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2부 200화 Stand by(2)
    2023년 03월 14일 10시 19분 5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쪼그려 앉은 그가 양손으로 뺨의 살을 꼬집고는 쭉쭉 늘려 버렸지만, 이 정도야 뭐, 용서해 주자. 호위대원들의 전력 증강이 급선무였고, 버질이 신검의 진정한 힘을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니까.

    "아니, 지금 버질이라면 S급 모험가 정도는 될 수 있는 것 아니야? 승급 시험이라도 받아 보는 건 어때?"

    "농담도. 모처럼 최고의 형태로 모험가 생활을 반쯤 은퇴할 수 있게 됐는데, 더 이상 쓸데없는 질투와 시기심을 모을 수는 없습니다요."

     그리고 버질은 꽤 독한 드라이 칵테일을 꿀꺽꿀꺽 들이키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푹신한 배를 손끝으로 툭툭 건드려댄다. 이거 많이 취했구나.

    "탑 던전 최상층에서 전설의 무기를 찾아내고, 테스코 사막에서 살라만더들과 싸우고, 마왕성에 들어가서 봉인된 마왕까지 쓰러뜨려 버린다던가. 모험가 같은 걸 하는 것보다, 도련님과 함께 하는 게 훨씬 더 큰 모험입니다요!"

         ◆◇◆◇◆

    "이런 곳에 있었구나"

    "어."

     연회도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문득 연회장에 없는 크레슨을 찾던 나는 내 방의 창가에 쪼그려 앉아 달을 올려다보며 연회장에서 가져온 술을 조금씩 홀짝이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수고했어."

    "어."

     병은 하나. 잔은 두 개. 잔이 가득 채워진 채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잔을 발로 차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는 크레슨의 옆에 앉았다. 방금 전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있는 달은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에 둘러싸여 조용히 밤하늘에 떠 있었다.

    "왜 나였던 걸까?"

    "응?"

    "주인도 내 성격을 알고 있잖아? 먼저 적에게 달려가서, 이기든 지든 그냥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패는 녀석이라고."

    "글쎄, 왜 그럴까?"

     뒷일을 맡았다고 미래의 크레슨은 말했다. 모두가 먼저 죽었으니까, 우연히 가장 강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크레슨이 그 유지를 이어받은 것인지, 아니면 어떤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모두가 먼저 죽은 것일까. 그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이곳에 없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미래의 크레슨은 그만큼의 마음을 짊어지고 우리 곁으로 왔다는 것이다. 한쪽 팔을 잃고, 한쪽 눈을 잃고, 동료를 잃고, 마지막 결전까지 '너는 따라오지 말라'는 내 말까지 듣고서. 얼마나 많은 안타까움과 한을 가슴에 품고 혼자서 시간을 뛰어넘어 왔을까.

    "...... 힘이, 필요해. 더욱, 더 강한 힘이. 잡것들만 사냥해서 우쭐해하는 그런 멍청이는, 미래를, 행복이란 걸 얻지 못한다고."

     오른손으로 양탄자 위에 놓여있던 잔을 집어든 크레슨이, 피처럼 붉게 물든 그것을 단숨에 마셔버린다.

     힘이 필요한가 ......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하마터면 이 상황에서 분위기를 깨트리는 일이 벌어질 뻔했다.

    "만약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

    "말해봐."

     곧장, 크레슨이 내 가슴팍을 잡고 얼굴을 들이댄다. 아니, 아니지. 내가 크레슨의 얼굴 앞으로 끌려간 것이다.

    "......미안."

    "괜찮아. 초조하고, 고민되는 건 나도 같은 마음이니까."

     미래에서 온 크레슨은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다. 앞으로 모두가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힘과, 친절과,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 주는 신뢰가.

    "강해지자, 주인."

    "응"

     우리의 마음은, 하나였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