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40부 372화 여름의 제전(겨울에도 있어)(1)
    2023년 08월 08일 22시 01분 2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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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마이트 제국과 성지 베리즈를 잇는 세계 최대의 대륙횡단철도 아즈 써니호를 타고 호화로운 침대열차 여행을 즐기다 보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예술의 도시 파리시브 왕국은, 그림, 소설, 노래, 춤, 연극, 조각, 사진, 패션, 건축, 가구에 이르기까지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성지다. 모든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중받는 크리에이터들의 성지이다.



    [요리도 예술의 일부니까!] 라는 이유로 꿈꾸는 요리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파리시브 요리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로 불리기도 한다. 파리시브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은 어느 곳이나 비싸지만 맛있다. 맛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비교적 습기가 적고 건조한 기후와 거리 풍경 자체가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경관은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데다가, [예술의 도시 파릭시브 왕국은 침략하지 않는다]는 국제조약이 체결되어 있어 그 소란스러운 폭군으로 유명한 이기주의자 이그니스 마마이트조차도 이 나라에 손을 대지 않고 있다. 만약 이 나라를 침략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야만인'이라는 비난을 영원히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위로 전통적으로 평화가 약속된 나라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민 희망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신분이든 이 나라에 우선적으로 이주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을 사랑하는 크리에이터들이며, 입국 심사에는 예술 심사 부서가 설치되어  가짜 예술가인지, 남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우기는 것은 아닌지 등을 매우 엄격하게 심사한다고 한다.



    그런 파리시브 왕국의 번화가에는 이 세계 최초의 TCG인 DoH(듀얼리스트 온 하이스테이지)의 판매사인 파스트라미사의 지사가 존재하며, 밤낮으로 우수한 크리에이터들이 다음 팩에 수록할 카드의 신규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DoH를 소재로 한 소설과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연재하는 페이지 수는 적지만 내용은 알찬 잡지 '월간 DoH'를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나도 가끔 의뢰를 받아 독점 인터뷰나 대담 등의 기사를 낸다).



    "사장님! 우리 회사도 여름 교류제에 나가요!"



    "뭐야 그게?"



    "모르세요!?"



    파리시브 왕국 예술 교류제. 그것은 각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반년에 한 번씩 전 세계에서 모이는 종합 예술 축제다. 이른바 대규모 동인 즉석 판매회 겸 합동 전시회 같은 것이라고 한다.



    재야의 예술가들을 격려하기 위해 파리시브 왕국을 다스리는 여왕님의 주최로 열리는 그것은 기본적으로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마추어를 발굴하기 위한 축제이지만, 프로페셔널을 위한 이른바 기업 부스도 꽤 많이 마련된다고 한다.



    "DoH 첫 기업 부스 참가! 이건 나갈 수밖에 없겠죠!"



    "확실히 트레이딩 카드 회사로서는 그런 전략도 괜찮겠지. 행사장 한정 프로모션 카드 같은 걸 배포하면 화제가 될지도 몰라."



    "프로모션 카드! 훌륭해요! 꼭 해봐요! 반드시 해보자고요!"



    골드 상회 산하 파스트라미사 파리시브 왕국 지사장. 공인 대회에서도 앞다투어 얼굴을 내미는 명물 지점장인 '에드몽 군', 에드워즈 몬테스키외는 중증 오타쿠 아저씨다. 이글 아빠를 능가하는 둥근 체형의 거구와 늘어진 귀가 특징인 개 수인이며, 성격은 '전형적인 오타쿠 뚱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DoH를 너무 좋아해서 전에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우리 회사로 이직해 왔을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 열정은 진짜였다. 오타쿠답지 않은 능수능란한 세일즈맨의 대인관계 능력과 오타쿠 특유의 좁고도 짙은 인맥을 십분 활용해 순식간에 두각을 나타내며 순식간에 지사장의 자리까지 올라섰으니 경외감이 들 정도다.



    그런 그는 DoH의 창시자인 나를 신처럼 숭배하고 있고, 만날 때마다 강렬하게 오타쿠 군 무브먼트를 해와서 조금 무섭다. 금이야 옥이야 소리를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애지중지되어 자랐을 나로서는, 누군가한테서 얼굴을 맞대고 신앙을 받는 건 처음이라 살짝 움츠러든다. 설마 내 사진을 베갯머리에 걸어놓고 자는 남자가 아빠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잖아? 세상은 참 넓구나 .......



    "사장님! 실물 크기 패널 같은 것도 만들자구요!"



    "좋아. 인기 카드 중에서 몇 장만 엄선해서 만들어 볼까?"



    "우와! 너무 기대되어서 터질 것 같습니다!"



    올리브의 슬림하고 스마트한 그것보다 훨씬 더 굵은 꼬리를 붕붕 흔들며, 반짝이는 눈으로 기업 부스 참가를 위한 기획을 이것저것 짜는 그의 눈빛은. 벌써 서른을 훌쩍 넘긴 것 같음에도 마치 소년 같다.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서 반짝거리는 미소로 아이처럼 들떠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전생의 초중고 시절 친구들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16살에 죽어서 이 세상에 환생하고, 그로부터 13년이 더 지났다는 것은 그들도 벌써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일 텐데, 그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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