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하기 시작한 병사들의 모습에, 요새에 배치된 소수의 콜트레치스 기사가 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고 소리쳤다. 본인의 속마음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기사로서 임무에 충실하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왕세자 전하라면 왕자님이잖아? 그런 분과 싸워도 괜찮을까?"
"후작님의 가문에서 왕이 나온다고 기사님은 말했다고."
"그게 사실이려나..."
[왕태자 전하의 명령을 반복한다.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요새를 빠져나오면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한다!]
베르너의 말을 빌리자면, 권위에 의해 강제로 복종하는 인간에게는 더 높은 권위가 더 효과적이다. 기사보다 귀족이 더 무섭고, 후작보다 왕자가 백성들에게는 더 위대하다. 병사들이 서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코르트레지스 기사가 적의 말을 믿지 말라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
다음 순간 포위군 쪽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러 대의 투석기에서 거대한 상자가 연이어 발사된다. 요새 상공에서 상자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상자 안의 내용물이 공중으로 퍼져나가더니, 반짝이는 햇살을 반사하며 요새 안쪽으로 퍼져 내려왔다.
무엇이 떨어졌는지 확인하는 순간, 성벽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은이다, 은화다!"
"금화도 있다! 저 가방 안에는 뭐가 들어있지?"
"저 저건 보석이잖아!?"
"자, 잠깐, 제자리를 지켜라!"
기사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징집된 군복을 입은 마을 사람들이 땅에 떨어진 금화, 은화, 보석을 향해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은 바닥에 엎드려 떨어진 물건을 줍고, 또 다른 사람은 더 큰 보석을 얻기 위해 엎드린 사람을 밟고 지나간다.
옆 사람을 때려눕히고서 상대방의 물건을 빼앗으려는 사람. 제지하려는 병사에게 역으로 욕설을 퍼붓는 사람. 심지어는 자신이 주운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칼을 뽑아 위협하는 사람까지 등장한다.
마침내 화가 난 부하 중 한 명이 칼을 뽑아 땅에 떨어진 물건에 달려드는 사람을 베어버리자, 혼란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무기를 버리고 금화를 줍는 사람이 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남을 무시하고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평정심을 잃고 어떻게든 명령을 듣게 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무기를 휘두르는 시종과 기사들을 향해, 주운 금화 자루를 든 병사가 뒤에서 부딪혀서 함께 쓰러진다.
성벽 안쪽에서 의연하게 활을 들고 있던 병사 중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왕국군이 방패를 들고 요새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시를 내려야 할 기사들은 요새 안의 혼란을 수습하는 중이고, 게다가 여기저기서 그 보석은 내 거라느니, 금화가 있다느니 하는 소리가 울려 퍼져서 경계하는 목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는다. 성벽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 몇 명이 산발적으로 화살을 쏘아댔지만, 그것으로 멈출 리가 없었다.
무기를 휘두르는 기사와 시종에게 겁을 먹은 평민들이 얼굴을 맞댄 후, 성문 안쪽에서 성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간다.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요새 밖으로 나가면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뛰쳐나온 이들은 공격을 받지 않았다. 이미 사다리를 이용해 벽을 넘은 병사들이 요새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주전장이 요새 내부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요새 안으로 진입한 왕국군이 대열을 지으며 무기를 들었다.
"도망가는 자는 추격할 필요가 없지만, 저항하는 자는 용서하지 마라!"
사다리를 타고 벽을 넘은 오겐이 그렇게 외치며 검을 휘둘러 요새 안에 있는 저항자들을 베어버렸다. 오겐과 함께 요새 안으로 들어간 병사들이 문을 열어둔 채로 고정한다. 그 문을 통해 도망치는 농병들의 옆을 지나며 왕국군 장병들이 눈덩이처럼 밀려드는 것을 본 콜트레치스 측 병사들도 요새의 뒷문을 향해 달려가서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극소수의 기사와 시종들만이 저항을 시도했지만, 요새 안으로 침입한 탓에 기사들 중에도 도망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요새를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