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있네."
"저기, 잠입 임무라는 게 이렇게 순조롭게 잘 풀리는 건가? 뭔가의 함정 아니야?"
"그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신속하게 철수하죠."
설마 30층짜리 건물의 지하에 10층이나 되는 지하층이 있을 줄이야. 그도 그럴 것이, 15층 창문을 통해 침입했는데도 셰리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라고 지시하는 거다. 지하를 이용해 비밀리에 존재하던 공화국군 비밀 연구소의 가장 안쪽에서 손쉽게 원하는 설계도 원본을 발견한 우리는, 골드 저택으로 직행할 수 있는 전이문을 열고 가장 먼저 고리우스 선배에게 설계도를 가지고 피클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보고하러 가게 하였다.
여신 스마트폰에 표시된 이 건물의 데이터를 보면 아직 적군의 증원도 오지 않은 것 같으니, 빨리 가서 쉬자. 그전에. 혹시라도 복제했을 때를 대비해 지하실을 조금만 불태우고 도망칠까? 이미 백업이 어딘가로 옮겨졌다면 이미 우리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일 테니까. 아무리 셰리라도 거기까지 찾아내지는 못하겠지.
애초에 이번 목적은 빼앗긴 설계도를 탈환하든 파기하든 브란스톤 왕국 기사단의 체면과 명예를 회복하는 데 있다. 솔직히 말해 델리게이트 왕국이 브랜스턴 왕국보다 먼저 잠수함을 만들든 말든 우리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관계도 없다. 굳이 꼽자면 전쟁 특수로 가게의 매출이 늘어나는 정도?
"그럼, 한번 해볼까요!"
"그래. 그건 그렇고, 도련님, 조금 살이 찌지 않았니?"
"아하하. 선생님이 주신 떡이 너무 맛있어서 그만..."
그래서, 더 이상 참견할 명분도 없기 때문에, 나는 개과의 수인답게 멋진 각력으로 전력 질주하는 올리브의 옆구리에 끼워진 상태로, 지하 10층에서 지하 1층까지 차례로 이그니스 폐하 직전의 검은 불꽃...... 역시 폐하에게 누명을 씌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적당히 푸른 불꽃을 뿌리고 도망쳤다. 화재경보기형 마도구나 소화장치용 마도구는 모두 셰리에게 부탁해 부숴버렸기 때문에, 소화활동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애초에 지금 여기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기사단 비밀 연구소도 폭파된 것 모양이니, 이 정도 의보답은 해줘야 하지 않겠어? 모처럼이니까 '쾌걸 아브라미 꼬마 출동! 같은 메시지를 남기는 것도 아깝지 않았지만, 쟈파존까지 휘말려 소란이 일어나면 역시 감당이 안 되고.
지상 30층짜리 건물을 무너뜨리면 눈에 띄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비밀인 지하 연구소를 뿌리째 태워버리는 정도라면 기밀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업보든 뭐든 간에 공화국 스스로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를 은폐해 줄 거라 믿는다, 레츠 타워링 인페르노. 온리 언더그라운드 스페셜 에디션. 자존심 높은 놈들이 이끄는 부서는 어디든 힘들다고.
◆◇◆◇◆
"피클스 님을 대신해 제가 이 나라를 대표해 감사의 말씀을 전할게요. 이번 일은 정말 감사합니다, 호크 님."
"괜찮아요. 마침 좋은 신년 다이어트가 되었거든요."
"후후, 당신 다운 대답이네요."
그 극비 잠입 미션이 끝나고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은밀기사의 손에 의해 무사히 회수된 잠수함 설계도의 후처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피클스 님을 대신해 우리 집에 나타난 자는, 고리우스 선배를 대동한 로사 님이었다.
"그 빼앗긴 설계도를 되찾기에는 지금은 아직 시간적으로 너무 일러요. 당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빨리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을 믿지 못할 거예요. 이쪽에서 적당한 시기를 봐서 자연스러운 커버스토리를 곁들여 이번 일은 진정시키도록 할게요."
"그게 좋겠습니다. 설마 하루 만에 돌아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차라리 설계도를 소지한 채 국내에 적국의 공작원이 아직 잠복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어려울 거예요. 설계도가 이미 델리게이트 왕국에 반입되었다는 것은 U3 분들이 알아내 주셨으니까요. 이제 와서 저쪽이 가짜이고 진짜는 이곳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밝힐 수는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