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2부 118화 가져야할 것은 유능한 메이드
    2023년 02월 04일 11시 38분 0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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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콧에 관한 일련의 조사가 끝났습니다."

     "수고했어 로리에. 역시 일이 빠르네. 참 잘했어요와 함께 임시 보너스도 줄게."

     "송구스럽습니다."

     왕족 직속의 첩보부대 [언더3]에서 은퇴한 지 수년이 지났다지만, 실력이 녹슬지 않도록 이런저런 일을 시킨 덕분에 지금도 실력 좋은 메이드의 뒷면에서 암살자 및 첩보원으로서의 면목을 드러낸 로리에의 조사에 따르면.

     

     "후련할 정도로 빙고네. 이 정도로 뻔하면 오히려 뭔가 덫을 놓지 않았나 의심해버릴 수준이라고."

     "일부러 사기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을 고려해 조사는 면밀히 했습니다만, 수상한 개입이나 공작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허술한 구성의 범죄조직이었다고 생각되네요."

     브랜스턴 왕국 내에서 활동하는 도적당 [붉은 전갈]. 그 리더인 오렌지 머리의 미남 도적청년과 같이 여관에 들어가 만났다고 하는 아프리콧은, 단지 밀담을 나누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한번 즐겼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걸 진지한 얼굴로 천장 위에서 훔쳐보았다는 로리에의 대단함도 놀랐지만, 나의 메이드라면 그 정도의 담력은 오히려 칭찬할만하다.

     

     "그야말로 단장의 여자라는 분위기였네요. 평소의 청초한 연기는 어디로 갔는지."

     "아~ 뭐, 그쪽은 자세히 말아지 않아도 돼. 목표는 골드 저택에 잠입하는 거라 봐도 될까?"

     "네. DoH의 세계적 대유행에 의해, 일약 유명세를 떨친 호크 도련님을 유괴하려는 움직임은 최근 1년 동안 급속히 늘어났습니다. 붉은 전갈 녀석들도 아마 그런 속셈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련님 혹은 가족을 인질로 잡으려고요. 골드 상회의 봄 신입사원 중에도 한 마리 쥐새끼가 끼어있는 모양이던데요."

     "오, 그쪽도? 고마워 로리에. 그리고 특별 보너스다. 네가 원하던 그 최상급 찻잎을 바스코다가마 왕국에서 들여오기를 약속할게."
     

     "감사합니다."

     자, 어떻게 할까. 원하지 않는 예상일수록 적중하는 것이 이 세상. 사실만을 버질에게 말하면 그걸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연애문제의 어려움이다. 속았다고 화내기만 하면 그나마 낫지만, 너무 슬픈 나머지 낙담하거나 [내 사랑으로 그녀를 갱생시켜 주겠습니다요! 진실의 사랑으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습니다요!] 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원만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섣불리 숨기거나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버질 님께 직접 모든 것을 털어놓은 뒤 그 자신의 맡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성실하지 않을까요."

     "그건 알아~ 하지만 모처럼 애인이 생겨서 결혼한다고 기뻐하던 버질한테 냉혹한 현실을 알려주는 것도 왠지 기분이 내키지 않아서..."

     버질은 좋은 녀석이다. 그래서 좋은 녀석으로 끝나고 말아 결혼하고 싶음에도 못한채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데, 결혼사기꾼 정도가 아닌 도적단의 잠복&알선역이라니, 현실은 비정하다.

     

     "그런... 거짓말!! 이건 거짓말입니다요!! 도련님은 거짓말쟁이!! 아무리 여자가 싫다고 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날조하면서까지 제 결혼을... 망치려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요 10년 동안 함께 지내온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분노에 차서 갈기갈기 찢은 로리에의 조사보고서를 내던지면서도, 분노와 슬픔보다도 모험가로서 수십 년을 살아온 그의 판단력이, 그의 주먹에서 힘이 빠지게 한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습죠. 저 같은 대머리 아저씨한테 처음부터 마음이 있다는 것처럼 접근하다뇨. 14살 소녀가 46살 아저씨한테 말입니다요..."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버질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고향에 가족이 있고 송금한다니, 아아, 자주 있는 꽃뱀의 수법이구나, 하고 눈치채고는 있었습죠.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습니다요. 제가 돈을 내놓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유도하는 말투를 보면, 수상쩍은 면이 보이긴 했습죠. 하지만 저도 인생에 한번 정도는, 꿈을 꾸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꽉 막히기 시작했기 때문에, 로리에한테 눈짓해서 방을 나가게 했다. 의도를 헤아려준 그녀는 말없이 인사하고서 퇴실했다.

     

     "머리도 나빠, 힘도 없어, 모험가로서도 결국 A급으로는 올라가지 못하고 만년 B급. 이런 저따위보다 좋은 남자는 세상천지에 가득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요. 하지만 돈을 위해서 왔다 해도 좋았습죠. 유산을 노렸다 해도 상관없었구요. 속여준다면, 제가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 속여줄 수 있다면, 제 유산 정도는 줘도 좋다고 말입죠."

     설령 연기였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그 연기를 관철해 줬다면 그것은 속는 측이 보기에 진짜가 된다. 버질은 그것이 가짜라고 알고 있어도 원했던 것이다. 돈만 갖고 튄다면 몰라도, 자기가 죽을 때까지 곁에 있으면서 웃어준다면, 죽은 뒤 그 돈으로 다른 남자한테 가도 상관없다면서.

     

     "버질..."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 다가가서 그의 곁에 앉아 달래주려고 하자 버질은 내 팔을 움켜쥐었다. 때릴 생각인가 싶었더니, 그는 그대로 날 끌어안으며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믿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로리에가 촬영한 아프리콧 본인과 도적단의 단장의 야스 사진까지 보아버렸으니 믿지 않을 수 없다.

     

     도적단, 붉은 전갈. 그 단장인 고양이 귀와 꼬리를 가진 와일드한 미남의 갈색 반수인, 독전갈의 안타레스. 예전에 크레슨이 정벌한 여해적의 3배나 되는 현상금이 걸린 거물이다.

     

     "결혼, 하고 싶었다아!! 부인이 있고, 자식이 있고, 그런, 행복한 가족을 원했다아!"

     

     

     "아직 포기하기에는 빨라. 이번에는 잘 안되었을뿐이고, 인생은 아직 끝이 아냐. 40대의 결혼도 자주 있는 일인걸."

     "흑흑...! 여자 따위, 여자 따위!!"

     울면서 떠는 버질의 등에 손을 돌려서, 어린애를 달래는 것처럼 쓸어준다. 그러자 한층 더 크게 흐느끼며 내 몸을 부둥켜안는 그 팔에 힘을 더한다.

     

     "...내가 말할 주제는 아니지만 말이야. 지금은 그냥 열심히 울고 울고 울어. 그리고 다음에는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으면 돼. 괜찮아, 버질은 연봉 금화 1천...까지는 안 가도, 5백은 넘는 남자잖아. 돈을 노리는 여자라도 좋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중에는 어쩌면 버질 자신을 좋아해 주는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만남이라는 것은 언제나 갑작스럽고, 사랑이라는 것은 이론이 아닌 것이다. 나쁜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좋은 의미에서도 그렇다.

     

     "뭣하면 내가 맞선을 주선해 줄까. 그러니까 그, 힘내. 버질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정말 슬퍼."

     "!! 도련니임!!"

     

     사나이의 약속이다. 이 사나이 눈물도, 원통함도 둘만의 비밀로 해두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맹세한다. 여혐남과 물소남의, 별난 우정의 비밀.

     

     자, 제멋대로의 욕망으로 나의 가족을 노리고 호위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도적단에는, 제대로 보복을 해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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