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왕도에서 (2) ~과거와 현재~ ――233(●)――(3)
    2023년 09월 28일 20시 40분 4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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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서 베르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필요한 일이 늘어난 것에 대한 불쾌한 표정을 감추려 하지 않자, 지나가던 기사들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다.

     걸어가면서 노이라트와 슌첼에게도 몇 가지 지시를 내렸리, 그대로 몇 군데를 연달아 방문하고 필요한 인원을 빌리며 이후의 연출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마을이 점령당한 데다 장남의 약혼 파기로 건물 전체가 침울해져 있던 상회 앞에, 수많은 불빛을 밝힌 기사의 행렬이 늘어선 것은 해가 바뀔 무렵의 일이었다.

     부름에 놀라 상회 밖으로 나온 상회장의 장남을 향해, 마차에서 내린 소녀가 감격에 겨운 듯이 안겼다.



     "바트 님!"

     "아, 아니카!? 왜 여기에 ......"

     "감격의 재회를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경이 바트 라마즈인가?"



     베르너가 영업용 미소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놀란 청년에게 말을 건넸다. 말을 건네받은 청년과 그의 아버지가 경직되었다. 방금 전 이 마을을 점령한 군 귀족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당황해 인사를 하려는 두 사람에게, 베르너가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굳이 이름을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베르너 판 체아펠트다. 아니카 아가씨를 돌려주마."

     "어, 어째서 자작님이  ......"



     상회장인 아버지가 경직된 가운데, 아들인 바트 쪽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베르너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끼리 억지로 맺은 약혼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데 내가 끼어들 수는 없지. 무엇보다 나 자신도 경과 비슷한 입장이니까."



     이 말에, 부자만이 아니라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에 모여 있던 백성들도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평민 출신의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려던 체아펠트 자작과, 그 소녀를 빼앗으려는 콜트레치스 후작가라는 상황을 떠올렸던 것이다. 베르너 자신이 그 당사자와 같은 입장이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떠올렸다.

     일부러 그 일로 주위의 생각을 유도한 베르너가, 미소를 지으며 바트에게 말을 건넨다.



     "경이 소꿉친구라는 관계이며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았다는 것은 확인했다. 아니카 양의 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지위를 잃을지도 모르지만, 경은 그래도 아니카 양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가?"

     "물, 물론입니다! 반드시 행복하게  드리겠습니다!"



     뒤에서 맥스가 풋풋하다며 작게 웃고 있지만, 베르너는 모른 척하며 귀족답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바트 라마즈. 경의 그 결심에 찬사를 보낸다. 전례대신의 후계자이면서 자작인 베르너 판 체아펠트의 이름으로, 두 사람의 약혼을 축복하노라!"



     베르너의 선언에 맞춰 불을 켜고 줄지어 서 있던 기사들의 행렬이 나팔을 불며 축하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에 맞춰 마을 곳곳에서도 같은 노래가 울려 퍼졌다. 체아펠트 부대뿐만 아니라 할포크 백작대 등의 나팔수들이 마을 곳곳에서 불어버린 것이다.

     속으로는 한밤중에 민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베르너는 말 위에 올라탔다.



     "아쉽게도 나는 바빠서 경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지만, 행복하게 지내도록."

     "가, 감사합니다!"

     "자작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바트와 아니카가 반쯤 울먹이는 표정으로 말 위의 베르너에게 말을 건넸다. 바트의 아버지인 상회장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베르너는 이 두 사람의 관계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규모는 결코 크지 않은 마을일지 모르지만, 상회장의 입장에서는 관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장남과 관리의 딸의 관계를 추진한 것은 상회의 이익도 포함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만큼 자이펠트가 대관직을 잃었을 때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베르너는 살짝 참견해 본 것이다. 전례대신의 아들이 축복한 약혼을 파기하는 일을 해버리면, 귀족의 체면을 구긴 상회가 되어 귀족과의 관계가 크게 손상될 것이다. 상회장으로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동시에 점령한 마을의 첫 번째 화두가 축하의 이야기라면 왕국군에 대한 마을의 인상도 달라질 것이라는 심산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귀족 가문의 협조를 구하여 마을 전체에 퍼트리나는 연출을 한 것이다. 참고로 이 노래를 신호로 자이펠트는 체포되었다.



     심야에 일어난 이 일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날 새벽에 마을 전체에 퍼져나갔고, 마을 주민들은 왕태자 휴벨투스가 이끄는 왕국군 본대를 환영의 목소리로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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