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9부 92화 돼지도 칭찬하면 하늘을 난다
    2023년 01월 23일 02시 49분 5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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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남자는 신전에 못 들어가?"

     "그래. 기본적으로 신전이 있는 영봉 베리즈는 남자 금지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산기슭의 신전 입구와, 그 옆에 있는 여신교의 미술관까지다."

     이 세계와 인간과 11가지 속성은 전부 여신이 만들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보다 우대받는다. 여신에게 속된 성욕을 품는 남자라는 생물은 더러움의 근원이다. 더러움을 성스러운 영봉에 가져와서는 안 된다. 그런 여존남비사상이 여신교의 근간에는 있다고 한다.

     

     물론 대놓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여신님의 안식의 땅에 남자가 들어오는 것은 신사적인 행동이 아니다]라고 하는 명목으로 그럴듯하게 정당화하는 모양이지만.

     

     "그럼, 일단 그 미술관이라는 곳에 가보자."

     "알겠다."

     "미술관이라~ 그림이나 항아리 같은 걸 봐서 뭐가 재밌어?"

     "그럼 크레슨은 여기 있을래?"

     

     "아니, 가기는 하겠지만. 할 일도 없이 데굴거리는 건 열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런데 어린이인 나나 올리브는 괜찮지만, 남달리 거구인 크레슨은 맞는 사이즈의 로브가 없었는지 가장 큰 사이즈를 조달해 왔다는 올리브의 변명도 무색해질 정도로 팔다리가 삐져나왔다.

     

     로브 자락이 무릎 정도까지만 왔으니까. 비오는 날에 우비를 입고 등교하는 소학생 같다. 앞이 닫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걸치고 있는 상태라서, 가운을 걸친 시합 전의 복서 같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멋있다는 느낌도 든다. 기장이 부족하지만.

     

     그렇게 해서 찾아왔습니다 미술관. 입장료를 내고 여신교와 여신과 이 세계를 주제로 한 그림과 조각 등을 구경한다. 참고로 무기와 미도구의 반입은 금지되어 있어서, 입장할 때 퇴장하기 전까지 전부 몰수당하고 말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람하러 온 관광객 같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있으며, 통로를 따라 걸어가자 몇 분만에 질리고 말았다.

     

     그래, 크레슨한테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닐 정도로, 나 역시 미술과 ㄴ같은 것에 흥미가 없는 남자였어. 전생에서도 어머니가 무료 티켓을 받아왔다는 이유로 도내의 미술관에 갔었지만, 5분 만에 질려서 계속 입구의 카페에서 스마트폰만 만졌는걸.

     

     성서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 여신과 여신의 기적을 소재로 한 그림, 여신을 소재로 한 조각 등을 해설을 적당히 읽으며 걸어가고 있자, 이윽고 우리들은 한층 더 거대한 그림의 앞에 도착했다.

     

     천장과 창문을 채색한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비치는 무지개색 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빛나는 그것은, 천장까지 닿을 듯한 높이와 기나긴 폭을 자랑하는 거대한 종교화였다. 제목은 [원초의 성전].

     

     푸른 하늘과 붉은 땅의 사이에서 자리잡은 사악한 황금의 사룡을 백은의 검을 손에 든 여신이 내쫓고 있는 싸움의 구도인데, 실제로 여신을 아는 입장에서 보면 너무 미화되어 무심코 웃음이 나오고 만다.

     

     하지만 스승님, 사악하게 그려졌구나~ 여신교 최대의 적으로 인정되는 마물이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나는 이런 사악한 사룡 같은 그림은 싫지 않아. 카드 게임의 레어 카드 같아서 엄청 멋있다고. 공격력 3000 정도는 될 것 같아.

     

     등의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그림을 올려다보고 있자, 문득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하늘색의 장발을 한 미녀 누나다. 대륙종단열차 아즈 서니 호의 오락실에 있던 그 피아노를 쳤던 여자다. 그때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흰 로브를 입고 있다. 나잇대는 30대 전후일까. 하지만 이 여자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녀석은 없을 정도의 미모다.

     

     조금 향수 냄새가 심한 것이 단점일지도. 왠지 올리브 쪽을 흘끗거리고 있는 모양인데, 그 올리브는 향수때문에 조금 괴로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우연이네요. 당신도 성지순례하러 왔나요? 아니면 단순한 관광?"

     

     "관광이요."

     그렇다는 말은, 그녀는 여신교도인 걸까. 온화해보이는 미소와 청초해 보이는 분위기. 민낯인데도 충분히 미인인 그 얼굴은, 여신교가 제창하는 청빈함을 구현한 깨끗한 소녀를 구현화한 느낌이다. 마치 동정이 상상하는 청초한 누나의 의인화라는 느낌이 지나쳐서 오히려 수상하다.

     

     "저는 제라. 제라 니움."

     "포크 피카타입니다."

     "호크 골드 군. 당신을 봐서 부탁이 있어요."

     즉시 전투태세이 들어가는 두 사람을 손으로 제지하고서,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하늘색 눈과 시선이 마주친다.

     

     "여신교의 폭주를, 부디 멈춰주실 수 있나요?"


     하얀 제라니움의 꽃말은 [당신의 사랑을 믿을 수 없어]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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