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루시아나는 안네마리가 혼자임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왕세자 전하와 함께 계시지 않나요?"
"그래, 오늘의 전하는 너무 바쁘셔서 내 에스코트를 해줄 형편이 아냐. 오늘은 오빠에게 에스코트를 부탁했어. 하지만 그 오빠도 인사를 하러 어디론가 가버렸고."
눈꼬리를 내리며 쓴웃음을 짓는 안네마리. 루시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멜로디의 입에서 무심결에 의문이 흘러나온다.
"아, 세실리아는 평민이니 아직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겠네요."
"그 이야기라니 뭔데? 베아트리스."
"루시아나도 몰라? 왕도에서는 꽤나 소문이 났는데 ...... 맞다. 영지에 돌아가서 몰랐구나."
"베아트리스 님, 무슨 소문이 퍼지고 있는 건가요?"
"듣자 하니, 오늘 무도회에 로드피아 제국의 황녀님이 참석하신대......."
"로드피아 제국의, 황녀님 ......?"
멜로디와 루시아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안네마리에게로 향했다.
"로드피아 제국의 제2황녀, 시에스티나 반 로드피아 전하. 그래서 오늘 크리스토퍼 님은 황녀 전하의 에스코트를 맡게 되었어."
"그랬군요. 안네마리 님은 이미 황녀 전하를 뵈었나요?"
루시아나의 질문에, 안네마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설마. 일개 후작영애에 불과한 내가 황녀 전하를 뵙는 건 불가능해. 나도 오늘 처음 뵙는 거야. 어떤 분이시려나."
(안네마리 님이 만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황녀님을 본 적 없는 것일지도 ...... 어라? 하지만, 분명 제국이라고 ......)
"안네마리 님, 로드피아 제국과 테오라스 왕국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
왕립학교에서 임시 강사로 일하던 렉트를 도와줬을 때, 가끔씩 다니던 학교 도서관에 있던 책에 그런 설명이 있었던 것 같다고 멜로디는 떠올렸다.
"세실리아 씨, 학생이 아닌데도 잘 공부했구나. 그래, 맞아. 약 100년 전의 전쟁 이후로, 우리나라와 제국은 미묘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어. 그리고 이번 황녀님의 방문은 그 관계 개선의 발판이 될 거야."
"황녀님이 오셔서 관계 개선 ...... 설마 크리스토퍼 님과 황녀 전하께서 약혼을 하시는 것은?"
황녀의 방문과 관계 개선이라는 말을 듣고 루시아나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혼인 외교였다. 그것은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생각한 것이다. 모두가 불안한 눈빛으로 안네마리를 쳐다보는 가운데, 그녀는 별다른 신경 쓰지 않고 평소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관계 개선의 첫걸음 단계야. 갑자기 약혼이 되는 것은 아니야. 황녀 전하께서는 내일부터 재개되는 왕립학교의 2학기부터 유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니게 된다고 해."
"세상에, 제국의 황녀님이 왕립학교에요?"
"우리랑 동갑인 것 같으니까, 어쩌면 당신과 같은 반이 될지도 모르지."
"황공한 일이네요."
안네마리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미리아리아는 움츠러들고 말았다. 평범한 귀족영애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며 안네마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하지만 신분을 생각해 보면 크리스토퍼 님과 같은 반으로......."
그때였다. 다시 한번 행사장 입구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뭘까요?"
멜로디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시끄러운 것은 주로 백작 등이 이용하는 중문 쪽이다. 아무래도 거기서 누군가가 입장한 모양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문 앞을 바라보고 있는 멜로디의 옆에서 안네마리와 맥스웰이 눈을 가늘게 했다.
"...... 왔구나."
"저것은......"
멜로디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두 남자와 한 명의 소녀. 한 명은 은발과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재상 보좌관, 레긴버스 백작 클라우드. 유유히 걸어가는 그의 왼쪽에는, 검은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는 한 소녀가 있었다.
은빛 머리와 군청색 눈을 가진, 가련한 외모의 소녀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 당신이 바로 우리가 찾던 주인공...... 성녀?)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묘한 느낌 속에서, 안네마리는 은발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멜로디는 .......
(와, 원래의 나와 같은 색조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의외로 흔한 조합인가 보네?)
원본의 게임을 몰라서 그런지,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소녀가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