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출발하면서도 일부러 천천히 군대를 움직인 그날의 저녁, 눈에 띄는 형태로 콜트스 근교까지 진격해 온 왕국군에 맞서 콜트레치스 측도 출격했다. 왕국군의 5분의 1도 안 되는 인원이다.
원래 여기까지만 해도 코트레치스 후작 측에는 묘한 정체감이 감돌았다. 왕국군이 가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콜트스의 도시 자체를 포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성문을 굳게 닫고 있던 콜트스였지만, 왕국군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장작처럼 내부에서 부족하기 쉬운 물자를 채집하기 위해 남쪽 문을 통해 영민들이 드나들었다.
그러던 중, 왕국군이 마을 자체를 불태워버릴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내부에서는 남문에서 도망치는 자와 철저한 항전을 외치는 자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그래서 콜트레치스 기사단은 왕국군에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콜트스의 주민들과 기사단은 알 길이 없었지만, 이는 휴벨이 함정을 깔면서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왕국군이 콜트스를 완전히 포위하고, 그 후에 코르틀레지스 후작 측이 무조건 항복하면 입성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적의 화약고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휴벨은 일부러 하루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도시를 포위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몰래 써먹고 있었다.
보통 전투는 새벽녘에 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포위당하기 전에 먼저 한판 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콜트레치스 측의 판단이었다.
무모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혼란에 빠진 성 내부를 보고 왕국군 측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콜트레치스 후작가의 다윗이 강경하게 출격을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콜트스를 포위당한 뒤에 야습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군 내부에서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콜트레치스 후작가의 기사단장 라우터바흐 등은 야간 습격이 대군을 혼란에 빠뜨리기 쉽다며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콜트레치스 제3도시인 후스한에서 온 원군을 이끌고 있던 대장의 [그 휴벨투스 전하가 이끄는 군대에 야간 습격이 통하겠느냐]는 의견이 많은 동의를 얻어, 본래는 싸우기에 부적합한 시간대부터 전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왕국군 측의 선봉에 선 것은 데겐코르프 자작과 크랭크 자작이 이끄는 가문의 기사단이다. 부대의 중앙에 있던 두 사람은, 적의 세력을 보자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무기를 든 영민 등인 것 같군."
"자포자기한 것일까요?"
옆에 있던 기사 중 한 명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데겐코르프는 고개를 저었다.
"수적으로도 너무 차이가 나고, 보통이라면 '콜트레치스 대공'이 된 왕태자 전하와 싸우고 싶지 않겠지. 아마 영민들을 선동하는 세력이 있을지도."
"전의 그 사그의 잔당일까요?"
"아마도."
마을이 불타버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뜻일 것이다. 광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상태의 적을 발견한 데겐코르프는, 좌우의 기사들을 불러 예정대로라고 알렸다.
데겐코르프가 대열을 정비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동시에, 크랭크도 최전방에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있다.
"저것과 싸워봤자 가문의 명예는 될 수 없지. 예정대로 철수하자."
"옙."
용맹한 크랭크도 광란에 빠진 민중을 상대로 무위를 떨칠 생각은 없다. 신호를 보내고서 스스로 맨 뒤에 남아 대열을 물리기 시작한다. 적의 맨 앞줄에 있는 자들이 닿지도 않는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크랭크는 더 서두르라는 신호를 보냈다.
왕국군의 선봉대는 약간의 원거리전으로서 돌을 던졌지만, 곧장 직접 싸우지 않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것은 느린 후퇴에서 등을 돌리고 달리는 듯한 속도로 바뀌어서, 순식간에 양군 사이에 거리가 벌어졌다.
이를 본 콜트레치스 측의 선두에 서 있던 시민군들이 달려왔다. 원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아니었다. 실전 경험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눈앞의 상대가 싸우지도 않고 후퇴하는 것을 보고 열광에 불이 붙었을 것이다.
아직 냉정했던 몇몇의 제지하는 목소리를 뿌리치고 대다수가 뛰쳐나갔다.
콜트레치스 측의 대열이 세로로 길게 늘어났다. 1진과 2진 사이에 틈이 생겼다. 그때 왕국군 선봉부대의 후퇴에 섞여 좌우로 크게 돌아갔던 제1, 2 기사단이, 좌우 양측에서 콜트레치스 측 제2 진영의 측면을 강습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