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7부 164화 일방적인 선행(2)
    2023년 02월 26일 09시 48분 5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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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존재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미노타우로스가 일어서려 하지만, 반군 혹은 피클스 왕자에게 힘줄을 잘린 것 같은 한쪽 다리로는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위협적인 소리를 지르려는 듯이 분노의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입 안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보인다.

     아, 기분 나빠. 나는 어둠의 마법에 의한 세뇌를 해제해 주었다. 순간, 난동을 부리려던 미노타우로스는 자아를 되찾자마자 갑자기 온몸이 엉망진창이 된 것을 깨닫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소리 없는 신음소리만 내었고, 필사적으로 땅을 짚으며 나에게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어 다녔다.

     마물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잔인하다. 이 괴물이 왜 이 괴물의 눈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일회용처럼 이용당하고 죽어가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삶을 망가뜨리고, 상처받고 쇠약해져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그랜드 미노타우로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른 세계선으로 날아가 버린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추방되기 직전에 원래의 호크 자리에 서 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사형을 당하거나 처형당하기 직전의 상황에 처한 호크로 대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 고문을 당하고, 린치를 당하고, 상처를 입고,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갑자기 손가락이 잘리고 이빨이 부러지는 상황.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

     "도련님? 됩니다, 가까이 가면 위험합니다."

     "괜찮아. 아마 반격할 힘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거야."

     나는 힘없이 쓰러져 생명의 등불이 꺼지기 직전의 그랜드 미노타우로스 옆에 무릎을 꿇고, 벌크급 보디빌더 같은 크레슨보다도 더 근육질인 그 거구의 표면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죽어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처로운 한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괴물의 모습에 동정심이 생긴 것이다.

     "그, 우!"

     그래서 이건 내 고집이다. 회복 마법을 걸자 다리와 온몸의 상처가 막히고, 탄화된 입 안이 재생된다. 증발되어 버렸는지 안구가 남아있지 않아 오른쪽 눈만 치료할 수 없었지만, 그 외의 상처는 아물었고, 기분 좋다는 듯 남은 왼쪽 눈을 감고 있던 그랜드 미노타우로스는 이내 의식을 잃었다.

     죽지 않았다. 기절했을 뿐이다. 알고 있다. 마물을 치료해 주었다고 해서 좋은 일 따위는 없다. 이 녀석은 이후에도 이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인간을 공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은 수컷인 것 같으니 나중에 미소녀가 되어서 보답하러 오지도 않을 것 같고.

     사람과 괴물은 서로 다툰다. 하지만 그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족은 살기 위해 사람을 공격한다. 사람도 살기 위해 마족에 대항한다. 거기에 있는 것은 순수한 생존경쟁이며, 이렇게 이용만 하고 마음대로 이용해서 죽게 할 권리 따위는 인간 쪽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도련님, 세뇌 마법을 건 마술사의 소재가 파악되었습니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 들을게. 사라졌다는 걸 들키기 전에 캠프장으로 돌아가자."

     "예."

     잘 있으라면서, 나는 편안한 얼굴로 잠든 그랜드 미노타우로스의 몸에서 손을 떼었고, 손가락에 엉켜 있던 갈색 털을 털어내며 빅투르유호의 선내로 돌아갔다. 인간은 어리석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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