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뇨, 아무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방으로 돌아가주세요."
"아무 일도 없는데 왜 돌아가야 하나요?"
"그것은 ......"
말을 멈춘 메이드에게서는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샤는 계속 나아갔다. "아," 메이드가 작게 소리쳤지만, 그뿐이었다.
아샤는 복도를 세 번 꺾었다. 그 끝은 현관 홀이다. 지금 있는 곳은 2층이라서 현관을 내려다볼 수 있다 - 여기까지 오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저택이 왁자지껄하다. 확실하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샤는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가는데, 시크릿 서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나스타샤 전하를 만날 수는 없습니다"
"아니, 폐하께서 허락하셨다고."
말하는 사람은 마토베이인 것 같다. 아샤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자신을 만나는데 마토베이라면 허락도 없고, 폴리나가 왜 막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ㅡㅡ가죠, 마토베이 씨. 여기서 따지고 있으면 안 되고, 국왕 폐하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ㅡㅡ두려워하지 말아요, 괜찮아요.
그날 밤, 자신의 손을 잡고서 '목소리'를 되찾아 주었다.
ㅡㅡ아샤!
지금 생각해도 너무 허무맹랑한 부탁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에게 그렇게 불러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레이지는 당황하면서도 그렇게 불러주었다.
ㅡㅡ아무리 긴 여정이라도 모든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저는 확실히 걸어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레이지에 비해 나는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냐며 스스로에게 실망할 뻔했을 때,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다크엘프들을 이끄는 것, 왕족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왕족이 되지 못한 나에게는 짐으로만 느껴졌던 그 일도 레이지의 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 걸음씩, 앞으로.
그러고 보면 하이엘프 왕족의 '의무'도 '한 걸음'이 아닐까.
레이지의 말처럼, 자신도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느새 뛰쳐나가고 있었다.
현관 복도에 다다르자, 아샤는 난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소리를 알아차렸는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크릿 서비스, 메이드, 집사, 그리고 형제들.
하지만 아샤의 눈에 비친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좋았다.
"레이지 씨 ......!"
그 사람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 나는 내 '한 걸음'을 내딛을 각오를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얼굴을 보고 나니, 그 각오가 모래알처럼 부서져 버렸다.
"어째서 ...... 레이지 씨 ......"
해야 할 말은 많은데, 생각이 목구멍에 걸려 대신 눈물이 흘러나온다.
"아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을 텐데, 레이지가 계단을 뛰어올라 이미 자기 앞에 있었다. 시크릿 서비스들이 놀란 표정을 지을 정도로.
"당신이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
웃는 레이지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와버렸습니다."
아샤는 레이지의 가슴에 뛰어들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불덩어리가 튀어나와 엘프들을 놀라게 할 것이 분명하지만, 더 이상 자신을 멈출 수 없었다. 분명 레이지가 곤란한 표정으로 [바람 마법]을 써서 불을 끄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친절함도,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그 따뜻함도, 결국 레이지의 모든 것이........
(...... 정말 좋아해요 ...... 진심으로, 오직 당신만을)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도, 마음을 숨길 수도 없다ㅡㅡ아샤는 그렇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