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부 20화 남작영애를 놔두고 공작영애한테?
    2022년 12월 18일 17시 54분 1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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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윈도 부부가 될 예정이라서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왕립학교에는 내 약혼녀인 남작영애, 서니 골드버그도 입학해 있다. 거기다 같은 A반이다. 그녀도 귀족이니까.

     

     다만, 학급 내에서의 그녀의 처지는 꽤 안 좋다. 애초에 남작가의 영애 자체가 귀족만 모인 A반에서는 깔개 같은 것이고, 무엇보다 그녀는 돈에 쪼들려서 작위를 골드 상회에 팔았다는 나쁜 소문이 흐르는 골드버그 가문 사람이다.

     

     "왜 그러지? 심한 몰골인데."

     "골드 님!"

     입학 초, 내가 가장 먼저 A반 남자의 괴롭힘을 당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서니는 A반 여자의 괴롭힘을 당했던 모양이다. 험담, 조소, 따돌림.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지만, 은근슬쩍 상대의 정신을 몰아세우는 음습한 여자 특유의 집단 괴롭힘의 수법은, 확실히 말해 기분 나쁜 것이다. 이래서 여자는 싫다.

     

     하지만 일은 그걸로 끝나지 않고,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내가 마도구를 써서 남자들한테서 괴롭힘을 회피하게 된 영향으로, 나라고 하는 목표를 잃은 남자들의 의식이 그녀한테로 흐르고 말아 여자에서 반 전체의 괴롭힘으로 확대되고 만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오늘도 노트가 찢어지거나 실내화가 잘린다든가 하는 괴롭힘에 시달린 끝에 학교 건물 뒤에서 혼자 울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그런 그녀를 모른 척하는 것은 양심이 찔린다.

     

     "이게 이 나라가 자랑스러운 귀족 자제들의 실상이라니."

     "자랑스럽다기보다는, 부끄럽네요."

     "뭐, 세상은 그런 법이라구요. 두 분 탓이 아닙니다."

     썩어도 상대는 귀족. 예전에 소매치기 소녀한테 썼던 것처럼 괴롭힌 뒤에 어둠 속성 마법으로 기억을 지우고 트라우마만 남기는 수법은 가볍게 쓸 수 없다.

     

     가장 손쉬운 대처법은 서니한테도 내가 찬 것과 같은 효능의 마도구를 건네서, 그녀의 존재감을 길가의 돌멩이 정도로 낮춰 공기로 만드는 것이다. 애초에 그녀의 성격상 보복은 원하지 않을 테니까.

     

     괴롭힘을 한 녀석들이 아무런 벌과 보복을 받지 않는 점은 아수웠지만, 그것은 어째선지 피클스 왕자와 로사 님이 서니를 만나러 가는 나를 따라온 것으로 해소되었다. 한가한가, 이 두 사람. 뭐 이번에 한해서는 도움이 되었으니 상관없지만.

     

     이 나라의 제3왕자와 그의 약혼녀인 공작영애의 경멸을 사는 것은 이후 상당한 마이너스 요소다. 적어도 정의감이 강한 이 두 사람이 서니를 괴롭혔던 녀석을 이후 우대하거나 등용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블랜스턴 님, 제로 님, 죄송하옵니다. 이런 못난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아서......"

     

     "네가 사과할 일이 아냐, 골드 버그 양. 정말 부끄러워할 쪽은 가해자들이지."

     "그래요. 같은 귀족 여식으로서, 그녀들의 비겁한 행동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펑펑 울고 만 서니한테 손수건을 건네는 로사 님. 음험한 브라콘 얀데레 여동생 캐릭으로 부르고 말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꽤 괜찮은 아이 같다.

     

     "그렇게 되었으니, 네게는 이 팔찌형 마도구를 빌려주마. 이걸 차고 있는 한 네 존재감은 지워져서 누구도 상대하지 않게 되겠지만 괴롭힘 당하지도 않게 될 거다. 괴롭힘보다 무시당하는 쪽이 괴롭다면 억지로 착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음~ 섬세함이 부족해."

     "적어도 반지로 하는 배려 정도는 해야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귀여운 약혼녀가 정 떨어져 버리면 어쩌려고요?"

     "정 따윈 한참 전에 떨어져 버렸다구요. 그녀는 저를 싫어하고 있으니까요."

     "네!? 아뇨! 그런 일은 절대!"

     당황해서 부정하는 그녀한테, 내 손목시계와 같은 효능을 지닌 팔찌를 떠맡긴다.

     

     "방수가공도 제대로 되어있으니 손 씻을 때 벗을 필요도 없다. 도둑맞기라도 하면 트집을 잡힐 수 있으니까, 남의 앞에선 벗지 않는 편이 좋아."

     "지금의 A반의 상황을 보면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슬프네."

     "이렇게 집단 괴롭힘에 가담한 자들이 장래에 이 나라를 짊어진다고 생각하면, 저 우울한 기분이 드네요. 역시 오라버님을 위해서도 귀족들의 숙청......의식 개혁을 서둘러야."

     "고마워요, 호크 님! 저, 기뻐요!"

     이번에는 기뻐서 울기 시작한 그녀한테서 시선을 떼었다. 이런 상태라면, 여동생 마리한테도 이런 식의 마도구를 줘야할 판이다. 약혼녀까지 괴롭힐 정도로 내 존재를 성가시게 생각하는 녀석들이 내 여동생을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뭐, 마리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굳이 학비를 내주며 이 학교에 입학시킬지는 의문이지만.

     

     "서니 님. 저와 친구가 되지 않겠나요?"

     "치, 친구요!? 그런, 저 따위가 황송하게도!"

     "전 반 친구를 괴롭히는 분들과 사이좋아지고 싶지 않은걸요. 하지만 반에서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것은 쓸쓸하잖아요? 그러니 어때요?"

     

     "......네! 감사해요, 제로 님!"

     "로사로 부르면 돼요. 그 대신 당신을 서니 양이라고 부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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