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부-11 이어받은 희망(후편)(1)
    2023년 06월 20일 14시 46분 5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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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당 지하에서 차기 성녀 유이와 전 성녀 린이 대면하고 있다.

     대면이라고 하기에는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장엄하고도 고요한 느낌이 강하다.

    "저는 성녀의 자격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조건이라 해도 괜찮아요."
    "아 잠깐, 진정해."


     윽박지르는 듯한 기세로 말을 이어가는 유이를 향해, 린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 너에게 필요한 건 신의 목소리겠지. 하지만 넌 지금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고 있는 상황이야. 먼저 그 손을 내려놓아야지."
    "...... 네."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유이의 모습을 보고, 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바보, 그걸 그만하라고 하는 거야"
    "네......?"
    "암기가 필요한 게임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재도 아니야. 그냥 자기 안에 그대로 담으라고."

     그렇게 말한 린은 의자 위에서 다리를 꼬았다.

     도저히 수녀님으로 보이지 않는 자세인데, 그러자 신기하게도 유이 역시 긴장을 풀고 격자 너머로 준비된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일단 확인하겠는데. 너에게는 처음부터 스스로 정한 답이 있어. 그리고 그것과 현실을 어떻게든 조화시키려고 애쓰고 있고."
    "...... 네."

     들켜버린 것에 대한 희미한 동요는 있었다.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한 기억은 없고, 들키지 않으려는 의식도 있었다.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린의 말은 유이의 심경을 덮고 있는 베일을 벗겨내려 든다.

     

    "네가 처음부터 스스로 정한 대답이란....... [자신은 사실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다]라는 거지?"
    "네."

     

     즉답이라니, 하며 린은 작게 혀를 찼다.

    "네 사정은 대충 알고 있어. 존재를 부정당했을 옛 무술 ...... 아니, 살인기술의 계승자."
    "그래요. 남을 죽이는 것이 본래의 존재 이유인 저는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현재 금주보유자나 칠성사와의 싸움에서 역할이 주어지고는 있지만 ......"

     유이의 말을 들으며, 린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주어진? 어이어이 이 녀석, 그 수준으로 그 바보년이 존재를 지탱해 주는 거냐고...... 아니, 그럼 그곳이 시작점이기도 하는 걸까)

     논리를 순식간에 수정하면서, 앉아 있던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적어도 너는 그 역할은 하고 있는 거잖아"
    "...... 네."
    "그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부정하지 마. 너 스스로가 부정해도 하늘에 계신 신께서는 빠트리지 않으실 거야."

     유이는 숨을 죽였다.

     그 반응을 보고, 린은 여기가 난관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네가 스스로에게 해야 할 일은 부정이 아니라 용서라고. 네가 스스로 성녀의 자격을 찾지 못하는 건 용서의 방법조차 모르기 때문이잖아."

     사실이었다.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이 남을 구원할 수 없다ㅡㅡ그런 성급한 말투에 달려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유이에게 그 정도의 감각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을 린은 알아차렸다.

    "그래도 ...... 저는 ......"
    "알고 있다니깐. 그래도 넌 너를 용서할 수 없는 거지? 그 마음은 뼈저릴 정도로 안다구."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말을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나만은 용서해 주겠다고 말하는 건 쉬워. 하지만 그건 도움이 안 돼. ...... 뭐, 모두를 위한 성녀가 아니라 그 녀석의 엄마라도 될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 너무 가까이 다가선 거죠?"
    "그래.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리감이니까."

     찾아온 개인에 대한 포옹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의미가 없다.

     처음에 린이 지적한 대로, 유이는 더 이상 자신이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ㅡㅡ성녀로서 필요한 부분의, 계승의 의식으로 성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신은 결코 부정해서는 안 되는 사항을 알고 계셔."
    "...... 그것은 무엇인가요?"
    "너는 너를 용서해 줄 동료가 있지? 부정은, 그 동료들까지 부정하는 의미라고?"
    "......!"

     유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입술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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