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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어이! 왜 그러냐! 아까부터 시시껄렁한 싸움만 하고 있어서 재미없다고! 네가 나라고 한다면 좀 더 나를 즐겁게 해 주라고!"
"치잇!?"
어둠을 찢는 자전의 번개를 두르면서, 크레슨과 다크 크레슨이 서로를 때려눕히려고 한다. 진흙탕 싸움이지만 크레슨 본인은 의외로 이런 야만적인 주먹다짐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크레슨의 거구와 강인함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에 비해 훨씬 건장한 올리브나 버질, 카가치히코조차도 근력 강화 마법으로 보조하지 않으면 그와 정면으로 맞붙어 씨름을 해도 몇 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걷는 중전차, 움직이는 거석, 폭력이 옷을 입고 걷고 있다. 그런 원시적 맹렬함의 덩어리가 바로 크레슨이라는 들고양이 수인이다.
"하하하하하! 더더욱 즐기자고! 너도 기쁘지! 약한 녀석들을 상대로 사냥만 하고 있으면 재미없잖아! 역시 싸움이란 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는 거라고! 죽느냐 죽임을 당하느냐의 벼랑 끝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게 가장 재미있지!"
"크윽!? 가아악!"
마운트를 잡혀서 철구 같은 주먹으로 두들겨 맞고 간신히 내민 반격의 주먹이 크레슨의 얼굴에 박힌 것은 그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힘은 대등할 터. 혹은 호크 골드의 공포로 인해 이몸은 진짜보다 더 강해졌을 텐데,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왜 지고 있어! 말도 안 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라며 다크 크레슨은 코피를 흘리며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화를 내는 것만으로 강해질 수 있다면 수련은 필요 없다.
"야! 실망시키지 말라고! 너의 어디가 나라고 하는 거냐, 이 새끼야! 나 같으면 좀 더 진지하게 날 죽이러 와!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영혼을 불태우며 즐겁게 싸워라, 이 못난 놈아!"
그리고 진짜 크레슨은 가짜보다 더 화를 내고 있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없었던, 완전히 화난 상태였다. 모처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육탄전을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겉모습은 똑같아도 실력이 이 모양이니 긴장감도, 쫄깃함도 느낄 수 없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기대한 만큼의 배신감에 분노의 불길이 치솟자, 주먹에 휘두른 자전 역시 상대의 털을 태우고 살을 태워버릴 정도로 그 강도를 높여간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아~...... 이제 됐어. 거진 다 죽어 버렸으니까."
최후의 저항,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어뜯는 것처럼, 크레슨의 목을 노리는 다크 크레슨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통나무 같은 팔이 가볍게 받아낸다. 뼈를 자르기는커녕 살을 베어내지도 못하고, 털에 박힌 송곳니가 너무 얕아서 실망한 크레슨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쉽게 목뼈를 부러뜨려 끝장을 냈다. 다크 크레슨의 주먹에는 무게가 없었다. 심지가 없었다.
혹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 결여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조악한 물건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연민마저 느껴진다. 크레슨에게 있어 싸움은 삶 그 자체다. 다크 크레슨에게는 삶이 없었다. 그 여자가 그 자리에서 급조한 꼭두각시로, 그 여자가 흉내만 낸 가짜라면 그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아~ 재미없어~"
하지만 어떤 이유가 있었든, SSS급 마물로 재해로 지정된 사룡 본체를 상대로 평소에 맨주먹으로 육탄전을 벌여온 크레슨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소화불량이다. 단순히 이기는 것만이 기쁨이 아니다. 강한 상대와의 진지한 승부를 즐긴 끝에 얻어낸 승리야말로 기쁨이다. 크레슨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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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히."
"승부."
고수들 간의 대결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순식간에 결판이 나기 때문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카가치히코가 수련한 것은 칼질이 아니라 거합이다. 박력 있는 격전도, 가열찬 칼부림도 필요 없다. 베어야 할 것을, 그저 베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서투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할 수 없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만 극한까지 밀어붙여 한때 검성이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다 버린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이름 없는 일개 경비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무념!"
"......"
작별하게 된 몸통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먹물처럼 검은 어둠이었다.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지지도 않고 공중에서 어둠에 녹아 사라진 다크 카가치히코를 돌아보지도 않고, 카가치히코는 명검 도겐자카를 칼집에 넣는다.
"같은 얼굴, 같은 칼. 하지만 이렇게나 실력은 녹스는 법인가."
있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일까, 아니면 그저 겉모습만 닮은 목각인형일까. 내일은 내가 이렇게 되지 않도록, 반면교사의 앞에서 스스로를 경계하며 카가치히코는 눈을 감고 합장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눈꺼풀을 뜨고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어둠 속을 빠르게 달린다.
초심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교만해지지 마라. 아무리 힘을 얻었더라도 한 점의 겸손함으로 지금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라는 것이다. 호크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것을 어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