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4장 프롤로그 후편(3)
    2023년 08월 12일 18시 51분 1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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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파악하고 있는 슈레딘의 무서움이란.



     슈레딘은 테오라스 왕국을 지나 서쪽의 히메나티스 왕국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훈련된 왕자로 살아온 그라 할지라도, 도보 여행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진맥진해 쓰러지고 만다.



    "하아, 하아, 무, 물...... 마술로......앗, 마술은 어떻게 쓰는 거였지?"



     원래 슈레딘은 황태자로서 마법 교육도 제대로 받았다. 최정예 마법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충분히 뛰어난 부류였을 텐데, 인격이 쥬이치화 된 슈레딘은 어째선지 마법의 사용법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슈레딘. 백자색 피부는 건강하게 그을려 있어 얼핏 보면 그가 슈레딘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갈색 피부가 좋은 변장이라고 생각한 그는 여행길 내내 상체를 알몸으로 한 채로 걸어서 몸을 제대로 태운 것이다.

     아마 그것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물도 식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직사광선을 받으며 걷는 여정은, 그의 체력을 단숨에 갉아먹었다.



    "아, 결국은 배드엔딩임까 ...... 모처럼 알려줬는데 미안."



     자신도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의식이 흐릿한 가운데 슈레딘은 중얼거리듯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려고 했다.



    "...... 미안해, 레ㅡㅡ"



    "어이. 너, 괜찮냐?"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발견하고, 희미한 생각은 사라져 버린다.

     그것이 슈레딘과 휴버트 루틀버그의 만남이었다. 도움을 받고 물을 받아 조금 회복된 슈레딘은, 신분을 숨긴 채 사정을 털어놓았다.



    "흠, 가출을 해서 쓰러졌다라. ...... 그럼 우리 집에서 잠시 일해볼래?"



    "어? 괜찮슴까?"



    "우리 집도 이제야 빚이 없어져서 슬슬 힘쓰는 일을 할 수 있는 남자 하인을 고용할까 생각하던 참이었거든. 많이는 못 주겠지만 어때?"



    "부, 부탁합니다!"



    "하하하, 즉답인가.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해. 내 이름은 휴버트 루틀버그. 루틀버그 백작령의 대관을 맡고 있다."



    "잘 부탁합니다! 제 이름은 슈ㅡㅡ슈임다."



     잠깐 슈레딘의 목소리가 멈췄다. 역시 본명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쓸만한 가명을 생각하다가, 왠지 모르게 '슈'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그래, 슈인가. 그럼 우리 집으로 안내해 주마. 그런데 슈는 직업에 대한 희망사항 같은 거라도 있나? 잘하는 일도 상관없지만, 희망사항이 있으면 일단 참고하려고."



    "하고 싶은 일 ...... 저, 그 ...... 흙을 만지는 일을 하고 싶슴다."



     자신도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슈는 흙을 만져보고 싶었다.



    "흙을 ...... 그래! 내게 맡겨. 나와 같이 밭일을 열심히 해보자."



    "왠지 방향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잘 부탁함다!"



    "아하하! 드디어 함께 밭일을 즐길 수 있는 인재를 얻었어. 좋아, 슈우! 서둘러 집에 돌아가서 오늘은 둘이서 밭의 잡초를 뽑아보자. 가자~!"



    "알겠습, 앗, 휴버트 님, 빠르다고요! 기, 기다려주십쇼~!"



     허둥지둥 휴버트를 쫓아가는 슈레딘, 아니 슈. 전력 질주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큰 등짝을 쫓아가면서도, 왠지 모르게 싱긋 웃게 되는 슈였다.



     그렇게 로드피아 제국의 제2황자 슈레딘 반 로드피아는 테오라스 왕국 루틀버그 백작령의 수습 하인 슈로 다시 태어났다.



     다섯 번째 공략 대상자를 잃은 게임 세계는 어떻게 될까 .......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이런 사태를 일으킨 메이드 소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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