를 만들어내는 이 피에 얼마나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사촌 부부가 사고로 죽었을 때, 적어도 내게 아내가 있었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리디아의 어머니와 헤어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도망친 상태였다.

     리디아의 어머니 카라는, 리디아가 생후 6개월 때 이미 서명한 이혼 서류를 남기고 불륜 상대와 함께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



     카라는 카우언 자작가의 장녀였다.

     그리고 나와 카라의 결혼이 결정된 것은 카우언 자작가의 약혼 제의가 있었고, 우리 리큐어 백작가가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뿐이었다.

     아무래도 내 할아버지는 카라의 할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카라가 가출했을 때,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사과를 했다.



     카라는 자유분방한 여자였다.

     주홍색 머리에 처진 눈이 특징이며, 굴곡진 몸매에 항상 화장을 짙게 하고 다녔다. 내가 그녀의 화장기 없는 민낯을 본 적은 사실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나와 카라가 만난 것은 내가 20살, 그녀가 19살 때였다.

     부모님과 두 오빠에 둘러싸여 금이야 옥이야 자란 그녀는 콧대가 높았고, 사교계에 데뷔한 그녀는 사랑에 자유로운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왜 나에게 관심을 가졌냐 하면, 아마도 외모와 혈통 때문인 것 같다.



    "당신, 야회의 왕자라고 불렸어. 치유 마법사를 낳는 혈통이라는 것도 특별한 느낌이 있어서 좋았고. 나, 당신을 잡은 게 자랑이었으니까. 이런 남자일 줄은 몰랐지만."



     그녀는 가출하기 조금 전에 그런 말을 했었다.



     그녀는 약혼 초기부터 가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어서, 나도 솔직히 약혼과 결혼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며 따분하게 생각했었다.

     딱히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른 관계도 아니다.

     애초에 내가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었고, 이 결혼을 원했던 그녀가 만족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대신, 그녀가 어느 정도 돈을 탕진해도 모른 척했다.

     딸에게 내 피가 섞여 있는지의 여부만 걱정이어서,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하인들까지 걱정할 정도였다. 태어난 리디아가 너무도 나를 닮은 얼굴이어서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튼, 나는 카라를 자유롭게 놔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의 행동에 관심이 없는 내 모습이, 카라에게는 매우 불만스러웠던 모양이다.



    "나, 정말 인기가 많은 영애였어. 그런데 뭐야. 그렇게 한 발짝 물러서서, 관심 없어 보이는 척 하기는."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조용히 하는 점도 싫어. 정말, 실패했네...... 따분한 남자."



     이것이 그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였다.



     그리고 그녀는 서명이 끝난 이혼서류와, '남친과 나갑니다' 라고 적힌 편지를 남기고 가출했다.



     나는 아,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녀가 한 일은 백작부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나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인 카라가 떠났는데도, 뭐, 서로 잘 안 맞았구나 정도의 느낌밖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리큐어 백작가로서 카우엔 자작가에 대해 앞으로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는 정도는 했다.



     문제는 리디아다.

     나는 카라와 잘 지내지 못한 것에 대해, 리디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리디아는 태어날 때부터 유모 앨리스가 키웠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본 적도 없이 자랐다. 카라의 입에서 리디아에 대한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았고, 게다가 그녀는 떠나버렸다. 나는 솔직히 후처를 들일 것 같지도 않다. 리디아가 평생 어머니를 모른 채 자라게 될 것을 생각하면, 죄책감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 상황에서 왕가의 미인계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의젓한 어른으로서, 다가오는 여성들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피곤하긴 하지만 저들이 날 싫은 것은 아니니, 불평하는 것도 뭔가 좀 아니라며 참고 견뎌왔다.

     하지만 정신적 부담이라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쌓여가는 것 같다.

     점점 컨디션이 나빠지고, 야회에서 최음제에 당하여 필사적으로 마차를 타고 리큐어 백작가로 도망친 다음 날 아침, 나는 이제 여성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



     실내에 젊은 여성이 있으면 메스꺼움과 현기증이 난다.

     유모 앨리스조차도 나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빠, 안색이 안 좋아.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달려와서 내민 리디아의 손을, 그것도 5살짜리 딸의 손을, 나는 무심코 쳐내버린 것이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리디아의 손을 잡으며 아무 일 없다고 말해야 하는데, 손을 뻗으려 해도 몸이 떨려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리디아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에게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하던 유모 앨리스가, 벽가에서 뛰어와서는 울고 있는 리디아를 데리고 갔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죽여줘."라고 말하는 나에게, 집사는 아무 말 없이 가운을 씌워주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침대에서 쉬고 있는데, 왕의 동생 전하와 마티니 남작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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