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3부 28화 이름과 수염만으로 수상하다고 판단되는 대현자
    2022년 12월 24일 18시 14분 2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곤란하게 되었네요."

     

     "예, 곤란한 일이 되었군요."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초등부에 입학한 뒤로 곧 1년. 공작영애 로사 제로 님은 무적합자의 낙인이 찍히고 귀족의 신분을 박탈당한 오빠 반 군을 돕기 위해 차기공작으로서의 신분을 이용해 현 공작인 아버지의 눈을 속이면서 여러 가지로 암약하고 있다. 그를 위해 나도 협력하고 있는 것은 잘 아실 것이다.

     

     그런 그녀의 오라버님 구조활동의 일환으로서, 내가 제공한 [무적합자가 무적합인 이유]라는 제목의 리포트. 무적합자라고 제목을 지었지만, 실상은 그 절반 이상이 무속성마법에 대한 고찰이다. 어째서 반 군은 마법이 듣지 않는 특이체질인가라는 관점에서, 상당히 애매한 내용으로 엘레멘트와 속성마법의 대한 사견을 말하는 내용이지만 마법에 해박한 사람이 읽는 다면 곧장 그 기만을 눈치챌 것이다.

     

     "설마, 월반의 이야기가 나오다니. 어떻게 할까요?"

     "사양하면 되는 게 아닌지?"

     "하지만 오라버님을 인정시키게 할 절호의 기회라고요! 이 나라의 수석 연구시설인 학자길드의 초빙과, 왕립학교 대학부로의 월반. 이런 기회는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요?"

     겨우 평민 꼬마 따위가 그런 걸 발표해도 묵살되거나 웃고 넘길뿐이라서, 이 연구는 로사 님의 명의로 발표하고 피클스 왕자의 이름과 내 이름은 스페셜 땡스로서 논문의 말미에 실리게 되었다.

     

     그게 문제였다. 논문의 내용을 본 학자길드와 천재학자들이, [이 논문의 집필자를 부디 대학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 초빙하고 싶다!!] 라는 말을 꺼낸 것이다. 여기서 로사 님이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어버리면, 틀림없이 들통이 난다. 왜냐면 그 논문은 100% 내가 쓴 것. 그녀는 전체의 3할 정도만 이해하고 있다.

     

     "떳떳지 못한 월반을 해도, 거기서 사실이 들통난다면 이때다 싶어 불쾌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총공격을 감행하겠죠. 녀석들한테 일부러 구실을 줄 생각이십니까? 저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최악의 경우 무속성이라는 연구 자체가 원인으로 지목되어 이후로는 연구가 금지될지도 모르고 말야."

     "너무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수 없는 게 분하네요."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으려나.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하고서 월반의 이야기를 없었던 걸로 하는 게 제일 무난하다고 생각해."

     피클스 왕자도 그녀의 월반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는 모양이다.

     

     "초조한 나머지 무모한 수단에 손대었다가 그게 실패해버리면 본전도 못 찾습니다. 애초부터 당신의 계획은 여신교의 영향이 큰 이 나라에서 하기에는 너무나 무모한 것. 겨우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으니,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그래요. 당신들의 말씀대로네요. 정말 분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논문의 집필자가 호크 님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사양할 수밖에 없겠네요."

     "아니 아니, 그렇지도 않다네, 고민하는 청춘들이여."

     밀담에는 적당한, 기숙사 내에 있는 왕족 전용의 방. 도청과 엿보기 뿐만이 아닌, 전이마법으로 직접 실내에 침입하는 걸 무효화시키는 결계마법이 엄중히 쳐진 그 실내에 어느 사이엔가 흰 수염이 차밍(웃음)인 그야말로 마법사 같은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우리들은 놀랐다.

     

     "꺄악!? 교장선생님!?"

     

     "대체 어디에서!? 그보다, 방금 대화는!"

     "홀홀홀,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다네. 아무래도 곤란한 모양이로구먼?"

     

     마린 아쿠아. 이곳 왕립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는 노인이다. 학자길드의 명예회원과 마술길드의 명예회장도 겸임하고 있으며, 브랜스턴 왕국 궁정마술사단의 외부고문도 맡고 있는 위대한 마법사. 때때로 왕이 조언을 구하는 일도 있다는 대현자님이시다. 요약해서, 매우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

     

     "결계마법을 쳐놓았을 텐데, 어떻게 이 방에 오셨지요?"

     "한때 이 방에...... 아니 학교 전체에 방어결계마법을 친 자는 다름 아닌 이 나일세. 내 전용의 지름길 정도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말고. 아, 이거 다른 모두한테는 비밀인 게다?"

     그렇구나, 그래서 이 방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그에게 들통난다라. 고약한 성격의 할배다.

     

     "홀홀홀, 칭찬으로 듣도록 해야겠구나."

     "앗!"

     마음까지 읽는 건가, 이 할아버지!

     

     "호크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어둠이여! 내 마음과 기억을 가려라!"

     "아니, 웬만한 일이 아니면 학생의 기억과 마음속을 엿보지는 않는다네. 나도 그렇게까지 악취미는 아니니 말일세. 지금 것은 단순히, 네 표정이 너무나 알기 쉬웠을 뿐인 게야. 학생의 사생활을 지켜야지 않겠나."

     글쎄 과연 어떨까! 우리의 대화를 몰래 훔쳐 듣는 고약할 할아버지다. 마음속과 기억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은, 자칫하면 내 전생의 기억을 읽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기, 교장선생님! 저는, 그......"

     "자자, 모두 진정하게나. 나는 그대들을 벌하러 온 게 아닐세. 그리 겁먹지 않아도 되는 게야, 홀홀홀."

     

     젠장할! 진정해야 한다. 논문의 집필자가 나라는 사실이 발각됐다. 그리고 이렇게 일부러 방문했다는 것은, 분명 뭔가의 의도가 있음이 틀림없다.

     

     "호크 골드 군. 그대, 그녀를 대신해 월반하여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있는고?"

     "예?"

     

     것 봐라, 역시. 교장의 쓸데없이 긴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학자 길드의 사람들은 천재적이고도 재앙적 두뇌를 지닌 괴짜들이기 때문에,  그 논문에 대해서 자세히 의논할 수만 있다면 공작영애가 오든 평민이 오든 딱히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괜찮은가요? 무속성마법에 대한 연구라니, 왕가와 교회에 시비를 걸만한 행동인데도 교장인 당신이 그걸 지지하셔도."

     "홀홀홀, 나 또한 마법사이며 연구자일세. 종교적인 탄압에 의해 마법의 연구를 방해받는 것은 솔직히 탐탁지 않은 일이라네."

     그리고, 라며 교장은 쓸데없이 차밍한 윙크를 하면서 검지손가락으로 입술에 대었다.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이냐고 생각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네 자신에게도 결코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게야. 학자 길드의 상층부는 종교도 왕권도 엿먹으라고 말할 줄 아는, 연구에만 흥미 있는 우직한 녀석들의 모임이니까. [너 같은 꼬마]로서는 틀림없이 지내기 편할 게다."

     

     너 같은 꼬마라는 단어가 너무 의미심장해서 무서운데요.

     

     "엿먹으라니......."

     "아~ 크흠. 로사. 레이디가 그러한 말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앗!? 죄송하옵니다 피클스 님. 너무 놀라서, 그만......"

     "뭐, 마음은 이해해. 설마 교장선생님이 여기까지 쳐들어오실 줄은 나도 생각하지 못했거든. 왠지 대현자님이라는 이미지가 무너질 것 같아......"

     "홀홀홀. 세상은 항상 놀라움과 의외성에 가득 차있다네. 네 아버지도 그렇게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왕이 된 게야."

     손익만 생각해보면 결코 나쁘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솔직히 이제 와서 초등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못해먹겠다는 느낌도 있고, 무속성마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것도 제로 남매한테 기쁜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월반의 이야기를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Oh...... 뭔가 호크는, 아빠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어가네? 너무 똑똑해서 아빠 깜짝 놀랐다! 아니, 물론 대단한 일이니 기쁘단다?"

     

     내 학비를 내주고 있는 아버지한테도 얘기해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후승낙이 되어버려 죄송할 따름이지만, 불만은 공작가나 교장한테 말해줘.

     

     "아, 맞다! 그럼 월반 축하 파티를 성대하기 열어야겠구나! 아빠의 자랑스런 아들을 모~두에게 보여주마! 부히히 별 것도 아닌 자식을 자랑하는 바보 같은 귀족들의 분해하는 얼굴이 눈에 선하구만 부힛! 아 그래 호크, 대학진학의 선물은 뭐가 좋니? 아빠, 배든 비공정이든 보석이든 말이든 뭐~든 사줄게!"

     "파티는 그만두시죠. 너무 대대적으로 선전하면 교회에서 싫어하니까요. 자식자랑을 하고 싶으시다면, 어디까지나 수면하에서 은근슬쩍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압박해주시면 돼요."

     

     "우와 지독해! 역시! 이래야 아빠의 자식이지! 부~히히히히히히!"

     

     엄청나게 기분 좋아서 너털웃음을 짓는 아버지. 기뻐하셔서 다행입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