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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질문 한 마디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얼어붙은 실내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다.
창백한 안색으로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미모를 뽐내는 왕녀.
굳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는 눈을 감으며 망설이는 오니.
시선을 두리번거리며 혼란스러워하는 작은 하녀.
마왕의 힘이 다시 한번 드러날까 봐 떨고 있는 마수.
각자 나름대로 적절한 말과 행동을 고민한다.
"............"
두터운 골동품 책상에 왼쪽 팔꿈치를 대고는 편지를 편하게 읽고 있는 크로노.
다 읽었는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펜촉에 잉크를 묻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 뭔가 생각나는 점이 있으면 말해봐."
압박감을 주기에는 너무도 완벽한 간격을 두고, 마왕이 다시 말을 건넸다.
이제는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흐른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막히고 목이 메어진다.
내 것인지, 다른 사람의 것인지, 그 감각조차도 모호하다.
좌석 배치에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아스라 등에게 있어서 거짓말이 아니다.
"아스라가 아니어도 괜찮아. 이왕이니 혹시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이 기회에 다 말해봐. 고려의 여지가 있을 것 같으면 생각해 볼 테니."
하지만 무기질하게 느껴지는 마왕의 목소리에, 누구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저주라도 걸린 듯 굳어버린 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하나 나오지 않는다.
"............"
기괴한 중압감에 겁에 질린 부하들을 제쳐두고서, 묵묵히 편지를 완성해 나간다.
마지막 중얼거림 이후 다시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거슬릴 정도로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의 맥박과, 펜이 달리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
".................. 어? 독백이라고 생각했어?"
"앗....... ......"
가장 두려워하던 검은 눈빛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아니요 ...... 그런 일은 ....... 죄송합니다 ......"
"............"
문득 고개를 든 크로노의 말에, 모두 짜 맞춘 것처럼 일제히 몸이 튀어 오르고 말았다.
"...... 음, 조금 걱정이 되니까 대답을 하도록. ...... 하지만 뭔가로 다투지 않았어? 분명 뭔가 다툼 같은 게 있었던 거 아냐?"
시선을 돌려 편지를 봉투에 넣고는, 셀레스티아가 앉아 있는 소파로 향한다.
"말해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볼게."
느긋하게 앉은 크로노는, 앉아서 노려보는 왕이 된다.
그저 크고 비싼 소파가, 왕좌로 변해버렸다.
"저기 ............ 말씀드리려고는 생각했지만, 브렌 군의 일로 인해 보고가 늦어졌어요."
아스라에 대한 혐오감은 건드리지 않고 요점만을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 따위는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자리에서 아스라가 크로노에게 처형당하면 내일의 전투에서 어느 정도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귀결되는 것은 크로노의 명령을 완수하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
"브렌 군? 흠, 들어볼까?"
아스라의 눈빛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주인에게 보고할 의무를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