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장 57
    2023년 02월 01일 19시 17분 2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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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경백이 큰 소리로 외치자, 무장병들은 쓰러진 동료를 일으키고서, 아니면 기절에서 깨운 다음 물러났다.

     

     "레이지!"

     그대까지 지켜보고 있던 아가씨가 달려와서는 내게 안겨들었다.

     

     "레이지, 무사해? 나, 레이지가 이길 것은 알았지만, 역시 무서워서......"
     "말한 대로잖아요. 전력을 다하면 질 일은 없다고요ㅡㅡ뭐, 돌바닥을 부숴버렸으니 그것은 고칠 필요가 있겠지만요."

     아가씨가 떨고 있는 것을 느끼고, 나는 등을 쓸어주었다ㅡㅡ하지만 변경백에 대한 경계도 잊지 않았다.

     

     "큭큭큭. 그 눈은 그만둬라. 내가 싸우고 싶어지잖아."
     "......제가 가는 곳을 막아서겠다면, 그쪽이 원하지 않아도 제거할 건데요?"
     "정말 참을 수 없구만! 조정자와 싸우는 모습을 볼 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끝을 모를 실력이야!"

     변경백은 말에서 내려오더니, 배틀액스를 지면에 두고서 이쪽으로 걸어왔다.

     

     "......미안했다. 에베뉴 가문에서 쓸데없는 짓을 해버렸구나. 이거, 네 대신에 내가 싸울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구만."
     "당신이? 무슨 뜻이죠?"
     "정식으로 성왕의 사과를 전하러 왔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요 없어요. 이제 저는 성왕도를, 쿠르반 성왕국을 벗어날 거라서요."
     ".......그랬었나."

     

     변경백은 굳은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이 나라는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조정자와 싸우고 수많은 목숨을 구한 너를 이렇게 대하다니."
     "아뇨, 나라의 일은 관계없어요. 제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을뿐이니까요. ㅡㅡ가요, 아가씨."
     "......그래."

     적이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 나는 아가씨의 손을 잡고 변경백의 곁을 지나가려 했다.

     

     "잠깐만. 너, 설마ㅡㅡ에바 아가씨를 데려갈 셈이냐?"
     "......그렇다면요? 그 흉악한 무기를 휘두르며 제 앞을 막아설 건가요?"
     "어이어이, 가시 돋친 것도 정도가 있지. 쓸데없는 시비는 걸지 마. 나는 쉬리즈 백작가에 감정은 없다. 단순한 확인이라고."
     "그.....랬나요."

     내 안에서, 아직 싸움의 흥분이 식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진정해야 해ㅡㅡ이래선 정말 미친 개다.

     

     "저는 레이지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답니다. 평안하세요, 변경백님."

     아가씨가 귀족 영애답게 스커트의 옷가락을 붙잡고 인사하자, 백작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꼬마......아니, 레이지."

     변경백은 허리의 벨트에 차고 있던 단검을 검집채로 뽑아서는 이쪽으로 던졌다. 서둘러 그것을 받아 든다.

     30cm 정도의 검집에는 무지개색의 조개를 넣은 장식이 있어서, 가격이 나가는 것 같다. 칼을 뽑자 서늘하고 하얀 도신이 나타난다.

     

     "......이것은, 천은이 들어있는 모양인데요."
     "거기까지 안다면 딱 좋아. 작별의 선물로, 주마."
     "이런 고가의 물건, 받을 수 없어요."
     "됐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남자가 무기도 없이 바깥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한심해서 말이야. 그리고 이건 네가 받아야 할 돈이다."
     

     가죽 주머니가 날아와서 그걸 받자, 단단한 금화의 소리가 났다.

     이 사람은, 이 사람만은 수많은 귀족들 주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나를 대해줬다. 분명 내가 흑발흑안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ㅡㅡ성왕의 대신으로 온 이상은. 그런데도 이렇게 보내주는 거니까, 받지 않으면 실례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것도 연기이며 날 속이려고 하는 거라면......? 만일 그렇다면 이후의 인생에서는 두 번 다시 귀족을 믿을 수 없겠지......

     

     "잘 있어라. 그리고 내킨다면 우리 영지에 놀러 와. 그 초대는 내가 죽을 때까지 유효하니까. 와하하하하."

     호쾌하게 웃는 변경백에게 인사하고서, 우리들은 걸어갔다. 술렁거리던 쉬리즈 가문의 기사들이 쫓아오려고 했지만, 그것은 변경백이 말려줬다. "사나이의 여행에 물을 끼얹지 마라." 면서. 사나이답다...... 외모만 버서커가 아니면 존경했을 텐데.

     점점 쉬리즈 백작가에서 멀어진다.

     나는 아가씨와 손을 잡은 채, [제2성구]를 걸어갔다.

     마도 램프의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지만, 통행자는 없다. 이곳은 이 나라에서도 최상류층 사람들만 사는 곳이니까.

     생각해 보면, 아가씨는 이 거리를 마차 이외로 걷는 일이 있었을까? 아, 아니, 있었다. 나와 함께 평민의 마을을 보러 갈 때였지.

     

     "......조용하네."
     "예, 한밤중이니까요......"

     집집마다 조명이 꺼져있고, 사람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나와 아가씨만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레이지는 어디서 태어났어?"

     아가씨가 갑자기 그런 의문을 말해왔다.

     

     "......시골 마을이요. 커다란 강이 흐르고, 그 주위로 논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매일 논가를 지나 학교에 다녔었구요."

     이상하게도 내 대답은 내 일본에서의 기억이었다.

     

     "논? 학교?"
     "논은 특정한 작물을 만드는 밭을 말해요. 학교는...... 이 나라에는 평민을 위한 취업훈련학교가 있지만, 제가 다녔던 곳은 이반교양을 배우는 곳이었죠."
     "레이지는 귀족가 출신이었어?"
     "후후."

     무심코 웃고 말았다. 지방도시의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귀족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 웃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귀족은 아니고요.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내기는 나쁘지 않았었죠."

     나는 광산에서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지만,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향수병 같은 것에 걸린 적은 없었다. 그것은 내가 전생에서 제대로 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이쪽 세계에서 살아온 기간도 길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왠지 기억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ㅡㅡ일본에서의 삶이 괜히 그리워져서.

     그 아무것도 없었던 마을을 아가씨와 함께 걷고 싶다고 생각한다.

     

     "레이지, 그럼ㅡㅡ"

     아가씨는 그 후로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이 정도로 사생활을 파헤쳐진 적은 처음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음식, 읽어서 재밌었던 책. 인상에 남은 사람......

     하지만, 그런 시간에도 끝은 오는 법이다.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제2성구]와 [제3성구]를 나누는 [3의 벽]이다. 커다란 마도 램프가 내걸려있고,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병사가 있다.

     이런 밤중에 무슨 일인가 싶어 병사가 다가왔길래, 나는 백작가의 문장을 내밀어 물러나게 했다. 이미 백작가 사람이 아닌 나지만, 백작이 돌려내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니 뭐 상관없을 거다.

     늦은 시간이기 때문에 [3의 벽]의 문은 닫혀있었지만, 우리가 나간다고 하여 일부러 열어주었다. 문을 열자 [제3성구]의 어둠이 펼쳐지면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아가씨."

     나는 말했다.

     

     "여기서...... 작별입니다."

     아가씨는 깜짝 놀라 나를 올려다보았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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