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의 생각이 맞았다. 구슬을 밭의 흙 위에 올려놓자 땅에서 마력 입자가 튀어나와 검은 구슬에 흡수되는 것이었다. 다만, 멜로디의 마력에 의해 부서진 미세한 입자만 흡수될 뿐, 아직 멜로디의 마력에 닿지 않은 흙 속에 잠들어 있는 마력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 같다.
멜로디는 밀밭의 지하에 마력을 퍼뜨려 순환시켰다. 동쪽의 그루주 마을, 남서쪽의 다낭 마을, 그리고 북쪽의 테논 마을, 멜로디가 모든 마을에 퍼져있던 검은 마력을 회수하는 데 성공한 것은 동쪽 산등성이에 희미한 주황색 빛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방으로 돌아온 멜로디는 지친 상태에서도 재빨리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침대에 힘없이 엎드렸다. 부드러운 매트의 감촉에 한숨이 흘러나온다.
멜로디는 마법의 창고에서 검은 마력을 모은 구슬을 꺼냈다. 침대에 누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멍하니 바라본다. 결국 모든 마력을 하나로 모았지만, 두 마을 분량을 합쳐도 구슬 크기보다 크지 않았다.
솔직히 어떤 논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피로와 성취감에 자연스레 웃음이 터져 나온다. 거의 밤을 새운 탓도 있지만, 역시 이번엔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다는 자각이 멜로디에게도 있었다. 정신이 나간 건지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간다.
(이것으로 오늘 아가씨의 생일은 분명 ...... 조금만 자고 바로 일어나자 ......)
검은 구슬을 손에 쥔 채로 멜로디는 잠이 들었다. 일출이 가깝다. 곧 깨어나야 할 것 같다. 멜로디는 정말 잠깐의 짧은 휴식을 취한 것이다.
◆◆◆◆◆.
ㅡㅡ해.
(......뭘까, 목소리가 들려)
어두운 세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상한 곳에서 멜로디는 그렇게 생각했다.
ㅡㅡ해. ㅡㅡ디, 싫ㅡㅡㅡㅡ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한 이상한 목소리.
ㅡㅡ해. ㅡㅡ디, 싫어ㅡㅡㅡㅡ
목소리는 조금씩 멜로디에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두운 어둠 속이라 그런지 사람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냐고 묻고 싶어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조금씩 목소리는 다가온다.
이상하게도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멜로디의 귓가에까지 다가오더니ㅡㅡ
부탁해. 부디, 싫어하지 말아 줘.
멜로디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시야에 비친 것은 그녀 자신이 만들어낸 낯익은 천장. 붕괴된 루틀버그 백작의 저택을 대신해 지은 임시 숙소의 오두막집. 그중 하인 방의 천장이었다.
즉 자신의 방이다. 잘 모르겠지만, 멜로디는 무심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좀 ...... 아니, 솔직히 너무 졸리다 ......)
창문을 보니 동쪽 산등성이에 태양이 반쯤 나온 상태였다. 아직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지만, 이제 일어나지 않으면 아침 배웅에 늦을 것 같다.
슬며시 일어나려는 순간, 멜로디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 이거, 내놓은 채로 잠이 들었구나."
세 마을에서 회수한 검은 마력의 덩어리. 구슬만 한 크기의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멜로디. 처분하고 싶지만 멜로디의 마법으로는 부숴서 퍼뜨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면 또 다른 마을에 피해가 생길지도 모른다. 무심코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게 된다.
(...... 처리 방법을 찾을 때까지 내가 보관하는 수밖에 없겠네)
멜로디는 마법의 창고에 검은 구슬을 정리하고서 서둘러 메이드복으로 갈아입고 방을 나갔다.
"좋은 아침이에요, 라이언 씨, 루리아 씨"
"좋은 아침입니다, 멜로디"
"안녕, 멜로디"
오늘도 1등을 못했다. 현관에는 이미 라이언과 루리아가 와 있었다. 인사를 나누며 두 사람에게 다가서려고 할 때였다.
멜로디의 다리에서 갑자기 힘이 빠져버린다.
"어?"
""멜로디!?""
라이언 부부는 갑자기 쓰러진 멜로디에게 급히 달려갔다.
"괜찮습니까, 멜로디?"
"아, 죄송해요, 갑자기 어떻게 된 걸까요. 발을 헛디뎠나 봐요."
"멜로디, 얼굴색이 좀 안 좋아 보여. 잠깐 실례할게."
루리아는 멜로디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멜로디는 그 손이 차갑고 기분 좋게 느껴졌다.
"열이 좀 있는 것 같구나. 멜로디, 오늘은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앗, 하지만, 그런......."
멜로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박하려 했지만, 루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분명 여독이 이제야 드러난 거란다. 저택에 도착하고 나서도 힘든 일만 했으니, 컨디션이 나빠지는 사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메이드장으로서 명령합니다. 멜로디, 오늘은 하루 쉬세요. 컨디션 관리도 메이드의 일이니까요."
"...... 네."
8월 7일, 루시아나의 생일. 이날 멜로디는 메이드 라이프의 첫 병가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