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1부 또 하나의 첫사랑 4
    2023년 09월 23일 18시 43분 5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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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가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곧 결혼을 앞둔 데다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펠릭스에게 이 상황을 들킨 것은 꽤나 난감한 일이다.



     펠릭스의 눈빛은 역시나 차가웠고, 나는 황급히 루피노에게서 떨어져서 펠릭스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은 이 방에서 뭘 하고 있었지?"

    "물약을 만들려고 했어. 그러다가 내가 엘세 리스의 환생이라는 사실을 루피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전생의 기억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펠릭스는 눈을 크게 뜬다.



     그러자 루피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가 멋대로 한 일입니다."

    "......부디 고개를 들어주세요."



     펠릭스는 그 말만 하고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재회했으니, 그리워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감사합니다."



     그 후 두 사람은 업무와 벨타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펠릭스의 모습도 평소와 다름없어 안심이 되었다.



    "그럼 저희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세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도록 이쪽에서도 준비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펠릭스, 화난 거 아니지......? 다행이야. 내가 너무 자의식 과잉이었던 것 같아)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지요. ㅡㅡ티아나."

    "응?"

    "약초는 여기에 두고 갈 테니,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그래, 고마워."



     이윽고 그 말을 끝으로, 루피노는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지금까지와는 달리 '티아나'라고 불린 것에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원래는 엘세라고 불렀고, 나한테 '님'이라고 부르면 서로가 불편한걸)



     어쨌든 루피노에게 들켜버렸지만, 지금까지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리고 펠릭스에게 이 방에 대한 감사와 방금 전의 사과를 전하려고 할 때였다.



    "나도 이제 갈게."



     그는 부자연스럽게 내게 등을 돌리고서 그대로 방을 나가려고 했다.



    "앗, 펠릭스! 잠깐만!"



     나는 급히 쫓아가 펠릭스 앞에 서서 그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부자연스럽게 얼굴을 돌렸다.



    (역시 펠릭스는 화가 났어)



    "미안해, 내가......."

    "티아나가 사과할 필요는 없으니 신경 쓰지 마."



     목소리도 말투도 평소와 같지만, 분명 거짓말이다.



     생각해보니 그가 실내로 들어온 이후 단 한 번도 시선을 마주친 적이 없고, 나를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다.



    "저기, 내 눈 좀 봐"

    "............"

    "펠릭스, 제발."



     이럴 때는 관계가 나빠지기 전에 반드시 그 자리에서 눈빛으로 이야기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오랜 원칙이다.



     그래서 펠릭스의 두 팔을 붙잡은 것이지만.



    "...... 나는 이대로 나가려고 했는데"

    "──에."

    "네가 나빴어."



     그렇게 말하는 순간, 펠릭스는 내 손을 뿌리치고서 내 두 어깨를 문으로 밀쳤다.



     너무 정돈된 펠릭스의 얼굴이 코끝이 맞닿을 듯이 눈앞에 있어서, 나도 모르게 숨이 막혔다.



    (역시 화가 났잖아)



     펠릭스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삐진 것 같기도 하고, 상처받은 것 같기도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루피노 님과 티아나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본 이후로, 계속 미쳐버릴 것 같았어."



     그렇게 말한 펠릭스는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며 '미안', '좋아해'라고 속삭였다.



     그를 걱정시켰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지만,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그의 모든 것에서 강하게 느껴진다.



    "저기, 펠릭스, 미안해."

    "사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티아나는 나쁘지 않아."

    "하지만......"

    "다 알고 있어. 나한테는 뭐라고 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우리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루피노 님이 이 이상 너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도."



     펠릭스는 "그래도"라고 이어말했다.



    "한없이 질투가 나고, 화가 나."

    "펠릭스......"

    "...... 그리고 루피노 님은 나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고 완벽하고 멋진 사람이니까. 무서워."



     펠릭스는 내가 루피노를 좋아하게 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펠릭스는 어렸을 때부터 루피노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었던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루피노와 함께 연습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루피노의 이야기를 하면 짜증을 내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어)



     어쩌면 펠릭스는 그때부터 이미 나를 좋아해서, 그를 질투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슬프게 했다는 죄책감은 있지만, 펠릭스가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져 나는 그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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