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부 25화 탁한 눈을 한 여혐의 금발 새끼 돼지(1)
    2022년 12월 23일 13시 04분 4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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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0번째의 속성, 무속성. 그리고 무속성마법의 적합자일지도 모르는 오라버님, 배너티 제로. 이렇게 되면 제로 공작가의 역사 자체가 수상쩍어지네요."

     

     "우연 치고는 너무 잘 들어맞는다는 느낌도 드니까."

     

     "잘 만들어진 우연과 기적을, 세간에서는 운명이라 부른답니다."

     

     "운명입니까."

     

     "그럼 이렇게 우리가 같은 해에 태어나서 학교에서 만난 것 또한, 운명이라 부를 수 있겠네?"

     "농담도. 세 분은 몰라도, 저는 운명에 선택될 그릇이 아니라구요."

     

     "정말, 호크 군 또 그렇게 자신을 나쁘게 얘기하네요."

     "사실을 객관시했을뿐입니다."

     

     피클스 블랜스턴은 이 나라의 제3왕자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예쁜 것과 추한 것, 사람과 물건을 많이 보며 자라왔다. 왕족으로 태어난 것, 세 번째의 남아로 태어난 것. 첩인 어머니가 제1부인인 왕비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도, 두 형과 원만하지 않다는 것도,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뒤섞여있는 것도, 그는 10살이 되어 이해했다.

     

     왕족, 귀족, 왕궁, 학교. 꽤 여러 부분에서 감시당하는 거북한 인생에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된다. 그래서 그럴까. 호크 골드라는 친구와의 만남은 편하고 기분 좋았다. 그는 남작가의 영애와 약혼을 했지만, 아직은 평민이며 상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고액의 기부금을 낸 것과, 뒤에서 손을 쓴 것. 그리고 장래 남작가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귀족 아이들이 모인 A반에 소속됨에 의해, 입학 초기에는 상당히 눈엣가시로 취급되고 말았다. 이른바 작위를 돈으로 산 비겁한 벼락부자. 전통 있는 왕립학교의 간판에 먹칠을 한 철면피.

     

     피클스도 골드 상회에 따르는 악평은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평민 따위한테 돈을 빌려야만 하고 고개도 숙여야만 한다는 굴욕을 뒤에서 험담하는 것으로 발산했을뿐이다. 그런 자들이 모였으니, 당연히 창끝은 사장의 아들인 호크 군에게로 모여진다.

     

     쓸데없는 중상모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나 아버지한테 응석부리고 총애받으며 자란 자식이 있다면 인격이 이상하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본인을 만났을 때, 정말 놀라게 되었다.

     

     [저기, 너희들 뭐 하고 있어?]

     

     돋보이지 낳고, 주장하지 않는 그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냉랭한 눈길로 주위를 깔보고 있었다. 그 싸늘한 눈길은 친숙한 면이 있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눈과 많이 비슷했다. 그래서 그럴까. 귀족 아이들한테 불려 나와 멍석말이를 당할뻔한 그를 도와준 것은.

     

     "저기 호크 군, 우리들 이제 친구지?"

     

     "일개 평민한테는 너무나도 황송한 말씀이옵니다, 전하."

     "진심으로는?"

     

     "지금도 성가신 입장에 잇는 저를 이 이상 성가신 일에 휘말리게 할 수 있는 불필요한 발언은 삼가주시면 매우 기쁠지온저."

     

     "아하하하하! 역시 난, 너 같은 친구가 있으면 기쁘겠어~"

     거리낌 없이 어깨의 힘을 빼고 진심을 말해버리는 진정한 친구. 측근과는 다른,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결코 아양 떨지 않는 귀중한 상대.

     

     "둘 다, 사이좋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금은 무속성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을래?"

     "그래, 그 일에 대해서 한 가지 생각한 일이 있는데요."

     "뭔가요?"

     "무가 있다란, 대체 어떤 상태일까요?"

     "무가, 있다?"

     "예.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속성일 텐데, 그 무가 반 님의 안에 있다는 것은 꽤나 철학적인 생각 아닐까요?"

     "듣고 보니, 확실히."

     

     "조금 기묘한 감각이네요."

     "속성마법의 자질을 연마할 경우, 체내에 담아둔 엘레멘트를 그 속성에 가까운 것과 어울리게 하는 일이 좋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이미 아신다고 생각합니다만."

     바람 속성이라면 바람을 쐬고 번개 속성이라면 번개 치는 날에 야외에서 명상을 한다는 식으로.

     

     "반 님은 자신에게 마법의 적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단련해서 마법 없이도 싸울 수 있는 강함을 원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엘레멘트를 없는 것, 의미 없는 것, 있지도 않은 것이라고 강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무속성마법의 적합자로서는 무엇보다 좋은 훈련이 된다?"

     "정말 참신한 발상이다...... 놀랐어."

     "어디까지나 단순한 가설이지만요. 도넛의 구멍은 도넛 없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바움쿠헨의 구멍도 마찬가지. 무를 없다고 취급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아무것도 없지만 있다는 것은 실로 처학적이며, 논리적으로 모순되었지요. 실로 흥미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키득거리면서, 차에 곁들이기 위해 로사가 지참해 온, 왕도에서 인기 있는 양과자점의 도넛을 손으로 집어서는 둘로 쪼개고는 한쪽을 먹는 호크.

     

     "이런 상태에서, 도넛의 구멍은 어떻게 되었지요? 절반이 되었다? 구멍이 아니게 된 이상, 구멍은 사라져 버렸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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