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35부 315화 아픔을 아는 자(1)
    2023년 04월 14일 05시 09분 0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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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런 곳에 이런 게 있었구나 하는 뜻밖의 발견을 한 적이 있는가? 대청소든, 방 정리든, 이사 작업이든,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내 방 옷장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작은 금고.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며 열쇠가 달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메모를 한 손에 들고 열어보니, 그 안에서 나온 것은 권총이었다.

    "뭐야, 그거, 총이냐?"

    "그래, 여차할 때 자결할 때 쓰려고 사둔 건데 까맣게 잊고 있었어."

    "흐음, 자결용이라니?"

     경호 당번이라 오늘은 내 방에서 식후 낮잠을 자러 온 크레슨에게 뒤에서 봉제인형처럼 들어 올려지면서, 나는 총알을 빼낸 권총을 손바닥으로 만지작거렸다. 애들 손에는 조금 모자란 그 총은 내가 한때 심하게 병들었을 때 몰래 로리에에게 명령해 사 오게 한 것이다.

     그, 있었지? 초등학교 시절, 반 군이라는 주인공의 빛에 뇌가 타들어가던 내가 혼자서 고민하고 우울해하며 멍청하다고 할 정도로 비참하고 괴로웠던 시절. 어차피 나 따위는 이세계로 환생해도 잘 안 될 거야, 다들 나보다 더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 거야, 이제 끝났어, 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이글 아빠의 압도적이며(일부 왜곡된 부분도 있지만) 진지한 애정의 탁류에 휩쓸려, 전 세계에서 이 사람만큼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덕분에 많이 나아졌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최악의 경우 이쪽에도 손을 뻗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내 멘붕이 얼마나 심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독선적인 생각만으로 일방적으로 역정을 내고 폭주하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완전히 나쁜 녀석이었지. 그때의 너는 어렸어. 어리다고 해야 할까, 멍청했어. 사춘기 특유의 오만한 자의식과 너무 교만해서 터지기 전에 썩어버릴 것 같은 부끄러움을, 사람들은 흑역사라고 부를 것이다.

    "귀족 아가씨나 부인을 위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자결용 무통 독약이 시중에 흔하게 유통되고 있다던데, 어차피 살 거면 그걸 사면 됐잖아?"

    "......"

     농담처럼 웃으며 끝내려고 하는 내 손을 그 커다란 손바닥으로 움켜 쥐며, 크레슨이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아, 위험할지도 몰라. 왜 그런 부분은 묘하게 눈치가 빠른 거야, 너는. 그때부터 그랬지. 그래서 너에게 구원을 받은 거지만.

    "미안하다니깐. 아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그때는 아직 서로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고, 나도 지금보다 훨씬 더 무지하고 무식한 아이였으니까. 처음부터 최단 경로로 최선책만 계속 선택한다는 게 보통은 가능하지 않겠어?"

    "네가 엄청나게 멍청한 녀석이었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말이지?"

     크으, 생각나네. 어두운 방에서 혼자서 이걸 심장이나 관자놀이에 대고 불쌍한 나 놀이를 하면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로 점점 더 내가 싫어지고, 그런 악순환에 빠져서 괴로워하던 나 자신에게 취해있던 그 시절을. 정신병자가 손목을 긋는 것과 본질적인 부분은 같아.

     자신을 해치면서 무슨 재미가 있느냐고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게 의외로 재미있기도 하다. 내가 싫어하는 자신에게 벌을 주는 것, 너 같은 놈은 죽으라고 울면서 스스로에게 주먹을 쥐고 계속 휘두르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벌을 받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 뒤는 뇌의 호르몬 분비가 저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더 깊이 파고들어도 소용이 없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기억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싫어하는 놈이 행복해 보이는 게 눈에 거슬린다, 저런 놈이 즐거워하는 게 용서할 수 없다, 불행해져라]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 그 미운 놈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일 때도 있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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