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훑어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역 검투사였던 이들이 눈에 띄어서 은근히 한숨을 내쉬었다.
"챔프를 데려와. 때려눕히고 나면 이야기라도 들어주마."
"결투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냥 협조해 달라는 거다."
"나는 결투를 하자고 말했거든?"
들고 있던 맥주잔을 뒤집어서, 듀어의 머리에 술을 세차게 뿌린다.
"앗............"
"............"
머리끝까지 화가 난 사돈을 팔로 제지하고서, 냉정하게 대화를 시도한다.
"...... 보상은 뭘 원하나?"
"흠, 난 너처럼 맥 빠진 놈이 제일 싫다고. 어디 없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기합이 들어간 놈은 어디 없는 거냐?"
새롭게 협상의 실마리를 찾는 듀어의 뒤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분개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다.
그 남자는 입구를 막고 서 있는, 벨트보다 훨씬 큰 거구를 가리켰다.
"앙~ ......?"
그는 굵은 철봉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리고는 걸어갔다.
"............"
"............ 훗"
검은 머리의 남자는, 철봉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구부려 건네줄 것을 요구했다.
실력에 약간의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모두들 코웃음을 치면서도, 철봉에 된통 당하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며 실소를 한다.
"그럼, 챔프와의 일기토는 어떤가?"
"얕보는 거냐 ......? 그야 당연하지."
"게다가 돈도 준다. 그러니 오늘 밤만, 모두 함께 마을을 순회해 주었으면 좋겠다."
"...... 거절한다. 분명히 위험한 일이 있다는 거 아냐?"
지하조직과도 연결된 벨트는 귀가 밝다. 죽을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일반인과는 확연히 다른 후각을 가지고 있어서, 위험과 이상, 함정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돌아가. 지금이라면 반쯤 죽이는 걸로 용서해 주마. 야, 이 녀석들한테 손 좀 ............."
이야기는 끝났다며, 이제는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아우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듀어의 뒤를 보게 된다.
"잠깐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버린 곳에서는, 검투사들 중 가장 괴력이 뛰어난 아우한테서 철봉을 받아 드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철봉을 받아들더니,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 오늘 밤만은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다."
남자는 철봉의 양끝을 붙잡고는,
"비싼 술이든 뭐든 준비해 주마. 적어도 아르스의 남부만이라도........"
ㅡㅡ짓눌러버렸다.......
"----"
"용병들만으로는 북부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이라서."
모두가 눈을 부릅떴고, 턱이 빠질 듯이 입을 벌리며 철의 꽃처럼 변한 철봉을 바라보았다.
손으로 뭉툭하게 뭉개지는 중심은 점점 납작해지고, 주위는 쩍쩍 갈라져 튀어나온다. 본래 있을 수 없는 기괴한 금속판이 만들어졌다.
남자는 눈을 까뒤집은 상태의 거한에게 철 조각을 건네주고, 다시 듀어와 벨트를 향해 돌아섰다.
"허억! 아, 아니 ............ 아니~, 그......"
"이래도 안 되는가 ............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협력해주지 않을 것 같은........"
"한다고!! ......하! 하는 게 당연하잖아!!"
"어 ......? 협조해 주는 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선생님이라 불린 남자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듀어에게 정식으로 대답을 한다.
"자, 잠깐만, 그전에 잠깐만 기다려 볼래? ......너희들! 이분들 돌아가시는 길은 깨끗이 치워놔라!!! 길이 더럽잖아, 이 새끼들아!!"
"예, 옙, 죄송합니다아아!!"
"그래서, 뭐였더라? 남부의 순찰? 풍기라는 걸 지키면 되는 거냐? 경로라든가 당번이라든가, 그런 거에 대해 상담하고 싶은데. 무식몽매, 후안무치하게도 내가 아는 게 없어서 말이야, 크하하하하!"
아우들은 요란스럽게 청소를 시작했고, 주점의 주인도 떨리는 손으로 웰컴 드링크 세 잔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가, 갑자기 왜 그러지 ......?"
"뭐가? 그보다 어이! 내 건 아직이냐? 여기서는 친근감!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서로에게 술을 뿌려주는 풍습이 있다고!"
"...... 그래? 맥 빠지는 녀석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욕은 더 심해지는 거 아니겠냐고 ......? 그거랑 같아. 알아봤다고, 네놈의 근성 정도는 다 알아챘어."
몸을 씻는 것처럼, 자신과 점주에게 몇 번이고 맥주잔 안의 술을 끼얹으며 말한다.
"그, 그런가 ......"
"네놈과는 오랜 인연이 될 것 같아. 잘 부탁해, 친구."
"친구 ......?"
술이 묻은 채로 굳은 악수를 나누어 우정을 확인한 뒤, 아르스의 경비 상태는 이례적으로 개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