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1부 첫사랑의 행방 3
    2023년 09월 22일 20시 45분 0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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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어떻게, 깨달았지......?)



     해주의 의식 동안은 어쨌든 정신이 없었고, 특히 후반부에는 의식이 또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쓸데없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때는, 미쳐버릴 것 같은 고통에 정신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일로 당황스러웠지만, 미소를 지었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엘세는 무언가를 속이려고 할 때 항상 오른쪽 아래를 쳐다보곤 했어. 그런 버릇도 변하지 않았구나."

    "............!"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펠릭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를 잘 보고 있었고, 나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겁에 질려서 펠릭스를 올려다보니,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으며, 확신에 찬 눈빛이 느껴졌다. 분명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렇게나, 당신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어리석은 내가 싫어져."



     펠릭스는 그런 나를 보며, 상처받은 듯한 자조 섞인 미소를 짓고 있다.



    (그 표정도 자책할 때의 표정이 아냐)



     상대를 잘 보고 있던 것은 펠릭스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숨기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어)



     나는 눈을 깔면서 조용히 펠릭스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펠릭스의 손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곧장, 주저하면서도 부드럽게 손을 맞잡아주었다.



    "...... 그동안 말 안 해서 미안해.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힘도 없는 짐덩어리고, 펠릭스에게는 지금의 인생이 있으니 조용히 하려고 했어."

    "사실은 알고 있었어. 내가 그런 태도를 취했으니, 말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그것도 어쩔 수 없는걸. 그렇게나 대단한 성녀였던 내가, 지금은 텅 빈 성녀라니 웃기는......"



     그렇게 말하려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펠릭스의 손을 꼭 쥐고 있던 손바닥에, 따스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펠릭스......?"



     고개를 들자, 그의 두 푸른 눈동자에서 조용히 보석 같은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 계속 사과하고 싶었어. 나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죽게 해서 미안해."



     아마도 펠릭스는, 내가 죽은 날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계속 자책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막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그가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그 말과 어린 시절과 겹쳐 보이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가슴이 아플 정도로 답답했다.



    "절대, 절대로 펠릭스 때문이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계속 눈물을 흘리는 펠릭스를 안아주었다.



     예전보다 훨씬 커진 그의 어깨가 당황한 듯 작게 흔들린다. 하지만 이내 내 등에 팔을 감싸 안았다.



    "...... 그런 식으로 죽었으면, 펠릭스는 착한 아이니까 책임감을 느끼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엘세는 잘못 없어, 내가 나빴어."

    "아니. 나쁜 건 나를 죽인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며 웃어보았지만, 펠릭스는 작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가끔은 고집스러운 모습도 여전하다.



    "어떻게 나라는 걸 알아차렸어?"



     그렇게 묻자, 펠릭스는 지금까지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에도 납득이 갔다. 그때의 나는 전혀 기억이 없었으니, 완전히 무의식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티아나'라고 부드럽게 이름을 불렀다.



     펠릭스는 깨어나자마자 '엘세'라고 부른 이후, 단 한 번도 나를 '엘세'라고 부르지 않았다.



     전생을 포함한 지금의 나를 나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게 너무 기뻤다.



    "지금의 당신이 티아나 에버렛이라는 한 명의 여성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 응."

    "그래도 나는 내 스승이었던 엘세 리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한 번만 허락해 줄 수 있을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고마워."라는 말과 함께, 등에 감긴 팔에 담긴 힘이 더 강해진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펠릭스가 입을 열었다.



    "...... 엘세가 지켜줬기 때문에, 저주를 모두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었어. 엘세가 많은 것을 가르쳐줬기 때문에, 나는 강해질 수 있었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나도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 의미 없는 끝을 기다리기만 하던 내 인생이, 엘세 덕분에 이렇게나 달라졌어."

    "펠릭스......"

    "엘세가 있었기에, 엘세와의 추억이 있었기에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부모에게 버림받고, 스승이었던 나를 잃은 후, 외톨이였던 그가 이토록 강해져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있었는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정말 고마워.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엘세의 인생에 의미가 있었구나, 보답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펠릭스는 정말 훌륭해졌다고 생각하며, 손끝으로 눈가를 닦았다.



     그렇게 많은 저주가 생겼음에도 제국이 지금의 풍요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분명 그의 노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 펠릭스는 정말 대단해. 그동안 정말 많이, 많이 노력했구나."

     

     나는 그에게서 조금 떨어지고는 부드러운 검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고개를 든 펠릭스와 눈빛이 마주쳤다.



     그의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에 비친 나는 역시 울 것 같은, 그러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마워요. 넌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야."

    "............!"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뜬 그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이내 무언가를 참는 듯이 가늘어지더니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펠릭스의 눈물을 손끝으로 닦으려는 순간, 그는 다시 한번 더 꽉 껴안아버렸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팔에서, 그의 몸에서, 주체할 수 없는 열기가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는 내 귀에 대고, 귓가에 귓속말로 중얼거린다.



    "── 좋아해."



     몹시 간절하고, 애타게 매달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가 오랫동안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하니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 참을 수 없이 좋아해서, 잊을 수 없어서, 엘세는 내 인생의 전부였어."



     조금 빠른 심장소리가 몸을 통해 전해져 온다. 어느새 녹아들 듯 내 심장 박동도 같은 속도로 빨라진다.



    "사랑해."



     그 말이 지금의 나를 향한 말이 아님을 알면서도, 심장이 크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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