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경이 도망쳤다!"
라우터바흐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나 지시를 들은 사람이라면 그걸 들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혼전 상태에서는 지시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당연히 거리가 있는 곳에서는 보이는 풍경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윗과 라우터바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왕국군의 맹공을 지원하던 시종 중 한 명이, 여러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코르토스 쪽으로 돌아가는 다윗을 보고 무심결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런 발언은 곧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경이 도망쳤다!"
"우리는 버림받았어!"
작전을 듣고 있던 기사라면 몰라도, 그 부하들에게는 자세한 작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출격을 주장했던 다윗이 가장 먼저 전장을 이탈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는 반응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왕국군의 기사들도 '적장이 도망친다! '라고 호응하는 형태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콜트레치스 후작가의 기사단의 사기가 혼란에서 붕괴로 넘어가는 데는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망치지 말고 싸워라!"
라우터바흐의 목소리도 혼전 속에서 주변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출격을 주장하던 다윗이 그 자리에 없다. 미타크 자작의 부대가 뿌리는 모래먼지로 인해 1진의 전황이 보이지 않는 것과 맞물려, 기사단에서도 전장을 이탈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혼란을 그냥 지나칠 왕국군 기사단이 아니다. 전투도끼를 휘두르고 창으로 찌르며 도망치려는 상대를 뒤에서 물리치고 말 위에서 떨어뜨린다. 땅에 쓰러진 기사가 반격하려 하자, 투구 너머로 메이스에 맞는 바람에 칼집에서 검을 빼려던 콜트레지스 측 기사가 땅에 엎드린 채로 쓰러졌다.
이런 혼전 속에서도 왕국군은 오히려 여유를 가지며 싸우고 있다. 원래 이 전투에서는 적의 기사를 인질로 잡더라도 몸값을 지불해야 할 상대를 처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포로로 삼을 실익이 적은 것이다.
또한, 콜트레치스 후작 측은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계획이라는 것이 왕국군 내부에도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작전 전개에 대한 문제도 있다. 그렇다고 현 단계에서 포로를 많이 잡아버리면 왕국군에게도 부담이 크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왕국군은 콜트레치스 기사단에 대한 추격을 일부러 자제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먼저 전장을 이탈한 다윗은 그렇다 치더라도, 라우터바흐는 전장에서 포로로 잡히거나 전사했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이다.
콜트레치스 측의 대부분이 성안으로 도망쳐 돌아갔지만, 해자에 걸린 다리는 올리지 않았다. 그것은 원래 계획했던 왕국군을 끌어들이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계획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상대를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다리를 내리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성벽 위에 올라간 다윗과 라우터바흐는 전황을 지켜보며 서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끌어들여야 할 왕태자의 본대가 열려 있는 코르토스의 북문을 무시하고 동문으로 향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휴벨은 열린 성문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추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무심히 무시하는 상대를 보며 그럴 리가 없다고 외치는 다윗의 옆에서, 왕국군 기사단의 돌입을 우려한 라우터바흐는 서둘러 다리를 끌어올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왕국군의 다음 움직임에 당황한 표정을 짓게 된다.
왕국군은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지붕을 씌운 파성추를 해자 바로 앞에 여러 대를 배치하여, 더 이상 다리를 내리고 북문에서 출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다음 감시를 위한 한 부대를 남겨두고 대부분의 병력이 동문 쪽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그리고 동문을 무시하는 것처럼 전군이 맹렬하게 토목공사를 시작했다.
상황도, 의도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해가 지고 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흙을 파고 토성을 쌓아 올리는 왕국군의 움직임을 보며, 콜트레치스 측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목적과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같은 날 자정이 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