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감는 용, 젤도르가.......그놈인지 그녀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런 흉악한 짓을?"
[그 녀석은 나와 같은 수컷이라고. 그래서 뭐, 목적은 간단해]
부엌 식탁에 내려와 날개를 쉬면서, 미크리루아는 말했다.
"나와 달리 그 녀석은 마음만 먹으면 창세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지. 사실은 여러 신들이 협력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는 하는데 ...... 요소는 그대로 두고, 시작점으로 시간을 되돌린 뒤 내가 지켜준다며 떠벌리면 누구든 그놈이 유일한 신이라고 생각하겠지?]
아, 그렇구나.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내 추측은 드디어 신빙성이 높아진다.
"녀석들ㅡㅡ제가 쫓고 있는 군신의 각성자 및 신전의 잔당들은, 젤도르가를 이용해 세계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자기들이 지배자로서 통치하려 하고 있다. 이것이 제 예측이에요."
[하하, 정답이라고, 아가씨.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놈들이 있구만, 진짜]
요점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소동, 상대방의 의도를 거의 읽을 수 없다는 심각한 페널티를 안고 있었지만, 미크리루아 덕분에 거의 다 밝혀지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쟁하겠네요."
[응?]
"아뇨 ...... 유일신이 되는 것이 젤도르가의 목적이잖아요. 하지만 제가 쫓고 있는 군신도 같은 목적이라면, 왜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 어쩌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가능성. 그 말을 꺼내자, 미크리루아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 미안, 말하지 않았구나. 음, 결론적으로 말하면 손을 잡은 건 아니야]
"앗....... 역시 그런가요."
댓글란의 정보에 따르면, 군신은 젤도르가를 완전히 포섭할 수는 없지만, 약화시키면 권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위는 이렇다. 그들은 미각성 상태의 나를 어느 정도 강력하게 구속한 상태에서 반각성 상태까지 각성시켰다. 그 후 권능을 행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왔지]
"당신도 신전 잔당들의 관리 하에 있었어요?"
[그래. 그렇고 말고, 그 못된 놈...... 군신이라는 녀석이었지. 내가 듣기로는 불침경이라고 불렸는데, 녀석은 젤도르가의 권능을 이용해 여러 번 시간을 되돌렸어. 그때마다 나는 상충되는 권능을 부딪쳐서 되감기의 규모를 최소화했지]
그렇구나, 이렇게까지 소모된 것은 그 때문인가.
아니, 엄청나게 큰일을 하고 있잖아! 뭐야? 이 용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당했던 거 아냐?
"......고마워요."
[신경 쓰지 마. 나는 내 소원에 따라 행동을 취한 것뿐이다. 결국은 이 정도로 약화되어서 녀석들의 뜻대로 되어 버렸지. 아마 의도한 대로였겠지. 나와 젤도르가를 여러 번 부딪혀서 둘 다 약화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분함을 내비치는 미크리루아.
그에게서 얻은 정보는 많다. 너무 많다.
[그 녀석 ...... 젤도르가는 이제 거의 자아를 잃은 상태다. 설령 한때 실수를 저질렀던 존재라 해도, 아무리 그래도 너무해. 나는 저 녀석을 돕고 싶어]
"네. 싸워요. 싸워서 저들의 야망을 막아야지요."
이 세상에 악은 여럿이 필요 없다.
루시퍼조차도 필요 없다. 내가 유일무이하면 된다.
주인공 일행에게 타도당하는 영광을, 뜬금없이 나타난 녀석에게 양보하다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꼴이다. 도저히 전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만]
"어머, 꽤나 귀여운 모습이네요."
[존재의 격 자체는 떨어지지 ...... 않았지만, 뭐 떨어져 보일 수밖에 없겠군. 이래서야 종이의 용과 다를 바 없겠어]
보고 있기가 불쌍해질 정도로 소침해져 있다.
위로하는 게 좋을까 ......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앗"
[?]
격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지?
아, 그렇구나.
생각이 윙윙거리며 고속으로 회전한다. 계획이 세워지고, 노이즈를 제거하며 결과까지의 최적 경로를 모색한다.
"당신."
[왜 그러냐. 역시 졸리다고?]
"쓸만하겠네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