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05 폭풍
    2022년 11월 11일 10시 59분 0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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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대륙의 포트리오 공화국까지 이틀 정도가 남았다.

     

     하지만, 그날은 처음부터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공기가 팽팽해서, 마치 전장 같았다.

     

     "여왕 폐하. 이건 사나워질 것 같습니다."
     "사나워져? 바다가?"

     

     세리니안이 속삭이듯이 말하자, 나는 몸을 떨었다.

     

     지금도 선체가 흔들리고 있는데 이 이상 흔들린단 말인가. 믿기지 않는다.

     

     "앗. 안심하시길 여왕 폐하. 저의 예보는 자주 틀리니까요. 뭔가 안 좋은 것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뿐이니, 마수의 습격일지도 모릅니다."

     "마수의 습격이라 해도 최악인데, 세리니안......"

     나는 이 거주성 최악의 선실에서 한시라도 빨리 육지에 착지하기를 원하는데 폭풍이건 마수건 와버리면 민폐다. 딴 데로 가, 딴 데로.

     

     "여왕 폐하..... 아직 도착하지 못하는 걸까요......"

     내 안색이 새파래지자, 같은 얼굴을 한 라이사가 찾아왔다.

     

     "앞으로 이틀은 걸린다. 그리고 폭풍이나 마수가 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으에에...... 정말인가요...... 이제 슬슬 한계인데요......"

     라이사는 정말로 한계인 모양이다. 엘프라는 숲의 생물을 무리하게 해상으로 데려온 것은 좋지 않았다고 실감된다. 참고로 나도 육상 생물이니, 해상에서 지내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

     

     "일단 상황을 보고 오겠습니다. 폭풍이라면 이겨내기 위해 연계가 필요해지고, 현재 이 배를 다루는 대부분의 선원은 스웜이니까요."

     그렇다, 배를 조종하는 것은 스웜이다.

     

     나는 스웜 몇 체를 아틀란티카의 해적들한테 수행을 보내서, 조타 기술을 배워왔다. 로랑의 기술은 역시 초보자 수준이라서, 이번에는 어엿한 프로 선원이 될 수 있도록 학습시켜두었다.

     

     덕분에 지금은 어떤 스웜도 프로 선원처럼 배를 다룰 수 있다. 동부상업연합에서 빌린 것은, 해도를 읽고 신대륙의 항로를 아는 항해사만이었다.

     

     "뭐,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빌어야지."
     "네. 정말 그럼 좋겠네요......"

     이런 때에 한해 일은 일어나는 법이다. 그것도 큼지막하게.

     


     

     "폭풍입니다, 여왕 폐하! 몸을 고정시켜주십시오!"

     폭풍이 왔다. 세리니안이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그녀는 기상청에서 일할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

     

     "괜, 찮, 다, 세리니안......"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다, 여왕 폐하!"

     괜찮을 리가 없다. 배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데, 전복되지는 않나 싶을 각도까지 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태연히 있는 녀석이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세리니안도 인간이 아니고.

     

     "!?"

     내가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른 스웜의 의식에 접속하고 있었을 때,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이 폭풍 속에서 가장 최악의 존재를 나는 찾아내고야 말았다.

     

     "세리니안! 마수가 있다! 씨 서펜트다! 그것도 두 마리!"
     "마수의 습격입니까!"

     새하얀 비늘의 씨 서펜트 두 마리가, 우리의 배 밑을 천천히 헤엄치고 있다. 아마도 배가 폭풍에 뒤집히는 걸 기다리는 모양이다.

     

     "케미컬 스웜을 총동원! 작살이 없으니 녀석들을 수면에 붙잡아둘 수는 없다! 녀석들이 부상한 순간이나, 녀석이 수면과 가까워진 시점에 독침을 쏴라!"

     전투의 지휘를 하고 있자 이상하게도 뱃멀미는 사그라들었다. 딴 일에 집중하는 게 중요한 모양이다. 이건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마수의 습격은 결코 고맙지 않은 일이다.

     

     "라이사, 움직일 수 있나!"
     "어떻게든요!"

     라이사도 마수가 다가옴에 따라 뱃멀미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목표는 씨 서펜트다. 화살로 어떻게든 녀석을 자극해서 올라오게 해."
     "어렵지만 해볼게요!"

     

     라이사는 장궁을 들고 갑판으로 뛰어갔다.

     

     "세리니안, 넌 적이 접근할 때 공격할 준비를."
     "맡겨만 주시길, 여왕 폐하."

     자, 수상전은 바다의 마수인 씨 서펜트가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그런 역경에 맞서는 것이 아라크네아다. 우리들은 여기서 무사히 씨 서펜트를 요격하고 격파하여 신대륙에 도착해 보이겠다.

     

     그리고 내 지시대로 전개한 케미컬 스웜이 갑판에 몰려드는 와중, 라이사가 이미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는 씨 서펜트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쏜 화살이 씨 서펜트의 등에 박히자, 바다가 크게 요동쳤다. 해수면이 솟아오르면서 씨 서펜트가 그 거체를 해상에 드러냈다.

     

     하지만 이 정도 크기에 겁먹을 우리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보다도 큰 괴물을 상대해온 것이다. 린트부름과 베히모스라는 괴물들과 싸워왔던 것이다.

     

     "케미컬 스웜, 일제사격! 적이 쓰러트릴 기회가 얼마 없다! 서둘러!"

      내가 명하자, 케미컬 스웜이 일제히 해상에 모습을 드러낸 씨 서펜트를 향해 독침을 날렸다. 일제사격에 당한 씨 서펜트의 살점이 녹아 바다에 흘러든다.

     

     "좋아. 먼저 하나 끝장냈다. 다음."

     나는 신중하게 바다 위를 둘러보며 다음 씨 서펜트를 찾았다. 앞선 한 마리가 당하자 나머지 하나가 모습을 감췄다. 어디에 숨었을까.

     

     그때 배가 크게 흔들렸다.

     

     "밑인가!"

     그렇다, 씨 서펜트는 우리가 공격할 수 없는 배의 밑에서 몸통박치기를 시작한 것이다. 배가 쿠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크게 흔들리자, 배 위에 있는 우리들은 배 밖으로 떨어질 뻔했다.

     

     "배를 급회전시켜! 이대로 가면 침몰한다!"

     "예!"

     머리도 좋은 마수다. 이쪽에 대항할 수단을 바로 찾아내다니. 아니, 녀석은 이전부터 그렇게 사냥해온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방비한 배 밑에 숨어 들어서, 손상을 입히는 것이다.

     

     "큭! 침수가 발생하고 있어......! 이대로는 침몰한다!"

     선내에 있는 제노사이드 스웜이 침수를 보고해왔다. 워커 스웜이 수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치수의 규모가 너무 크다.

     

     "탈출하기 전에 씨 서펜트는 끝장내야 해! 안 그럼 구조하러 오는 배까지 침몰해버린다!"

     여태까지 중 가장 큰 충격이 생긴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정신 차리고 보니 바닷물 속이었다.

     

     그리고, 배가 천천히 수중에 잠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배를 침몰시킨 씨 서펜트가 내쪽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런. 먹히겠어.

     

     그렇게 생각했을 때, 세리니안이 옆에서 나타나서 씨 서펜트의 머리에 장검을 꽂았다. 그 장검의 칼날에 의해 두개골이 부서진 씨 서펜트가 경련하면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세리니안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도 나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점점 숨쉬기 어려워진다.

     

     세리니안을 구해야 해. 저 애는 헤엄칠 수 없는걸......

     

     내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오오, 여왕이여. 죽어버리다니 한심하기는!"

     내가 정신을 차리자 병원 같은 장소에 있었다. 아니, 여기는 병원이다.

     

     "사마엘. 넌가."
     "예, 접니다. 산달폰이 아니라서 실망했나요?"

     내 시선 끝에는 검은 고딕 로리타 패션의 사마엘이 있었다.

     

     "실망했어. 산달폰 쪽이 좋아."
     "투정 부리지 마세요. 모처럼 구해줬는데."

     사마엘은 내가 누워있는 침대의 주위를 빙글 돌았다.

     

     "당신은 하마터면 빠져 죽을뻔했다고요. 그걸 막아준 자가 바로 저. 제가 적당한 해변에 당신을 옮겨주었답니다."

     

     "다시 말해 제 몸은 지금 해변에 누워있다는 건가. 그거 좋네. 해수욕 기분을 맛볼 수 있으니."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잖아요? 저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인정할 생각이 없다고요."

     

     "......사마엘. 네 목적은 뭐지?"

     나는 산달폰의 단편적인 정보에서, 이 세계에 내가 갇힌 것은 사마엘의 소행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날 가둬서 뭐가 좋은 걸까. 뭐가 목적일까.

     

     "저는 말이죠.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요."

     

     사마엘은 침대맡의 의자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

     

     "당신처럼 괴물의 군대를 이끌고 필사적으로 싸우는 사람을 보면, 정말 흥분된다고요. 다음은 무엇을 할까, 이 문제는 어떻게 대처할까 하면서."

     "악취미로군."

     "당신도 비슷한 이을 해왔잖아요. 이 세계에 와서 여러 가지로. 그리고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여러 가지로."

     사마엘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서는 병실의 복도 쪽 커튼을 열었다.

     

     그곳에는 내가 있었다. 내가 의사한테서 말을 듣고 있다. 그리고, 나는 생체인증 스캐너에 엄지를 대면서 의사한테 말했다. 말하고 말았다.

     

     "아니. 이건 네가 만든 광경이다. 현실이 아냐."
     "현실을 충실히 재현한 거랍니다, 살인자 씨."

     내가 눈앞의 광경에서 눈을 돌리자, 사마엘이 키득거리며 웃는다.

     

     "거기까지다."

     그때 사마엘의 웃음을 가로막는 목소리가 들렸다.

     

     "산달폰. 또 당신인가요. 한가한가 보죠?"
     "닥쳐라, 악마. 인간은 도구로 삼는 짓은 그만둬."

     사마엘이 어깨를 으쓱이자, 산달폰이 그렇게 말했다.

     

     "산달폰. 나는......"

     "괜찮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당신의 어머니는 이제 살아날 가망이 없었고, 저러는 것이 그 상황에서는 적절했었어요."

     

     맞다. 나는 어머니를 죽였다.

     

     부모님은 차에 타서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즉사하고, 어머니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침대에 누워있었다.

     

     "유감이지만, 어머니가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연명 조치에 대해 생전에 대화했습니까?"
     "아니요. 그런 화제는 전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럼, 연명 조치를 지속할지 거부할지의 판단은 가족인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이미 성인이니 문제는 없겠죠. 하지만 만일 결단이 어려울 경우는, 당 병원의 전문 스탭이 다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죽게 해 주세요. 이제 두 번 다시 눈을 못 뜬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리고, 나는 생체인증 스캐너로 지문을 승인하고, 어머니를 죽였다.

     

     "내가 죽였어. 어머니를......"
     "아니요. 하늘에 불려 나갈 수 있도록 빗장을 푼 것이에요. 당신의 행동은 어떻게 판단해도 살인이 되지 않아요."
     

     주눅 든 나를, 산달폰이 부드럽게 안아준다.

     

     "죽였답니다, 살인자 씨."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 주세요. 당신은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어요.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중단시킨 것에 불과한걸요."

     

     사마엘이 웃고, 산달폰이 속삭인다.

     

     "나는 어머니를 죽이지 않은 거지?"

     "그래요. 주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선언해요."

     어느 사이엔가 울고 있던 내게, 산달폰은 그렇게 고했다.

     

     "그럼, 당신을 다시 그 세계로 보내야만 하겠네요. 하지만 구원은 있습니다. 당신한테도 반드시 구원이 찾아와요. 그러니ㅡㅡ"

     산달폰의 가슴속에서 내 의식이 녹아든다.

     

     "사람의 마음을 잊지 말아 주세요."
     "사람의 마음은 안 잊어."

     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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