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로, 아레스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아레스를 살린 채로 잭과 함께 마왕을 쓰러뜨리는 선택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잭의 강함은, 아레스와 그의 어머니 셰라를 생각하는 비장한 각오가 있었기에 가능했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마왕을 쓰러뜨릴 수 없었을 거예요. 잭이 마왕을 쓰러뜨린 것은 대단한 업적이지만,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미세한 가능성을 쌓아 올린 것입니다. 다시 재현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게다가 알렉시아. 당신은 그 가능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어머니에게 죽으라고 하는 건가요?"
...... 그런 말도 되는구나. 확실히 그렇게까지 어머니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는 셀 수 없이 많은 비극과 참극을 목격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셰라의 슬픔은 흔한 비극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아레스를 선택한 것은 어머니였잖아요? 아레스도 잭도 용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에요. 셰라 역시 원하지 않았어요."
"그 점은 인정하지요. 제가 손을 댄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죽은 것도 사실. 그래요
제가 용사 아레스를 죽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일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했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알렉시아, 저도 예언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겠나요?"
"왕족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인가요?"
그것은 나 자신도 가끔씩 생각했던 것이다.
"[어째서, 내 때에?] 였습니다. 왜 나의 시절에서 마왕의 침략이 일어났는지, 그것을 몇 번이고 원망하고 저주했답니다. 이것이 내 어머니 시절에 있었더라면, 내 자식의 때에 있었더라면, 하고요. 왜 나만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앞으로 100년 동안 마왕은 태어나지 않겠지요. 당신은 이런 일을 겪지 않고 인생을 마칠 것입니다. 분명하게 말하지요. 저는 당신을 질투해요. 무녀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당신은 그 힘을 거의 쓰지 않고 끝날 테니까요."
"세상에......"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머니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다정했던 사람이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변할 정도로 천 년의 여정은 힘들고 험난한 것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을 정도로.
"이해했나요? 저는 당신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불쾌하답니다.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잭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겠지요? 그는 아버지의 고향인 옛 마리카국의 레틴 마을에 있습니다. 만나고 싶으면 그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마리카국은 마왕령 근처에 있던 나라로, 마왕의 침략으로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다. 잭의 부모가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당신의 신전의 출입을 금합니다. 빨리 이곳을 떠나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자신이 그렇게나 미움을 받을 줄 몰랐기 떄문에, 슬픔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문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뭔가 생각나서 다시 한번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나의 부름에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덕분에 세상이 구원받았어요! 저는 비록 미움을 받더라도,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런 강한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어머니의 표정이 살짝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나의 바람이었을까?
"저는 어머니를 사랑해요! 분명 내가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예요! 그 사실만은 꼭 기억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어머니를 향해 크게 인사를 한 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