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장 11 여신의 환상(2)
    2023년 03월 14일 00시 13분 0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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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님. 교회는 무엇을 그렇게 서두르는 것입니까? 교회의 출병 요청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왕세자인 게펠트 왕의 아들이 물었다.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나이는 이미 60이 넘었고, 몸은 건장했지만 육체는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여신이 어쩌고 하는 거겠지."
    "변방의 몬스터 따위는 그냥 내버려 두면  텐데....... 이대로 가다가는 대륙의 모든 몬스터가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신은 결벽증인가 보지."

     농담인지 비꼬는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수행원들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교회가 '여신'의 이름을 내세워 각국에다 '몬스터를 멸망시켜야 한다'라고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수행원들이 작게 대화한다.

    "그 맹약 파기라는 것이 이런 영향을 끼칠 줄이야. 교회는 '여신'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뭐든지 '여신'의 탓으로 돌리면 되겠군."
    "그러나 [여신]이 교황 성하에 접신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소문은 소문일 것이다. 교황 성하를 포장하기 위해 교회가 어떻게든 생각해 낸 것이겠지."
    "그러나 토마슨 추기경 예하도 퇴임해서 그 자리는 공석. 모든 발령을 교황 성하께서 직접 결정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
    "어린아이라서, 결벽한 것은 아닐까?"
    "틀림없어."

     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귀족이며, 대국의 중심부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즉, 자신들 곁에는 위기가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아버님.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그것들을 처치하고 재료를 도매로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박멸시켜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모든 것을 박멸한다니,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리가 없다."
    "하지만 교회의 요청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아닙니까."
    "리그라 왕국에 맡긴 것은, 그 나라가 미개한 땅 '카니온'에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는 적당히 미개한 땅으로 쫓아내면 된다."
    "그러니까 아버님께서는 '카니온'에 몬스터를 가둬두고 필요할 때 들어가서 간간히 퇴치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치 대금업자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처럼."

     왕세자가 말하자. 수행원들 사이에서 "역시 폐하", "혜안이십니다"라는 추종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게펠트 왕은 훗, 하고 작게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게 맞다, 틀리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작은 회의실이었다. 문이 열리자 실내에는 빛의 마도구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고인 물이 흘러내리듯 어두운 복도를 환하게 비추었다.

     동시에 따뜻하게 데워진 온기도 흘러나왔다.

    "왕태자여, 네게 할 말이 있다."
    "예. ㅡㅡ모두들 수고했다."

     왕세자가 돌아서서 귀족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입을 모아 "뭐 이 정도야", "오늘도 국왕 폐하 곁에 있는 영광을 누렸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인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왕과 왕자님은 작은 회의실로 들어갔고, 문은 닫혔다.

     시종이 준비한 차를 마시며 몸을 따뜻하게 한 후, 게펠트 왕이 입을 열었다.

    "......나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겨울을 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버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나라는, 연방은 아직도 아버님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지금까지 수없이 오갔던 대화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여신'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드디어 나도 죽을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 아버님?"

     아버지의, 왕의, 연방의 맹주의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왕태자는 알아차렸다.

    "내가 너에게 남겨줄 수 있는 지혜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앞으로 10년...... 아니, 몇 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어갈 지침이 될 것이니. 명심하거라."

     왕태자는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유언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침을 꿀꺽 삼킨 그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여신]이라는 녀석은 아마도 천부주옥을 만들어낸 장본인일 것이다."
    "앗, ......!"
    "절대로 거역하지 마라. 거역하면 이 나라 따위는 쉽게 망할 것이다. 그것은 맹약자로서 [세계결합]에 참석한 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여신]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건 들었습니다. 우리 직할령인 실비스 왕국의 율리 차기 여왕은 [여신] 신앙을 강요하고 있다 합니다. 크루반 성왕국은 선대 왕과 현 여왕이 [여신]에 대한 방침을 두고 충돌했으며, 귀족들도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갈라서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세계 결합]의 자리에 나도, 너도 참석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답답하군."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당장 해야 할 일은, 토마슨 전 추기경과 연락을 취하는 게다."
    "퇴임한 예하를요?"
    "죽여도 절대 안 죽을 그 늙은 너구리가 순순히 퇴임할 리가 없지. 더군다나 이토록 혼란스러운 교회를 방치할 리가 없을 터."

     왕태자는 놀랐다.

     사람을 잘 칭찬하지 않는 게펠트 왕이, 토마슨 추기경을 평가했는데, 말로만 들으면 바보처럼 들리지만 왕세자 입장에서는 '극찬'에 가까운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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