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왕도에서 (2) ~과거와 현재~ ――244(●)――(1)
    2023년 09월 30일 23시 11분 3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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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 양 날개에서 습격을 받은 모양새가 된 제2진 콜트레치스 기사단에서 지휘를 맡고 있던 기사단장 라우터바흐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왕국군은 시민을 공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고, 이른바 몰아내기가 성공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진이 광적으로 적을 쫓아간 결과, 침착하게 진군하던 2진과 큰 틈이 생긴 틈을 타 시민군들을 무시하고 왕국 기사단이 양쪽에서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완전히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왕국군 안에 있어야 할 본대의 움직임을 확인하기도 전에 자신들이 먼저 공격의 표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경고의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왕국군 최정예 부대 기사단에게 좌우에서 협공을 당한 라우터바흐는 경직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격을 지시하려 했다.

     그 반응은 결코 늦지 않았지만, 반격을 명령하는 목소리가 전체에 전달되기도 전에 주변에서 비명과 피가 튀는 소리가 들려왔고, 흙먼지만 느껴지던 전장의 공기는 순식간에 피 냄새로 물들었다.

     이번 왕국군과의 전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보존되었던 콜트레치스 기사단 본대의 전의는 결코 낮지 않았지만, 마물 폭주에서부터 왕도 방어전까지 싸워온 기사단과는 실전 경험도, 숙련도도 너무 달랐다. 콜트레치스 측 기사단으로 구성된 2진 중 한쪽이 뚫려 전열이 흐트러지자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다.



     "좋아, 가자"



     기사단의 돌격을 확인하는 것을 전후로, 미타크 자작의 부대가 화려하게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적의 제1진인 시민군의 후방으로 돌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쪽은 많은 깃발을 들어서 의도적으로 눈에 잘 띄도록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광란의 질주를 하던 시민군들은 대군으로 보이는 미타크 부대의 존재에 놀랐고, 더 나아가 후방의 콜트레치스 후작의 기사단이 붕괴된 것을 보는 순간, 지나치게 높았던 전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들의 의지처인 기사단을 더이상 의지할 수 없고, 자신들이 포위당하는 것을 상상하는 순간 이번에는 싸우고 전장을 이탈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밀어붙여라!"

     "헛되이 죽이지는 마, 하지만 놓치지 마라. 확실하게 붙잡아라."



     그 모습을 본 크랭크 자작과 데겐코르프 자작이 각각 자신의 부대에 반격 명령을 내렸다. 자극을 받아서 전장에 나온 단순한 인간을 성벽 안에 가둬두면 그것도 그거대로 귀찮은 일이지만, 한편으로 그들도 시민인 것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정치적 판단에 따라 크랭크 자작과 데겐코르프 자작은 나중을 위해 상대를 포위하고서 무기를 버리라고 명령하는 방식으로 1차 진영을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무렵, 2군 쪽에서도 전세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왕국군의 힘이라기보다는 계속 선제공격을 당하였던 콜트레치스 측의 대응이 악수에 악수를 거듭한 결과였다.



     결국 본인들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콜트레치스 후작가의 다윗은 콜트스에 있는 '신탁의 무녀'로부터 왕국군과 왕태자를 마을 안으로 끌어들이면 승리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고, 개전 직전에는 이를 주요 인물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기사들이 출격에 응한 것도 애초에 그 신탁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신탁 자체에 대해는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콜트레치스 기사단의 대다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윗 경이 정말로 신탁을 받았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라우터바흐였다.

     물론 밤마다 그 신탁의 여사제를 침실로 끌어들이고, 게다가 장남의 죽음으로 인해 후계자가 된 청년의 말을 믿기 어려웠던 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야습을 거부당하고, 다윗이 실전 경험이 적어서, 어쩌다 돌격이라도 당하면 안 된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라우터바흐는 여기서 큰 실수를 저지른다.

     혼전이 벌어진 전장에서 실전 경험이 없는 젊은 다윗을 믿고 맡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곁에서 독단적인 지시를 내릴 수도 없다는 생각에 주변 기사들을 시켜 다윗을 먼저 콜트스 성 안으로 강제로라도 데려가라고 명령한 것이다.

     왕태자와 왕국군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의 일환일 것이라고 판단한 기사들은 즉시 그 지시에 따라 다윗을 에워싸고 고삐를 빼앗아 말을 몰아서 강제로 전장에서 이탈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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