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8장 171화 에필로그3, 탑 위의......(2)
    2023년 07월 06일 22시 42분 2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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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탁기에 몸서리를 치던 사람들의 뇌가, 깎여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노출되었다.

    "<가원위기 제나〉, 부디 죽이지 말도록."

     탁기는 거대한 미녀의 괴물이 되어 마왕의 뒤에 선다.

     은빛 장발에 하얀 피부, 베일로 얼굴을 가린 탁기의 검은 드레스를 입은 존재.

     마왕이, 악마의 권속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






     ㅡㅡ그것이 평원에 있던 모든 이들의 마지막 기억이다.

     아비규환에 휩싸여 견디기 힘든 고통에 기절했다가 깨어나보니, 주변은 온통 조각난 마물의 살점들과 쓰러져 있는 병사들.

     두 공주를 데리러 온 군대와, 전투를 벌였던 자들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새겨진 공포와 절망은 한없이 깊었다.

    "...... 오? 저건 ......"
    "후훗, 브렌 군이네요. 어제의 일도 있었는데 벌써 단련인가요. 성실한 아이예요."

     평소처럼 나무 그늘로 달려온 브렌.

     역시 의기양양하게 목검을 들고 있다.

    "...... 그 소드 씨의 손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이렇게 말하면 실례가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그 아이에겐 되려 다행입니다."
    "당신은 소드의 부대에서 지냈다고 들었는데요."
    "예......, 자기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엄격한 분이셨습니다."
    "네,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렇지 않아요. 저것은 관심이라기보다............."

     가식적인 태도를 취하려던 브렌에게 한 인물이 다가온다.

    "브렌, 오늘부터 내가 가르쳐 줄게."
    "앗 ......!!!"
    "어차피 포기하지 않을 테니, 차라리 더 강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 자, 아침 식사까지 가볍게 해 보자."

     반짝이는 눈으로 올려다보는 브렌에 쓴웃음을 지으며, 키리에가 옆에서 장검을 든다.

    "ㅡㅡ아니."

     웬일로 제대로 된 신사복을 입은 소드가 마당으로 나왔다.

     순식간에 긴장감이 흐른다.

     내려다보고만 있던 기사의 등골이 오싹해진다.

    "............ 앗!!"

     다가온 엄한 표정의 소드가, 겁에 질린 브렌의 목검을 들어 올렸다.

    "...... 흠."

     한참을 바라보다가, 아무렇게나 움켜쥔다.

    "앗, ............"
    "하, 할아버지!!"

     순식간에 브렌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으며, 키리에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
    "엥 ......?"

     소드가 말없이 아직 사용한 흔적이 없는 목검을 내밀었다.

    "...... 창고에서 꺼낸 모양이다만, 이건 내가 어렸을 때 쓰던 거다. 이걸 써라."
    "............"

     쭈뼛거리며, 새 목검에 손을 뻗는다.

     손에 쥔 목검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목검보다 훨씬 현재 검의 디자인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키리에가 가르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아직 수행하는 몸으로 허튼 짓하지 마라."
    "하. 하지만 그러면 브렌이......."
    "그전에 너희들에게 말해 줄 것이 있다."

     키리에가 호소하는 내용을 알면서도, 소드는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들의 아버지, 야반을 죽인 건 나다."
    "............ 아니, 아니, 그것은, 니다이가 ......."

     호수에서의 결투에서 니다이에게 베임을 당했을 것이다.

     어린 브렌은 그렇다 치고, 키리에는 관중석에서 한 칼에 베여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니다이가 상대라지만, 일격에 죽지 않도록 돕는 일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었다. 내가 야반을 죽게 만들었다"
    "............"
    "......어, 어째서......?"

     목검을 들고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브렌과, 반신반의하는 키리에.

    "녀석은 아마, 아니 틀림없이 보검 그레이를 빼앗아 악마의 힘으로 레이시아를 지하세계에서 되살리려 했다."
    "앗......!"
    "지금 생각해 보면 라기린이 꼬드겨서 그랬겠지. 둘이서 니다이와 대결하자고 제안했을 때는 몰랐지만, 막상 그 순간을 맞이해 보니......."

     돌이켜 생각해도, 당시의 야반의 눈빛은 요사하게 흐려져 있었다.

    "...... 브렌, 그레이를 손에 쥔 라기린과 맞섰다고 들었다."
    "읏......"

     야단을 맞을 것을 직감하고 몸을 움츠러들었다.

    "소덴의 피인가 ...... 아니, 그 부모님 때문인가. ...... 너는 야반에게 동경심을 품고 있는 것 같은데, 녀석의 그림자만 쫓지 마라. 언젠가는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 목적을 위해 칼을 휘두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고 발걸음을 돌린 소드.

    "...... 그게 조건이다."
    "......?"

     등 뒤의 소드가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브렌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할아버님, 병은요......?"
    "그렇게나 자면 나을 수밖에. 나는 부상당한 렌드를 대신해 왕녀님들께서 머무는 일을 처리할 게다. 그때까지 ...... 네가 브렌을 잘 돌봐라."

     그렇게 키리에에게 말을 남기고 소드는 떠나갔다.

    "............"
    "흐~음, 잘 됐네."
    "......?"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브렌에게 미소를 띤 키리에가, 할아버지가 했던 말의 의미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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