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부 34화 그것은 알에서 새끼가 부화한 것처럼2022년 12월 26일 11시 18분 1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크레슨한테 꿀밤을 맞은 기세에, 들러붙었던 것이 떨어진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다시 한번 태어난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지금까지의 나는 자신을 정신연령이 22세이니 어른이다!라고 대단한 것처럼 생각해 왔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세계를 정말로 현시이라고 인식하여 살아가고 있는 걸까 묻는다면, 대답은 NO다.
그야 그렇잖아?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했더니, 마법이 있고 마물이 있고 수인이 존재하는 세계에 전생했으니까. 현실감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여기가 어떤 세계든, 눈앞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틀림없이 생명과 의사를 지닌 인간이며 프로그래밍된 캐릭터가 아닌 것이다.
실로 6년에 달하는 성대한 현실회피가 이제야 끝나고, 이제부터가 나의 진정한 제2의 인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런 후련한 기분이었다. 주인공이라던가 전생자라던가 웹소설계 주인공이라던가,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나다. 호크 골드라는 한 명의 인간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있지도 않은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나날은 졸업하자.
"안녕하세요, 오크우드 박사님, 교장선생님."
"오, 안녕하시오 호크 군! 왠지 오늘은 기분 좋아보이는 일이라도 있었나보구려?"
"홀홀홀, 후련한 얼굴 하고 있구먼. 고민거리는 해결되었나?"
"예, 덕분에요.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이제 괜찮아 보입니다.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홀홀홀. 조금 걱정이었지만, 이제 괜찮아 보이는구랴."
오랜만에 마리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오들거리던 기억만 남아있는 연약한 어린아이는 어느 사이엔가 밝은 미소의 9살이 되어있었다. 그런 마리와 친숙해진 하이비스커스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처음일지도 모른다. 감정이 없는 냉철한 암살자 캐릭터라고만 생각했던 메이드장 로리에는,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져 있어서 놀랐다.
이젠 금색 머리의 여동생이 아니다. 빨강 머리의 모험가도, 푸른 머리의 메이드장도 아니다. 기호화하여 기억하고 있던 그녀들 또한 한 명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당연한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정말 바보였구나.
"호크 군, 안녕."
"안녕하세요 호크 님. 오늘도 좋은 날씨네요."
"안녕하세요, 호크 님!"
"예,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기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왠지 어제까지와는 딴 사람인 것 같은데요?"
"예, 뭐. 정말 좋은 일이 있어서요."
피클스 님과 로사 님. 두 사람이 전해주는 우정을, 이제야 깨달았다. 단지 나를 이용할뿐이라고만 생각했던 두 사람의 얼굴은, 열받을 정도로 미남미녀였다.
서니의 얼굴에 주근깨가 있다는 사실을, 5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알았다. 과연, 듣고 보니 로사 님에 비해 확실히 수수한 이목구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얼굴도 몸매도 새끼돼지인 내가 타인의 외모를 뭐라 말할 자격은 없다.
"안녕하세요, 전하."
"오, 안녕 호크 군! 네가 먼저 말을 걸다니 처음이네!"
딱히 존재감 차단의 마법이 걸린 손목시계를 벗지는 않았다. 대학의 교실에 들어와도 여전히 내 존재는 공기 그대로다. 다만 수많은 측근들한테 둘러싸여서 아침부터 햄버거 가게의 점원처럼 상쾌한 미소를 짓고 있던 루타바가 님만은, 내 변화를 눈치챘다.
들러붙었던 것이 떨어졌음에도 하는 일은 변함없다. 대학에 가서 무속성마법의 연구를 하고 휴일에는 반 군의 집에도 제대로 고개를 내밀게 되었다. 조연인 나와는 다르게 세상이 선택하고 사랑하는 주인공이라는 꼬리표를 떼고서 접한 그는, 과연, 누구나 좋아할 법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나서 아주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의 일은 소중히 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자신을 소중히 했던 일도 사랑했던 일도 없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해준 것은 피붙이라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혈연관계라는 전제조건을 잃어버리면 세상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소중히 하지 않으며 싫어하는 자들만 가득할 거라 생각했던 자신을, 어떻게 사랑했을까. 소중히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나를 상처 입히면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안 한다.
"도련님, 데리러 왔습니다요."
"응, 고마워 버질."
"아뇨. 이제야 원래의 도련님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안심했습니다요."
"걱정을 끼쳤구나, 미안. 그리고......고마워."
"뭘 그런 걸 갖고. 월반을 할 정도의 천재라며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도련님은 아직 어린애입니다요. 어린애라는 것은, 어른한테 걱정을 끼쳐도 아무 이상하지 않은 법입죠."
"하하, 그 말대로일지도 모르겠네. 나는 그야말로 꼬마였어, 응."
오늘 마중 나온 사람은 버질이다. 둘이서 마차에 타서는, 지나가는 창밖의 노을에 물든 아름다운 브랜스턴 왕국의 시가지를 바라본다.
이 세계에 전생해서, 다행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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