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부 24화 편리한 어둠의 마법은 항우울제 대신이 된다
    2022년 12월 23일 12시 09분 3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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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없이 마차에 타서는 저택으로 돌아간다. 크레슨도 올리브도 뭔가 말하고 싶은지 시선을 보내오고 있지만, 지금은 그들과 대화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했다.

     

     "오, 어서 옵쇼 도련님. 왠지 어두운 표정이라니, 무슨 일이요?"

     "다녀왔어 버질. 아무 일도 아냐. 로리에는 어디 있지?"

     "메이드 장이요? 분명 방금 주방 쪽에서 본 듯한."

     "그래? 고마워."

     "또 그 꼬마를 만나러 간 겁니까요?"

     "그래. 신경쓰여?"

     "뭐, 꽤 소질이 있는 아이라서 말입죠. 그런 올곧은 아이는 무심코 응원하고 싶어지는 법입니다요."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휴일에 개인적으로 만나러 가면 돼. 분명 기뻐하겠지."

     "......도련님? 왜 그러시죠? 왠지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뎁쇼."

     "아무것도 아냐."

     버질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서, 크레슨과 올리브한테는 자유롭게 있도록 말하고서 혼자 주방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복도에서 로리에와 만났다.

     

     "어서 오세요, 도련님."

     "그래, 다녀왔다 로리에. 네 정보는 도움이 되었다. 고맙다."

     "그렇사옵니까. 그거 정말 다행입니다."

     암살자처럼 발소리도 안 나고 일절 빈틈없이 메이드 업무를 하는 그녀한테, 시험사마 정보수집을 부탁해봤더니 놀랄 정도로 순순히 응해주었다. 공작가의 내정, 반 군의 주변 사정, 여신교에 대해서, 카메츠 고츠크 신부의 일까지. 그녀가 모아준 정보를 토대로 나는 로사 님의 계획을 실행한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정보를 쥐는 자가 승리를 거머쥔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그녀는 누구일까. 딱히 누구든 상관없지만, 언제 스커트 밑에서 권총이나 피아노줄이나 나이프나 폭탄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어 조마조마하게 된다.

     

     "도련님은 아무것도 여쭙지 않으시네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네가 메이드로서 우리 집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나도 주인으로서 네게 일을 맡길뿐이다."

     "......거기까지 아시면서도, 저를 내쫓지 않으시는 건가요?"
     

     "우수한 메이드장을 해임할 이유가 어디 있지? 그만두고 싶다면 그만두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마음껏 여기 있으면 돼."

     "......네. ......저녁식사 전에 뭔가 따스한 음료라도 가져다 그릴까요?"

     "?"

     아아.

     

     "나는 그렇게나 심한 얼굴인가?"

     "네. 주제넘는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나.

     

     "아니, 됐다. 그래, 방에다 가져다줘."

     "핫 밀크면 될까요?"

     "뭐든 상관없어. 그럼 잘 부탁한다."

     로리에와 헤어져서 내 방으로 향하려 하자, 자유롭게 지내도 된다고 전했을 크레슨과 올리브가 나타났다.

     

     "오우 주인, 장기를 계속하자고!"

     "미안하지만, 지쳐서 말이지. 다음에 하자. 정말 하고 싶다면 올리브나 버질한테 물어봐."

     "도련님, 대기 임무는."

     "오늘은 됐어. 둘 다 자유롭게 지내도 상관없어."

     "하지만,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은......"

     두 사람을 지나쳐 어두운 방에 혼자 들어간다. 조명을 켤까 고민했지만,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상의를 벗고 침대의 이불 위로 엎어진다.

     

     알고 있던 일이다. 나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 아니다. 로사 님은 반 군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피클스 왕자는 그런 남매를 위해, 그녀에게 협력하고 있다. 나는 그걸 위해 재주껏 부려 먹히고 있는 편리한 서브캐릭터에 불과하다. 반 군처럼 모두가 좋아하고 사랑해줄 만한 그릇이 아니다. 그것을 이 5년 동안 잊고 있었을뿐.

     

     전생에, 나는 이른바 치렘(치트+할렘)계 작품이 싫었다. 아무 매력도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노력도 수고도 안 하고 대단한 힘을 손에 넣어 미소녀들에 둘러싸여 기분 좋게 지내는 모습에는 기분 나쁜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세계전생자가 되어보니, 왠지 모르게 알겠다.

     

     그 녀석들은 주인공의 불안감을 털어주기 위해 그렇게 말했던 거라고.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당신이 제일이에요. 그런 대사를 일상 속에서 쓰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듣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믿을 수 없게 된다. 왜냐면, 사실은 모두 알고 있으니까. 나 따위가 그런 식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리가 없다고,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해하고 있으니까.

     

     갑자기 냉정해져서 제정신을 되찾고 몰입감이 사라지면 끝. 단번에 현실로 돌아가버릴 것 같으니, 분명 히로인들은 한데 입을 모아 태도로 드러내며 주인공의 불안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듣기 좋은 꿈과 망상 속이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자신을 믿지 않는 남자들을 위해 알기 쉽게 안심하도록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당신이 좋아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어둠이여. 호크 골드의...... 카네다 야스타카의 이름으로 명한다."

     내가 여자보다도 더욱, 무엇보다도 가장 싫어하는 것. 그것은 분명, 자기 자신.

     

     "어둠이여, 어둠이여.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추한 열등감과 비굴한 컴플렉스와 울적하고 괴로운 마음을 전부, 전부 어둠 밑바닥으로 가라앉혀줘. 두 번 다시 보이지 않도록, 떠오르지 않도록, 싫어하는 것, 추한 것을 전부, 어둠의 밑바다게 가둬서...... 잠가버려."

     주문을 외운 순간, 여태까지 있던 가슴의 아픔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치 즉효성의 항우울제를 먹은 듯한 극적인 변모에, 내가 했지만 놀라고 만다.

     

     정말이지, 미소년이나 미남이 고뇌하는 모습은 볼만하겠지만, 뚱땡이가 고민한들 누가 좋아하겠냐고.

     

     "도련님. 로리에입니다."

     "그래, 들어와."

     "실례합니다."

     손에 핫밀크와 컵이 올려진 쟁반을 든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까지는 정말 심한 몰골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괜찮다. 마력의 힘으로 해결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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