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돌아가자!"
또 멋대로 어디론가 가버리면 곤란하다면서, 내 목덜미를 붙들고 있던 크레슨이 나를 공처럼 높이 들어 올려 양손을 겨드랑이에 집어넣고 그대로 들어 올려 어깨동무로 전환한다. 이렇게 크레슨이 어깨동무를 해주는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았지만, 아까 동전 던지기를 할 때도 당했었다. 전혀 오랜만이 아니었어.
"미안, 모두들. 걱정을 끼친 사과의 의미로, 감주라도 사줄게."
"오! 그거 좋습니다요!"
"헤헤헤! 여기 있습니다!"
신사의 본전으로 이어지는 참배길에는 감주, 방울 카스텔라 외에도 닌교야키, 소스 센베이, 사과 사탕 등 일본식 노점이 즐비해 참배객들의 배를 채우고 있다. 손님들이 거의 모두 웹소설의 판타지 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는 점만 빼면, 전생에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갔던 새해 첫 참배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흐음. 이 나라의 감주는 술지게미를 녹인 것이 아니라 쌀을 누룩으로 발효시킨 것이 주류이므니까."
"아이들도 마실 수 있도록 그런 거죠. 특히 새해 첫날이니까요."
"가끔은 감주라는 것도 좋찮네~"
"그래. 달콤하고, 따뜻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맛이라는 느낌."
"흠. 예전에 고향에서 마셨던 그 맛이 생각납니다요."
기념품으로 포장마차의 방울 카스텔라를 산 뒤, 5명이 감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여자애가 쓰러졌어!] 라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목을 베기 직전에 칼등에 등짝을 맞고 의식을 잃은 바바라 맨홀와트였다.
뭐야, 또 매번 하던 기억 지우기 코스냐고 식상해,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내가 한 것은 그 인격파탄자의 마음속에 결여되어 있던 양심이라든가 양식이라든가 죄책감 같은 걸 억지로 심어줬을 뿐이다.
깨어났을 때는 다른 사람처럼 참된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마음을 갖게 되겠지만, 그만큼 자신이 그동안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이나 수치심으로 죽음의 게이지가 가득 차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자살해 버리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니, 죄의식뿐만 아니라 안일한 자살이나 죽음으로 사과하지 말라는 성의를 강하게 주입시켜 놓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분명.
상위세계에서 여신 채널을 보고 있는 신들 중에는 왜 죽이지 않았느냐, 느슨하다, 위선자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겠지만 ...... 왜 죽이지 않았을까, 진짜.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나도 죽여버리고 싶었어. 왜냐면 비록 가짜라고는 해도 나한테 모두의 모습을 한 것을 죽게 만들었잖아?
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설날을 앞두고 실종된 딸을 열심히 찾고 있을 한 아버지를 생각하면 왠지 참을 수 없었다. 호크, 호크! 라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나를 찾아 헤매는 이글 아빠의 모습이 한순간이라도 떠올랐기 때문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시체를 눈앞에 마주하는 것도 힘들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실종된 내 아이를 언제까지나 기다리는 것도 힘들 것이다. 두 번 있는 일은 세 번 있다고 하지만, 부처님의 얼굴도 세 번까지라고 한다. 이번만큼은 딸바보 아버지를 봐서 용서해 주자. 설날부터 피비린내 나는 칼부림으로, 모처럼 아빠가 만들어준 골드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하카마를 더럽히는 것도 그렇고.
물론 세 번째가 있다면 다음번엔 일말의 자비도 없이 죽여버릴 거다. 뭐, 선생님이 인과응보를 베고 정신 조작으로 강제로 개심시킨 지금, 아마 그런 걱정은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사과하러 오고 싶다고 한다면, 얼굴도 보기 싫으니 거절의 답장을 보내는 정도다.
"어이, 모처럼 시내까지 왔으니 어디 한 번 들르지 않겠어?"
"좋아, 그러고 보니 무기점에서 무기 복주머니를 팔고 있었을 거다."
"어? 뭐? 무기 복주머니?
뜻밖의 단어에 놀라는 나에 비해,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게 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래. 근거리용과 원거리용 두 종류가 있거든."
"옛날 저처럼, 만년 금전 부족으로 만족스럽게 무기를 교체하거나 추가 구매도 할 수 없는 중급 이하의 모험가에게는 무기상점이나 방어구 상점의 복주머니는 꽤나 고마운 존재였습니다요."
"그렇구나...... 복주머니도 간단하지 않네......"
"그럼 먼저 무기점으로"
다 마신 감주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참배객으로 북적이는 여신 신사를 떠난다. 세뱃돈, 아까워서 동전 한 장으로 넣을 게 아니라 최소한 은화 한 장이라도 넣었어야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