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3부 203화 천사에게 노래를(1)
    2023년 03월 15일 16시 39분 3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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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가을인데, 가을이라 하면 학예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축제다. 왕립학교에서는 현재 축제를 준비하느라 학생들이 분주하다. 판타지 세계인데 야키소바, 프랑크푸르트, 타코야키의 노점이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아? 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우리 1학년 B조는 합창을 하기로 했다.

     우리 반 여자애들은 사실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1학년 A조가 로미코와 줄리엣타라는 여장남자와 남장여자의 로맨스를 그린 연극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피한 모양이다. 참고로 주연은 남장을 한 로사 님과 여장을 한 피클스 님...... 은 역시 무리였기 때문에 여장을 한 그레이 군이 맡았다고 한다. 그를 기억해?

     하지만 로미코와 줄리엣타라니 뭐냐고? 세계관 파괴된다고. 아니, 문화제에 타코야키나 초코바나나 포장마차가 나오는 시점에서는 세계관이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 왁도날드나 코케콜라가 말이 되냐고 여신에게 항의하고 싶을 정도다.

    "잠깐 남자들! 제대로 노래해!!"
    "맞아! 이대로는 [훌륭했다 상]을 받을 수 없는걸!"
    "쳇! 시끄러!"
    "어차피 [훌륭했다 상]은 A조의 것이니까 해봤자 소용없다고!"
    "자자, 모두들, 싸움은 그만하자? 모두가 즐겁게, 청춘의 추억을 만들기 위한 문화제잖아? 그런 문화제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거, 난 싫다고?"

     방과 후. 관악부가 있어서 음악실을 빌릴 수 없었던 우리 B조는 교실에 남아 합창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약속대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남학생들과 진지한 여학생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흔한 광경이잖아~ 라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반장인 반 군이 무사히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반 군이 그렇게 말한다면......"
    "하지만, 진짜 어떻게 하냐고? 이대로라면 정말 A조에게 우승 빼앗기고 끝나는 거 아니야?"
    "우리들은 딱히 1등을 하려고 노래하는 게 아니야. 물론 1등을 하면 좋겠지만, 그보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하나의 일을 해냈다는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1등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러니 모두들 최선을 다해 즐기자며 상큼한 미소로 반을 장악...... 아니, 설득하는 반 군. 역시 주인공답다. 음, 역시 주인공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이렇게 쉽게 해낼 수 있는 그는 정말 사람 다루는 재능이 있다. 뭐 이렇게 분석하니까 나는 안 되는 거지만, 하하하.

    "그래, 어차피 할 거면 어설프게 해서 중도에 끝내는 것보단, 비록 1등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뿌듯하게 끝내는 게 훨씬 더 즐거울 것 같기는 해."
    "미안해, 얘들아"
    "아니, 우리들이야말로 미안해. 왠지 A조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화가 났던 것 같아."
    "그래, 긴장한 채로 노래를 부르면 누구도, 아무것도 즐겁지 않은걸. 그런 목소리로 손님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럼 모두들, 다시 한번 처음부터 해보자! 이번엔 즐겁게, 미소를 잊지 말고!"

     왠지 모르게 청춘답게 정리되었을 즈음, 음악실에서 빌린 반주용 미니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연주자 메아리가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친다. 지휘자 반 군도 마찬가지로 웃고 있다. 아, 어쩐지 너희들 정말 청춘이네~. 아니 나도 베이스 파트로 참가하고 있으니 함께 청춘을 보내고 있는 쪽이지만.

     여름 말에 레벨 제한을 풀었으니 한시라도 빨리 전력 증강에 힘써야 하는 지금 문화제 따위에 참가할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이야말로 학교에 제대로 얼굴을 내밀라고 다들 말해서, 모두가 즐겁게 도장에서 절차탁마하고 있는 와중에 나만 제외되어서...... 아니, 그 마음은 이해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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