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6 화 월하의 진실2020년 12월 26일 21시 25분 2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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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렉트는 양손을 살짝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댄스를 춘 일이 없었다. 리드하고 있는 건 나였을 텐데, 마치 누군가의 의사에 따르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
그런데도 전혀 불쾌한 느낌이 안 든다......그 뿐인가, 기분 좋은 느낌조차 들었다.
기묘한 일체감과 연대감이 생긴 느낌이 든 것은, 기분탓이었을까.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나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남녀 모두가 얼굴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자랑하는 듯이 누구나 가슴을 펴고 있었다.
그들도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조금 전의 댄스에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상한 댄스였네요."
"그렇군요......"
맥스웰도 역시 렉트와 마찬가지의 의견인 모양이다. 그의 어깨도 약간 들썩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맥스웰이 눈꼬리를 내리면서 미소지었다.
"그럼, 이 여흥을 더 즐기고 싶지만 서로의 파트너와 합류해볼까요."
맥스웰에게 찬성하여 천사와 요정을 찾았지만.....없다?
"보이지 않네요."
"예. 일단 휴식 구역으로 돌아갈까요. 그곳에도 없다면 찾으러 갑시다."
그렇게는 말했지만, 렉트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루시아나는 멜로디의 주인이다. 멜로디를 댄스에 권유할 때, 루시아나는 렉트에게 견제의 시선을 보냈었다. 정확히는 노려본 것이었지만, 루시아나는 멜로디를 꽤 고집하는 모양이다. 루시아나는 아마 지금쯤 어딘가에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휴식 구역으로 갔다. 렉트의 예상대로 그곳엔 두 사람의 모습이 없었다.
"걱정되네요. 나눠서 찾아보는 편이 좋아보이네요."
"전 일단 백작께 이 일을 전하고 올 테니 먼저 가주십시오."
"찾든 못 찾든 30분이 지나면 일단 여기서 만나기로 하지요."
맥스웰은 그것만 말하고 다시금 댄스홀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렉트는 백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백작은 손에 든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작은 한숨이 귀에 들린다.
"백작각하."
"오, 렉트인가. ......세실리아 양은 같이 있지 않은가?"
"댄스가 끝나고 보니 안 보이게 되어서, 지금부터 찾으러 가려 합니다."
"그거 걱정되겠군. 빨리 가보도록 해. .......나도 찾으러 가볼까?"
이 대사에 렉트는 약간 눈을 치켜떴다. 설마 백작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줄이야.
"아니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가능하다면 그녀들이 여기로 돌아오면 백작님께서 보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세실리아 양에게 말을 거는 녀석이 있다면, 내가 묵사발을 내주지."
백작은 평소대로의 어조였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진심이 어렸다.
"그, 그거 믿음직하십니다....그런데, 조금 전부터 무얼 보고 계십니까?"
"아, 이거다."
내민 것은 자그마한 사진. 안에 그려져 있는 건 17,8세 정도의 소녀였다. 긴 갈색 머리를 드리우며 꽤 어여쁜 미소를 띄우고 있다.
"이건......세레나님의 초상화."
"평소에도 계속 갖고 다니던 탓인지 색이 바래졌다. 슬슬 화가에게 새롭게 그려달라고 해야겠구만."
그런데 그가 초상화를 바라보는 건 반드시 혼자있을 때였으며, 렉트가 그 현장을 목격한 것도 몇 번 안되었다. 거기다가 이런 무도회장에서는 지금까지 하지 않은 일이었다.
".....각하로서는 드문 일이군요."
레긴바스 백작은 슬쩍 시선을 올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정말 그리워하는 듯한, 행복한 듯한......그리고, 정말 쓸쓸해하는 표정이었다.
"이상한 일이지만.......세실리아 양을 보았을 때, 나의 세레나가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세실리아 양이, 세레나님을, 말입니까?"
"정말 이상해. 눈의 색도 머리색도 세레나와는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
백작과 헤어진 렉트는 테라스를 건너서 정원으로 향했다. 조금 전의 댄스 덕분에, 댄스홀에는 사람이 바글거렸다. 인기척이 없는 장소의 제일 유력한 후보가 정원이었다.
걸으면서 렉트는 생각한다ㅡㅡ멜로디를.
'처음 만났을 땐 내 저택이었고.....아니, 아니지. 분명, 세레나님을 찾아서 아바렌톤 변경백령에 갔을 때다. 설마 그 때 길을 헤매던 소녀를 사.....사랑하게 될 줄이야.....'
사랑이 처음이었던 렉트로서는, 멜로디와의 장래 전망 따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보다, 내가 고백해도 그녀는 받아들여 줄까? 어쩌지,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멜로디의 제일은 '메이드' 이며, 자신과 결혼한다는 말은 메이드를 은퇴한다는 뜻이기 때문에....그녀가 그걸 받아들이는 모습은 역시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그 이전의 문제인가. 그녀는 날 기껏해야 친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고백하기보다 먼저 날 좋아하게 만들어야 해. 좋아해.....주기는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렉트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지금은 그런 일을 생각한 상황이 아니다. 뭔가 다른 일을 생각하자. 렉트는 자기가 모시는 레긴바스 백작을 생각했다.
'백작각하도 힘드시겠다. 멜로디가 세레나님으로 보였다는 뜻은, 설마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들이 전부 세레나님으로 보인다는 뜻은 아니겠지. 그녀가 연상된다면, 그 나이대의 여자라 해도 과연 어떻게 하실까... 설마, 멜로디에게 청혼이라도 하는 것은!? 그런 일을 하시면.....'
큰 문제가 된다.....사회적으로. 하지만, 여기에 진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정원 군데군데에 마법으로 점등된 등불이 설치되어 있어서, 회장에서 멀어져도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렉트는 분수 앞에 선 천사와 요정의 모습을 발견했다. 약간 어두웠기 때문에 확실하게는 안보였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는 밝다.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루시아나는 멜로디를 용서한 모양이다. 반쯤 속여서 그녀를 데리고 온 렉트로서는 자기 탓에 저 주종관계가 나빠지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걸려고 생각한 순간, 루시아나가 렉트 쪽을 보았다. 그녀는 멜로디에게 잠깐 뭔가를 이야기하고, 렉트를 향해 달려갔다.
지나치기 직전, 루시아나는 일단 렉트의 앞에 서서ㅡㅡ.
"이번엔 용서해 주겠지만, 다음에도 멜로디를 속이는 짓을 한다면 용서치 않을 거야. 하지만 그녀를 여기에 데리고 온 것 자체는 잘 했어. .......나중에 또 함께 무도회에 가고 싶다면 솔직하게 부탁하도록 해. 난 멜로디와 여기서 춤췄던 것 자체는 기뻤으니까."
반드시야, 라고 할 말 다한 루시아나는 멜로디에게 손을 흔든 후 달려서 떠나가고 말았다.
"숙녀는 달리면 안 됩니다만....."
하지만 천진난만한 요정의 뒷모습으로 밖에 안보였고, 조금 전의 말도 있어서 렉트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자, 우리 천사님은....'
다시금 천사님ㅡㅡ멜로디에게 눈을 향했다.
'루시아나 양의 눈썰미에는 놀랐지만, 루틀버그 백작 부부는 멜로디를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었다. .....설마 눈앞의 소녀가 흑발흑안의 메이드였다니 눈치채는 것도 어려운 일이겠지.'
ㅡㅡ정말로 그런가? 그녀는 정말로 흑발흑안인가?
'......처음 만났던 건 아바렌톤 변경백령의 트렌디바레스. 그 때도 흑발흑안이었다.'
ㅡㅡ정말로 그런가? 나는, 흑발흑안의 그녀밖에 모르는가?
'......모르겠어. 왕도에서 재회했을 때, 난 응접실에서 자고 있었고......그곳에서 그녀를 보았는데.....'
ㅡㅡ정말로, 그런가?
'.....정말이다ㅡㅡ근데, 난 조금 전부터 왜 자문자답하고 있는 거지?'
그 때였다.
구름에 가려져 있었던 만월이 모습을 드러내며, 부드러운 달그림자가 멜로디를 상냥하게 감싸 안았다.
멜로디가 쓰는 마법 [아르고바레ㅡ노] 는 빛의 반사와 굴절을 이용해서 보는 자의 색채를 착각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효과가 유지되는 한 다른 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만 한순간....달빛에 휘감긴 멜로디의 금발이 빛을 반사하여 흰색같이 보였다.
하지만 하얗다기 보다도....백은색의 머리, 라니......
렉트의 발이 멈췄다. 눈은 부릅떠지고, 그의 시선은 멜로디에 못박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세계에서 렉트만이 진실을 깨닫는 모든 조건을 손에 넣었다.
렉티아스・프로드는 알고 있다.
레긴바스 백작에게는 예전에 세레나라는 애인이 있었고, 두 사람의 사이엔 세레스티라는 딸이 태어났다는 것을.
렉티아스・프로드는 알고 있다.
세레스티가 아버지인 레긴바스 백작과 같은 은발을, 어머니 세레나와 마찬가지인 유리색 눈동자를 가졌다는 것을.
렉티아스・프로드는 알고 있다.
레긴바스 백작에게서 빌린 초상화로, 세레나가 어떤 모습의 여자였는가를.
렉티아스・프로드는 알고 있다.
멜로디・웨이브는, 세레나가 살고 있던 땅, 아바렌톤 변경백령에서 왔다는 것을. 그것도 세레스티가 실종된 것과 같은 시기라는 것을.
렉티아스・프로드는 알고 있다.
멜로디・웨이브에게는 머리와 눈의 색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이 있다는 것을.
렉티아스・프로드는 알고 있다.
멜로디・웨이브의 머리카락이, 사실은 금색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은 검은 머리의.....
ㅡㅡ아니다. 사실은.....
렉트가 본 것은, 단순한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은발을 휘날리는 멜로디의 모습은......잃었던 그의 기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멜로디와 왕도에서 재회한 것은, 그의 저택 응접실이 아니었다. 렉트의 뇌리에, 문을 연 순간에 보였던 순진무구한 소녀의 선정적인 나체가 떠올라ㅡㅡ.
'ㅡㅡ아, 아냐! 그게 아니잖아! 그래! 왕도에서 그녀와 재회했던 건 응접실이 아니라, 저택의 목욕탕이고......그 때, 그녀는 틀림없이......은색의 머리카락을, 유리색의, 눈동자를.....'
그것은, 세레나가 살았던 아나바레스 마을의 촌장에게서 들었던, 세레스티의 특징.
아무리 머리와 눈의 색깔을 바꾼다 해도, 얼굴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인상이 변화해도, 메이크업을 해도, 원래 갖고 있는 멜로디의 용모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다' 고 생각하며 그녀를 보니......멜로디는 세레나와 아주 닮았다.
세레나의 죽음과 같은 시기에, 같은 영내에서 찾아온 은발과 유리색 눈동자를 지닌, 세레나와 매우 비슷한 15세의 소녀.....도대체, 어느 정도의 확률로 다른 사람일 것인가.
"죄송해요, 렉트 씨. 이런 곳까지 마중하러 오시다니요."
"아니......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발견하고, 말았다......세레스티 아가씨. 멜로디가, 세레스티 아가씨......'
사랑하는 소녀는, 계속 찾아다니고 있던 레긴바스 백작의 딸이었다.
순진한 미소를 띄우는 멜로디와는 대조적으로, 렉트는 내심 휘몰아치는 여러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참아내었다.
'내 사랑은......아니, 그게 아냐. 아가씨의 희망은, 메이드......각하께 보고한다면, 아마도 그건 이룰 수 없게 된다.....하지만, 저렇게나 괴로워하시는 각하께 전하지 않는 건, 의에 벗어나는 일인데.....'
대답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렉트로서는 누구나 행복해지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눈치채지 않았더라면 좋았다ㅡㅡ렉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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