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렬 경 ......"
"바이스 경"
"아르간 님"
"아르간 님"
그들을 이끄는 단장이자 참렬의 용사 아르간 바이스는, 마을의 참혹한 모습을 둘러본 후 고개를 깊이 숙였다.
"미안하다."
모두 말문이 막혔다.
아렌하이트의 고관이, 일개 기사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다니.
"내가 판단을 그르쳤다. 탈환할 준비를 하고서 공격할 때까지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마음이 있는 자라면 무분별한 살육은 하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들은 그야말로 짐승이었다. 비도덕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을 것 같은 놈들이라고, 왜 생각해 버린 것일까....... ......"
눈물을 참으며 말을 이어가는 모습에, 흐느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떨리는 아르간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후회에, 누군가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외쳤다.
"당신께서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평화를 깨뜨린 괴물에 의한 것이니까요."
"맞습니다.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맞다 맞다, 기사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외쳤다.
눈물을 흘리는 그들을, 아르간은 천천히 둘러본 후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힘주어 선언했다.
"다시 한번, 참렬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아렌하이트는 반드시 악한 자들을 이 대륙에서 몰아낼 것을! 이를 위해 일어서라, 기사들! 일어서라, 신민들! 성녀 엘레나의 깃발 아래, 사악한 짐승들을 처단하자!"
어려움 앞에서 용기를 내는 용사들처럼, 아르간의 목소리는 용사 후보인 기사들을 마치 어엿한 용사처럼 들끓어 오르게 했다.
영광과 복수가 뒤섞인 환호성은, 불타버린 마을 밖까지 퍼져나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아르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마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 사태를 성녀님께 보고하겠다는 명분과 함께.
"자네, 잠깐만 와 주겠나?"
혼자.
원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기사와 함께.
마을을 떠나 숲 속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그는 참지 못하고 아르간에게 물었다.
"아, 저기 ...... 저만 수행해도 괜찮을까요 ......아르간 님께서 에차로 돌아가신다면 다른 기사님 ...... 더 가까운 ......"
"먼저, 자네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군."
걸음걸이를 늦추지 않고 말을 가로막는 아르간의 말의 유무를 가늠할 수 없는 위압감에, 기사는 어깨를 움츠리고 걸음을 멈추고 입을 닫았다.
"일을 잘 해내지 않았나. 더욱 가슴을 펴야지. 자랑스러워해야지? 그런데 ...... 왜 겁을 먹고 있는 건가?"
기사는 치열이 맞지 않는 입을 떨면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차...... 차, 참렬경...... 저는 그 교회에 지원 물품을 전달했, 습니다......"
"그래서?"
"그, 그런 일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 자꾸만 생각나서 ......"
그렇다.
이 기사는, 참렬기사단이 당장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을에 전하러 간 사람이다.
그때, 참렬 경의 지원이라며 식량과 무기를 남겨두고 왔었다.
아르간은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어 이 기사 한 명에게 그것들을 맡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그뿐이다.
그 폭발의 원인이 자신이 두고 온 물건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가진 것은, 그뿐이었다.
아르간은 생쥐처럼 작아져서 떨고 있는 기사에게, 천천히 몸을 돌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역시 그대에게 부탁한 것이 옳았네."
기사가 묻기도 전에, 흰색과 초록색으로 채색된 호리호리한 양손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부웅'하고 기사와 닿지 않고 허공을 벤 검섬이었지만, 아르간의 눈앞에는 풍선을 터뜨리듯 터지는 진홍빛 피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인적이 드문 숲 속에서 소리 없이 인간의 육체를 단칼에 흔적도 없이 베어버렸다.
뺨에 묻은 피를 닦는 얼굴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주름진 얼굴에 띄우고 있었다.
"자, 이제 성녀님께 보고하러 가야겠군."
아르간은 말을 타지도 않고 혼자서 인근의 전이문으로 향했다.
자신의 부하들은 더 이상 머릿속에 없다.
그저 기다리고 있을 성녀를 만나고 싶다는 일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