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얼마나 성품이 다른 것일까. 싸우는 사람이었다면 좀 더 직관적이고 격정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처럼 감정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말의 몸에 솔질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본다. ...... 이렇게 느긋하게 천천히 사는 것이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얼마 전 격렬한 전투를 치렀지만, 그 외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평온한 하인의 삶이다. 과거의 내가 본다면 장난치지 말라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빨리 기억을 되찾으라고 소리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지금의 내가 아는 사람들. 마이카, 멜로디, 루시아나 ......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을 떠올리면 조금은 괜찮을 것 같다.
마법의 사용법을 기억했듯이, 언젠가 나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다소 느긋하게 이렇게 말의 몸을 씻겨주는 나날을 보내도 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류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어라? 류크, 마법을 쓸 수 있었슴까?"
뒤돌아보니 슈가 서 있었다. 평소에 입던 하인복에다 장갑을 끼고서, 잡초가 가득 담긴 나무통을 손에 들고 있다.
"잡초를 뽑는 건가."
"그렇슴다. 여름에는 잡초가 금방 자라기 때문에 큰일임다! 그런 것보다 마법이라구요, 마법! 류크는 마법을 쓸 줄 알았군요."
"뭐, 조금은."
"좋겠다~ 저도 마법을 쓰고 싶슴다."
뤼크는 눈동자에 마력을 모았다. 안네미리의 마법 [아나라이즈 비전]과 비슷한 방법으로, 슈가 마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흠....... 마력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군."
"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겁니까!? 대단해! 뭔가 비결이 있는 검까?"
"연습만이 있을 뿐이지."
"그럼 무리임다!"
너무한 대답에 무심코 웃음을 터뜨릴 뻔한 류크. 슈는 '그럼, 일이 남아서'라고 말하며 마구간을 떠났다.
(나도 저렇게 능청스러워야 하는 걸까 ......?)
즐거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슈의 뒷모습을, 류크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후우~ 더웠다!"
류크의 곁을 떠난 슈는 잡초를 뽑는 일을 마치고 일단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땀에 흠뻑 젖어 집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끼를 벗고 넥타이를 풀고 반팔 셔츠의 단추를 손재주 좋게 한 손으로 풀었다. 옷을 침대 위에 던져놓고는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슈는 벽에 걸린 거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아, 옷만 벗으니 시원해~. 각 방에 거울이 있다니, 부자 된 기분~♪"
땀을 닦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울 앞에서 빙그레 웃는 슈우. 하지만 다음 순간ㅡㅡ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짧게 자른 반짝이는 금색 머리. 헤벌쭉한 미소가 사라지면서 선명해진, 놀랍도록 균형 잡힌 얼굴형과 날카로운 금빛 눈동자. 여름의 뜨거운 하늘 아래에서도 그 눈빛을 마주치면 극한의 추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차가운 눈빛.
거울 앞에 드러난 상체는 멋지게 단련된 체격이 돋보인다. 마치 조각품처럼 만들어진 육체에는 전혀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구릿빛의 몸이다.
자신의 육체를 거울로 바라보며 슈는 생각한다.
(...... 조금, 얼굴과 몸 색깔이 안 어울리는군. 조만간 또다시 전신 태닝을 해야겠다)
만약 이 몸이 도자기처럼 맑고 하얀 피부를 가졌다면, 만약 그가 하루 종일 밝은 표정을 짓지 않고 지금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었더라면.
마이카는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가, 슈가, 사실은.........
헤벌쭉.
"...... 역시 나는 이쪽이 더 잘 어울려. 무표정은 내 캐릭터가 아니야. 세상이 이렇게 재미있는데도 무표정하게 있으라니, 바보나 할 짓이지!"
땀을 닦은 슈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방 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고 그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아, 멜로디! 너도 더워서 옷 갈아입으러 왔어? 그럼 내가 등짝의 땀을 닦아줄게, 루시아나 아가씨, 안녕! 잠깐 나 중요한 용무가 생각나서 실례를 죄송해요, 죄송해요, 잠깐의 실수였습니다 종이부채는 이제 그만......"
문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제3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