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부-11 이어받은 희망(후편)(2)
    2023년 06월 20일 14시 48분 0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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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거야. 살아있으면 안 된다는 부정은, 그만큼 무거운 거야."

     가능하다면ㅡㅡ그것을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가졌으면 싶었다.

     자신을 쉽게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도 쉽게 부정하게 된다.

    "...... 긍정해야 하는 걸까요?"
    "그럴 리가 없지.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선택만 있는 게 아니야, 좀 더 시간을 들여서 보고 있으면 돼."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불행하게 만드는 병원균 같은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더라도.

     그렇게 보지 않는 타인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넌,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네......?"
    "너,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되고 싶은 거야? 자격은 그렇다 치고, 자질은 충분하잖아."

     그녀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서 유이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를 본 린은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말했지, 다 들리고 있어. 네 성녀로서의 자질이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야. 초대 성녀이자 왕비 ...... 유키였나? 그에 못지않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어."

     그렇게 말한 린은 몇 초간 침묵을 지켰다.

     권능을 시험하는 동안 들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평가한 녀석은 교황님이지만)

     아마도 그것은 평가가 아니라 사실일 것이다.

     성녀의 자격을 잃은 린도 알 수 있다. 힘의 강대함에 있어서는 유이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저의 목표 ......"
    "아,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얘기가 아니야. 하지만 언젠가는 결정해야지. 그걸 잊지 마."

     고개를 든 유이의 눈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래도 이곳에 왔을 때보다 훨씬 앞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 감사합니다. 확실히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
    "그건 내가 무슨 짓을 해서가 아니야. 네가 토해낼 수 있었던 짐짝에, 신께서 힘을 보태주셨을 뿐이야. 혼자 짊어지는 것을 계속 고집하다가는 자멸할 수밖에 없으니 조심해."
    "...... 네."

     일어선 유이는 린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지하에 고요함이 돌아오자, 전 성녀는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흠. 밖은 아무래도 귀찮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교회의 차기 성녀를 둘러싼 옥신각신인가...... 그리고 그 분쟁 속에는 그 바보년이)

     코웃음을 치고서, 린은 고개를 저었다.

     

    (...... 뭐, 상관없나? 어울리지 않는 짓을 했더니 피곤하네, 젠장)

     주머니에 손을 뻗으려다가, 아직도 이런 습관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며 그녀는 웃었다.

     담배는 이제 없다. 줄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ㅡㅡ스스로 버리고 말았으니까.

     

     

     

     ◇

     

     

     

     해가 지고 시간이 더 흘러, 아이들만이 아닌 어른들도 잠에 드는 심야.

     문득 눈을 뜬 료는 아파트 안뜰에 인기척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시간에 뭐야? 설마 정찰 ...... 아니, 그런 것 치고는 기척을 전혀 죽이지 않았어. 분명 아마추어야)

     소리를 죽이고 방에서 나와 잠옷 차림으로 조심스럽게 안뜰을 살폈다.

     그곳에는 달빛 아래 눈을 감고 서 있는 마리아가 있었다.

     료와 마찬가지로 잠옷 차림으로 방을 나간 그녀는, 눈을 감고 눈썹을 모으며 무언가 끙끙대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으음, 으으으으음....... ......"

     입술이 팔자를 그리기도 하고 일자를 그리기도 하는 등, 눈은 감고 있지만 표정이 점점 변해간다.

     조금 웃음을 터트릴 것 같았던 료는 꾹 참으며 마리아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 너, 뭐 하는 거야."
    "히야아아악!?"

     말을 건네자 마리아는, 그 자리에서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그 반응에 미묘한 만족감을 느낀 료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가갔다.

    "밤늦게까지  뭐 하나 싶더니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명상을 하고 싶으면 힘을 빼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인데, 너는 정반대라고."

     료의 말투가 평소보다 조금 편했던 것은ㅡㅡ본인이 자각하고 있든 없든ㅡㅡ상대가 상대라는 것과,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을 밤늦은 시간이라는 특별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마리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새어 나온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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