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06 표류
    2022년 11월 11일 12시 26분 0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ㅡㅡ려! 안 들리나! 죽은 건가!"

     매우 난폭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온몸이 아프다. 그리고 춥다.

     

     "죽은 거 아냐?"

     "아니. 숨은 쉬는 모양인데."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들어온 것은 2명의 젊은 남자. 형제인지 친척인지 비슷한 얼굴이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형. 눈 떴어."
     "어 진짜. 당신 괜찮아?"

     역시 형제인가. 많이 비슷하다.

     

     "괜찮다. 여기는 포트리오 공화국이 맞나?"

     "그래. 여기는 포트리오 공화국의 요르무다. 바다에서 배가 난파했는지 여러 가지 물건이 떠내려왔는데, 당신이 탔던 배야?"

     

     그랬었다. 씨 서펜트 때문에 배가 침몰한 것이다.

     

     "이곳에는 나 이외의 인간ㅡㅡ혹은 인간과 비슷한 존재, 또는 벌레 같은 존재는 흘러들지 않았나? 여기에는 나만 떠내려왔나?"

     "벌레 같은 존재? 그런 건 못 봤는데."

     스웜은 전멸인가. 아니, 중형선과 다른 대형선에 탔던 것들은 무사히 폭풍을 이겨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리니안은 무사할까. 라이사는 무사할까.

     

     세리니안은 헤엄을 못 치니, 바다에 빠져 죽었을지도.

     

     "어이, 당신 정말로 괜찮아?"

     

     "그다지 괜찮지는 않다. 함께 탔던 동료들이 폭풍과 씨 서펜트에 당해버렸을지도 몰라."

     "그래...... 그거 딱하게도. 일단 옷을 말리지 않으면 감기 걸려. 집까지 안내해 줄 테니 거기서 입도록 해. 몸이 싸늘해지면 생각까지도 비관적이 된다고."

      

     꽤나 친절한데. 하지만 지금은 그 친절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지금의 나는 갈 곳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모르니까. 나는 스웜이 없으면 일반인 이하의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너희의 이름은?"
     "아, 나는 존. 이쪽은 동생인 조엘이다. 당신의 이름은?"

     내가 묻자, 존이 되물었다.

     

     "나는 그레빌레아. 동부상업연합 쪽에서 왔다."
     "동부상업연합이라. 교역로가 거의 사라져서 꽤 걸릴 텐데, 아직도 찾아오려는 근성 있는 녀석이 있었다니."

     나는 그곳 사람이라고는 말 안했다. 어디까지나 그쪽에서 온 거다. 사기에는 주의.

     

     "현재 교역로는 끊겨 있나?"

     "씨 서펜트가 너무 늘어나서 말이야. 나라에서도 사냥은 하고 있지만 수가 많아서."
     

     흠. 씨 서펜트가 늘어난 것은 뭔가 이유가 있는 걸까.

     

     "그건 언제부터?"
     "네크로퍼지라는 녀석들이 나타날 즈음부터 그랬어."

     네크로퍼지. 역시.

     

     닐나르 제국은 네크로퍼지가 대륙을 침공하는 걸 두려워했다. 그래서 구대륙과 신대륙을 가로막는 장벽으로서 씨 서펜트를 만든 모양이다. 그레고리아에는 씨 서펜트가 유닛으로서 존재하고, 우리가 만났던 녀석과 똑같이 생겼다.

     

     "......당신은 네크로퍼지의 관계자가 아니겠지?"
     "아니. 난 어엿한 인간이다. 시체가 아냐."

     "그래? 하지만, 구대륙 녀석들도 네크로퍼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구나."
     "아니, 너희들 쪽에서 구원요청이 왔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걸 위해 온 거고."

     존이 느긋하게 말하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원군? 당신이?"

     

     "내가 이끄는 군세가. 잘만 되었다면 지금쯤 싸울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을 텐데."

     

     "믿을 수 없어. 여성 용병단장이 왔던 적이 있는데, 당신처럼 하늘하늘한 녀석이 아니었다고."

     "방금 전부터 정말 실례로군. 나는 분명 구대륙에서 원군으로 파병되었다. 증거는 이거다."

     그렇게 말한 나는 가까스로 겨드랑이에 매달아 놓았던 핸드백을 꺼내서는, 안에서 동부상업연합의 외교문서가 담긴 상자를 꺼냈다. 상자는 방수가 되어있으니, 안의 서류는 무사할 것이다.

     

     "그 상자는 뭔데?"
     "이건 동부상업연합의 외교부가 외교문서를 보낼 때 쓰는 상자다. 이 안에는 내가 원군이라는 취지가 기록된 서한이 들어있다."

     하지만, 구대륙 사람이라 해도 아는 사람이 적은 것을 증거로 들어도 그다지 의미는 없겠네......

     

     "이제 신경 쓰지 마. 나는 단순한 표류자다."
     "그럼, 일단 가자 표류자 씨. 저기가 우리 집이야."

     이런 때에 섣불리 신분을 의심하지 않는 지역이라 다행이었다. 이곳이 외부인을 배척하는 땅이었다면 무슨 짓을 당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찾아간 존의 집은 그런대로 괜찮은 집이었다. 오픈 테라스에는 목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는 멋들어진 집이고, 현관도 말끔히 청소되어 있다. 마치 해안의 펜션에 온 듯한 기분이다.

     

     "조디! 와 봐! 손님이야!"

     존은 집에 들어가서는, 내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왜 그래, 오빠. 손님이라니......"

     그리고 존의 부름에 나타난 자는 젊은 여성이었다. 이목구비는 존 형제와 그다지 닮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귀여움은 실로 대단했다. 

     

     "어머, 정말 귀여운 아이! 오빠, 설마 유괴......"

     "아니, 아니라고! 오늘 해안에서 쓰러진 걸 찾았는데, 이름은 그레빌레아라고 해. 동부상업연합 쪽에서 왔다고 하고. 일단 젖은 옷을 갈아입혀주지 않겠어?"

     조디가 의심하자, 존은 서둘러 그렇게 대답하며 날 가리켰다.

     

     "네네, 알겠습니다요. 그레빌레아였지? 나는 조디. 지금부터 그 젖은 옷을 갈아입자. 내 옛날 옷이 아직 남아있으니까."

     으음. 18세 정도로 보이는 조디의 양복은 내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옛날 옷이 있다면 그것에 기대해보자. 나도 사이즈가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고 다니는 건 싫으니까.

     

     "그전에 몸을 씻는 편이 좋아 보여. 지금, 물을 덥힐 테니 기다리렴."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왠지 미안한데......

     

     그렇게 기다리기는 30분. 나도 추위가 느껴질 즈음, 조디가 돌아왔다.

     

     "물 데워졌어! 들어가자, 그레빌레아!"

     "그럼, 실례한다."

     "모처럼이니 같이 들어가자!"

     내가 목욕탕으로 향하자, 조디가 뛰어왔다.

     

     음. 사람과 함께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 온천 이후로 세리니안과 좀처럼 함께 욕조에 들어갈 기회가 없었고, 라이사는 꺼려하고 있어서 나는 섭섭한 마음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여기서 함께 들어가 주는 인물을 찾은 것은 좋은 일이다.

     

     "조디, 너는 예전부터 여기 살고 있었나?"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에 몸을 담그며 그렇게 물었다.

     

     "아니. 좀 더 남쪽에 간 곳에 살고 있었어. 하지만 네크로퍼지가 쳐들어와서 북쪽으로 피난 온 거야. 이 집은 전의 집주인이 나브릿지 군도에 도망치면서 싸게 팔은 거고."

     그런가. 포트리오 공화국은 이미 네크로퍼지의 침략을 받고 있구나.

     

     "사실 나는 네크로퍼지의 위협을 몰아내기 위해 구대륙에서 건너온 원군이다.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희의 대지를 되찾도록 노력해보마."

     "뭐? 그레빌레아가 구대륙에서 온 원군? 에이 거짓말~!"

     역시 믿어주지 않네.

     

     "하지만 사실이다. 언젠가는 신대륙에서 네크로퍼지를 제거해내겠다. 지금은 단순한 일반인만도 못한 존재지만, 부하가 있으면 그런대로 싸울 수 있거든."

     "푸훗. 그레빌레아는 재밌는 말도 하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좋겠어. 우리들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구......"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서 네크로퍼지를 쓰러트리는 거다."

     

     나는 결의를 담아 조디에게 말했다.

     

     "그레빌레아도 고향에서 쫓겨났어?"

     

     "비슷하다. 나는 네크로퍼지를 쓰러트린다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래? 그럼 열심히 해야겠네."

     "그래. 열심히 해야지."

     조디는 그렇게 고하면서 밝게 웃었고, 나도 그에 따라 미소 지었다.

     

     인간이란 것은 강한 생물이다. 고향에서 쫓겨나도 다부지게 살아나간다.

     

     "그럼, 슬슬 올라가자."
     "그래."

     나와 조디는 목욕을 끝내고 몸을 닦았다.

     

     내게 준 조디의 낡은 옷은 딱 적당한 사이즈였다. 실로 다행이다.

     

     "존 오빠, 조엘 오빠. 우리 목욕 끝냈어."

     

     "오, 그래? 그래서 그레빌레아는 몸상태 좋아졌어?"

     

     "그래. 덕분에 꽤 안심이 되었다. 의자에 앉아도 될까?"

     

     "상관없어. 지금 조엘이 저녁식사를 만드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줘."

     

     나는 넉살 좋게도 한 의자에 걸터앉았다.

     

     "세리니안, 세리니안. 무사한가?"

     나는 집합의식에 대고 그렇게 외쳤다.

     

     [무사합니다, 여왕 폐하. 지금 포트리오 공화국의 수도 포톤에 있습니다. 하지만, 관리들과 다투는 중이라서. 저희가 구대륙에서 온 원군이라고 믿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맞다. 구대륙의 초대장은 내가 지참하고 있었다.

     

     "나는 요르무라는 장소에 있다. 여기까지 와준다면 외교문서를 건네줄 수 있을 텐데. 마차 같은 걸 준비할 수 있겠나/"
     [해보겠습니다. 여차하면 강탈해서라도]

     

     그런 거친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 기다리마. 나는 무사하니 안심하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세리니안과의 대화를 끝냈다.

     

     ".......누구와 대화했어?"

     

     "부하. 우리는 언제나 연락을 취할 수 있다. 곧장 마중하러 오겠지. 그렇게 되면 사례하겠다."

     

     존이 의아해하며 묻자,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렇데 대답했다.

     

     "구대륙의 새로운 마술인가 보네. 조디가 흥미로워하겠어."

     "모두들, 저녁 식사 다 됐어."

     

     나와 존이 대화하고 있자 조엘이 그릇을 들고 왔다.

     

     식사를 마친 나는 그날 조디의 침대에서 같이 잤다. 나는 바닥이면 된다고 말했지만, 조디가 억지로 권하고 말았다.

     

     하지만 타인과 함께 하는 침대도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728x90

    '판타지 > 여왕폐하의 이세계 전략'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8 암운(2)  (0) 2022.11.14
    107 암운(1)  (0) 2022.11.13
    105 폭풍  (0) 2022.11.11
    104 혁명, 그 후  (0) 2022.11.11
    103 신대륙을 향해  (0) 2022.11.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