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번은 죽었던 미래가 있었다고 들었다. 전쟁의 이치도 모르는 자가 나조차도 쉽게 도살할 수 있는 치사한 힘을 가진 것만큼 두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때, 기숙사 왕족전용실을 피로 물들이는 결과가 되더라도 거기서 죽여버렸어야 했다면서. 후회해도 후회할 수 없을 만큼의 참극이 이 나라, 아니 이 세계를 덮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멀린 학장은 술냄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아이지. 사람은 힘에 빠져 욕망에 빠져 스스로 파멸로 치닫도록 살아가기 쉬운 존재. 그런데 저 아이는 마치 겁에 질린 듯, 남의 눈을 무서워하는 듯, 자꾸만 움츠러든다네. 그러면서도 그 은둔의 길보다 내 품을 택하는 아이이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아."
"전생에 뭔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가 싶네. 자신이 무언가 아주 중요한 일을 잘못할까봐 남들보다 더 두려워하고, 만약 잘못하면 죽여서라도 막아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지. 그러면서도 그런 눈빛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더더욱 문제일세."
물론 멀린이 말하는 전생이란 이 세상에도 있는 윤회 개념의 전생이라는 뜻이다. 다들 말과 행동으로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지만, 호크 골드의 전생이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에게 직접 비밀을 털어놓은 로리에뿐이다. 멀린도 하인즈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와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귀엽지 않나?"
"그래, 화가 날 정도로."
"그 녀석을 보면, 개나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네. 그 녀석이 불과 몇십 년 만에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을 생각하면 가끔은 미친 듯이 슬퍼지기도 하거든."
"자네한테는 손자나 다름없을 테니까."
"손자이자 제자이자 ...... 휴우. 강해져야지. 그 아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잘못하는 것이 두렵다면, 잘못했을 때 내가 그 아이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도록."
"그래. 학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꾸짖어 주는 것이 교육자의 임무일세. 세계 최고의 현자라 불리는 나도 그 아이와 규칙을 무시한 전면전을 벌였을 때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거든."
그 뒤로 두 사람은 침묵을 지켰다. 가끔 바삭하게 볶은 짠맛이 강한 견과류를 씹는 소리와 술을 마시는 소리만이 조용히 방음 마법의 결계 안에 울려 퍼진다.
"...... 후우. 어때, 이제 술도 좀 취했으니 라멘이라도 먹으러 가지 않겠나?"
"자네, 늙은이의 뱃속을 망가뜨릴 셈인가?"
"하하하! 잘도 말하네! 그대는 에테르를 섭취한 덕에 영혼이 젊어졌을 텐데?"
"...... 그건 네놈도 마찬가지면서."
"뭐, 비난하는 건 아닐세. 운이 좋았지!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영혼의 빛, 싱그러운 생명의 활력! 정말 감미롭지 않은가. 늙어가는 사람이 영원한 젊음을 추구하며 미쳐가는 이유를 말이 아닌 마음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되었고 말고. 늙어가는 몸을 탈피시킨 듯이 충만한 이 젊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렬한 생명 에너지의 빛! 정말 무섭구나. 아아 무서워!"
두 사람은 웃으며 빈 잔을 내려놓는다.
"뭐, 좋지. 심야 라멘 한 그릇 정도라면, 신도 용서하시겠지."
"짐이야말로 신이다! 그리고 그 여신도."
"허허허, 그렇다면 자네 용서를 받은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겠구먼."
계산을 마친 두 노인은 술집을 나와 밤의 고급 주택가로 사라진다. 한쪽은 키가 3m에 달하는 비늘이 너무나도 반지르르한 황금빛 노룡, 한쪽은 겉보기에는 날씬해 보이지만 보디빌더처럼 근육이 발달해 야생의 짐승처럼 근육을 로브 속에 숨겨놓은 마법사 할아버지.
물론, 위장 상태도 아주 좋은 상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쯤이면 왕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스페셜 라멘도 속쓰림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밥 곱빼기 정도는 넉넉히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