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그닥거리는 말발굽 소리를 나며 멜로디 일행은 저택 밖으로 나갔다. 말을 탄 멜로디는 조금만 시점이 높아졌을 뿐인데도 평소와 다른 풍경이 보여 감동을 느꼈다. 하늘을 날 때와는 또 다른, 키의 연장선상에 있는 보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던 풍경이 묘하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때? 무섭지 않아?"
"네. 왠지 신기해요.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보는 것뿐인데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아서 ...... 계속 보고 싶어요"
"그래. 그거 다행이다. 그럼 좀 더 빨리 달려볼까?"
"네? 꺄악!"
슈가 고삐를 잡고 말의 걸음걸이를 빠르게 했다. 그만큼 말 위에서 편안함을 잃은 멜로디는, 흔들리는 말 위에서 무심코 슈에게 매달렸다....... 슈는 빙그레 웃었다.
"멜로디, 초원으로 나갈게. 나한테 매달려도 되니 경치를 즐겨."
"어, 꺄악, 아으, 아, 알았어요, 꺄악!"
승마라는 것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만큼 편하지 않다. 네 다리로 가볍게 달리면 균형을 잡기 위해 허리가 많이 흔들린다. 안전벨트도 등받이도 없는 말 위에서 멜로디가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슈에게 매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제법 밀착된 모습에, 슈 씨는 만족스러워했다. 잠시 후 속도에 익숙해지자 멜로디는 드디어 흐르는 초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와, 아름다워......"
바람을 가르며 풀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귀를 스쳐 지나간다. 생물을 타고 달리는 느낌은 마차를 타고 달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일 것이다. 실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삼십 분 정도 달렸을까, 어느새 말의 속도가 느려져서 초원 위를 천천히 걷게 되었다.
"어땠어, 멜로디. 즐거웠어?"
"네, 많이요. 조금 엉덩이가 아팠지만요."
"아하하, 미안. 2인용 안장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신경 쓰지 마세요. 승마를 권해줘서 고마워요."
"오우, 착한 아이구나, 멜로디. 괜찮으면 저랑 사귀어주세요!"
"미안해요. 전 메이드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조금......."
"순식간에 차였다! 뭐, 됐어."
(됐어......?)
고백을 단번에 거절당한 슈는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미 마을 소녀들에게 전패한 남자의 정신은 거절당했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이제 어떻게 할까. 이 주변을 좀 더 돌아다녀도 좋지만, 마을 같은 데도 갈 수 있는데."
"그럼 그루주 마을에 가보고 싶어요. 채소밭이 어떻게 됐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요."
"아, 뭔가 큰일이 났었다지? 알았어, 가보자."
"밭을 보고 나면 점심을 먹어요. 샌드위치 만들어 왔거든요."
"오예~! 멜로디가 직접 만든 도시락!"
두 사람은 그루주 마을로 향했다. 말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한 시간 정도 달려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문지기가 일행을 세웠다.
"슈, 뭐냐 그 아이! 엄청 미인이잖아!"
그루주 마을의 문지기 청년 랜드는, 슈를 끌어당겨 멜로디에게 등을 보이며 작은 목소리로 외친다는 눈치 좋은 짓을 하였다.
"괜찮지? 아까까지만 해도 저 애가 내 뒤에 착 달라붙은 채로 말을 타고서 멀리까지 갔었다고!"
"뭐야, 너무 부럽잖아!"
아무래도 랜드는 슈와 닮은꼴의 친한 사이인 것 같다. 은밀하게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멜로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왕도에 있던 루시아나 아가씨의 메이드야."
"왕도의 메이드! 세련되고 미인이잖아. 역시 왕도는 다르구나."
"게다가 착하고 마음씨도 곱고 귀엽고 사랑스러워."
"맞아. 귀여워."
"...... 당신들, 언제까지 그럴 거예요?"
멜로디의 귀여움을 칭찬하고 있자, 문 안쪽에서 두 사람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켁, 키라!"
"키라! 오랜만이야! 설마 나를 만나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