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부 253화 코드네임은 00S(1)

 

"이쪽은 00S(더블오 섹시). 목표 건물에 잠입했다. 오버"

"여기는 00H (더블오 헤븐). 옆에 있다. 오버....... 이봐 00S, 이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이쪽 00S.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스파이 같은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 그만. 오버."

"이쪽은 00H. 납득했다. 오버"

"이쪽은 00M(더블오 머슬). 이봐, 우리는 왜 정장을 입었지?"

"이쪽은 00S, 양식미?　오버"

 초목도 잠든 밤 2시 경. 미묘한 어린애 냄새가 배어있는 고급 브랜드 아동복으로 갈아입은 나와, 마찬가지로 입사용인가?　싶은 느낌의 고급 정장을 입었지만 근육으로 찢어질 지경인 고리우스 선배와, 늘 입는 특주품인 방검 방탄복을 자연스럽게 입고 있는 올리브는 무사히 델리게이트 센트럴즈에 침입했다.

 만능 AI 노집사 셰리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이 세상의 최첨단 하이테크 보안은 계란으로 만든 금고나 다름없다. 치트 파워로 강화된 나노머신 기술을 이용해 순식간에 건물 안팎을 무력화시키고, 오프라인 경보 마도구나 침입자 퇴치 시설도 원격으로 오작동시키거나 작동 불량을 일으키는 등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AI가 치트 사용이 가능해졌냐고?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사기적 행위를 치트라고 부르는 것 같다, 아마도.

 다행히 은밀기사들은 그 특성상 사건 해결에 있어 '누가, 어떻게' 같은 정보는 기밀이기 때문에 동료들 사이에서도 비밀에 부쳐진다고 하니, 설마 셋째 왕자가 공명심에 눈이 어두워 억지로 끼워 맞춘 아직은 학생인 듯한 아마추어 같은 고리우스 선배가 가짜 인맥을 이용해 속임수를 쓰고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제3의 왕자라는 방파제를 넘어 억지로 그 말을 꺼내낼 수도 없을 거다. 우리도 그걸로 되었다고 납득하고 있기 때문에 뒤탈도 전혀 없다.

 자, 그럼 큰일이 나기 전에 빨리 끝낼까요. 오크우드 박사가 몰래 애용하는 특수 잉크에는 박사 자신의 마력이 담겨 있기 때문에, 설령 도난당해도 잉크에 남아있는 박사의 마력 잔여물을 통해 그 흔적과 행방을 알 수 있고, 모사나 위조된 사본이라면 자신의 필체가 아님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뛰어난 물건이다.

 탐색은 셰리가 건물 1층부터 30층까지 통째로 스캔한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내가 앞장서면 길을 잃을 일이 없고, 적의 처리는 암살기술이 뛰어난 올리브가 말없는 제스처 하나로 소리도 없이 신속하게 제거해주고, 열쇠 열기는 마법이면 해결된다. 마도구에 의한 방범 센서나 감시 카메라도 셰리가 재밍을 걸어 고장 내면 한 방에 해결된다. 음, 역시 믿음직스럽다. 이런 스파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능 슈퍼해커 같은 존재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

 시간은 꽤 늦은 밤이지만, 역시 시설 내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잠수함의 설계도를 어떻게든 해독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양이다. 박사의 글씨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일부러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엉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세 살배기 아이에게 크레파스를 쥐어주는 게 더 읽기 쉽게 글씨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혹시 너무 못 써서 암호 취급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상당히 웃기는데 그건..... 아니 과연 그럴 리가 없지. 아니지?　아니 그래도 박사니까 .......

 불이 켜져 있거나 꺼져 있거나. 연구원이나 군인이나 경호원이 있거나. 한시라도 빨리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이런 늦은 밤까지 설날을 반납하고 일하는 불쌍한 분들은 올리브가 조용히 시키고, 나는 그 증거를 은폐하면서 어두운 건물 안을 헤집고 다니는 정장 차림의 우리 세 사람. 음, 좀 더 화려하게 총격전이 벌어지는 게 더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올리브와 셰리가 너무 뛰어나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올리브가 소음기 달린 권총으로 '쾅'하고 쏘기만 해도 대부분 한 방에 끝이 나니까. 굳이 칼을 써서 근접전을 할 필요도 없고,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한 보통 영상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수수한 암살이 이어진다. 바로 필살기처럼 화려한 암살 방법 같은 걸 쓰면 조회수를 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